[사람 속으로] "SPA는 소비하는 것이지만, 클래식 명품은 소유하는 것"

이현택.오상민 2016. 4. 1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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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구두 빅3 '존 롭' CEO 폴도팽
투 버클 구두(끈 대신 가죽으로 된 버클로 여닫는 구두)로 유명한 존 롭의 르노 폴도팽 CEO가 스니커즈를 들고 있다. 이 스니커즈는 지난해 영입한 아트디렉터 파울라 저베이스가 디자인한 것이다. 젊음·혁신·신선함을 모토로 변화할 존 롭의 방향을 알려주는 제품이라고 폴도팽 CEO는 설명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존 롭의 프랑스 파리 주문생산(비스포크) 구두 제작 공정 장면. 경력이 10년 이상 돼야 가죽에 손을 댈 수 있다. 대부분의 작업이 사람의 손으로 진행돼 한 켤레를 만드는 데 4~6개월이 걸린다. [사진 존 롭]
존 롭의 베스트셀러 구두. 위부터 판매 순위 1~4위인 윌리엄II ①·필립II ②·시티II ③·채플II ④. 최근 존롭은 30대의 젊은 아트디렉터 파울라 저베이스를 영입해 ‘레바 ⑤’ 스니커즈 등 비즈니스 캐주얼을 향한 새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사진 존 롭]

| 한 켤레 4~6개월 걸려 만드는 공법
밑창 전체 교체해 새 구두처럼 신어

존 롭은 세계 럭셔리 구두 시장의 ‘빅3’로 불리는 브랜드다. 이탈리아 벨루티, 프랑스 코르테 등과 더불어 하이엔드(high-end·한 켤레에 약 200만원 이상 하는 초고가) 구두 시장을 잡고 있다. 영국 신사 구두의 전통을 대변하는 셈이다. 생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 데 꼬박 4~6개월이 걸린다.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전통 공법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창업자 존 롭이 고안한 것이다.

가장 저렴한(?) 180만원대 구두에도 영국산 최고급 소가죽을 기본으로 사용한다. 브랜드의 모토는 “최신의 럭셔리란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의 양이 느껴져야 한다(The new luxury is knowing the amount of time and work that’s gone into a well-made piece).” 그리고 “수선하면 평생 새 구두와 같게 서비스한다” 등이다.

| 세계 구두시장 대세는 믹스&매치
작년 창립 152년 만에 스니커즈 내놔

존 롭은 지난해 스니커즈(운동화)를 출시했다. 1864년 창립 이후 152년 만이다. 그 변화의 선봉에는 지난해 영입한 브라질 출신 디자이너 파울라 저베이스(34·여)가 있다. 영국 런던의 유명 디자인 학교 ‘세인트 마틴 디자인스쿨’ 출신으로 최고급 신사 정장 거리로 명성을 날리는 런던 ‘사빌 로(Savile Row)’에서 잔뼈가 굵은 젊은 디자이너다. 그는 ‘현대적인 감성’과 ‘신선한 접근’을 모티브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6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한 존 롭 본사의 르노 폴도팽(64)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그는 “한국을 비롯해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젊고 새로운 느낌의 명품 구두를 계속 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괄호 안은 편집자 주).

폴도팽 CEO는 명품 전문가로 1988년부터 에르메스에서 근무했다. 퓌포카(식기)·생루이(크리스털 그릇) 등 에르메스 계열 식기 브랜드 총괄과 향수 사업부 총괄 등을 지냈다. 2007년 존 롭의 CEO로 부임했다.

Q : 클래식 명품 구두 회사에서 스니커즈를 굳이 내야 하나.
A : “스니커즈뿐만 아니라 고무 밑창을 붙인 구두도 내놓는다. 글로벌 판매량의 30%를 차지하는 일본 고객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비올 때 구두 밑창은 다소 축축해지는 감이 있다. 물론 고무창을 단 구두라 하더라도 기존의 존 롭 구두만큼 ‘우아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비즈니스캐주얼이 보편화되고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문화 트렌드도 감안했다. 세계 구두 시장의 대세는 ‘믹스 앤드 매치(mix & match·적절하게 다양한 아이템을 조화롭게 입는 것)’다. 캐주얼하게 보이면서도 비즈니스 상황에서 어색하지 않고, 비즈니스맨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줘야 한다. 더 캐주얼한 신발도 검토하고 있다.”

Q : 첨단기술은 적용하지 않나.
A : “나는 럭셔리와 첨단기술이 양립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가을에는 방수 기술을 적용한 구두를, 내년 여름에는 새로운 느낌의 스니커즈를 추가로 출시할 예정이다. 누가 혁신을 클래식의 반대말이라 하던가.”

Q : 패스트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A : “패스트패션의 시대에서 럭셔리가 살 길을 고민하고 있다. 자라나 H&M 같은 SPA(기획·생산자가 유통·판매까지 하는 브랜드) 업체들이 득세하는 시대다. 그 속에서 클래식이 살아남을 방향성은 한 가지다. 패스트패션은 소비(consume)하면 그만이지만, 클래식한 명품은 ‘슬로 럭셔리’로서 소유(have)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존 롭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구두라고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SPA 득세 시대’에 존 롭은 럭셔리의 가치를 유지해 왔다. 폴도팽 CEO는 그 비결로 “클래식한 전통과 꾸준한 기술 혁신의 조화”를 꼽는다. 전통을 유지한 것으로는 ‘굿 이어 웰트’ 공법이 대표적이다. 이 공법은 ‘립’이라 불리는 내피(인솔)와 밑창(아웃솔)을 실로 꿰매지 않고 홈을 파서 끼우는 것처럼 간접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구두는 이 꿰맨 실을 풀어서 밑창 갈이를 해야 해 구두 가죽에 변형이 온다. 하지만 존 롭의 구두는 실을 풀지 않고 밑창 갈이를 할 수 있어 평생 새 구두처럼 신을 수 있다.

폴도팽 CEO는 “기존의 구두 제작 방식에 비해서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들지만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말했다. 존 롭 창업주가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모든 클래식 라인에 적용되고 있다.

꾸준히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 역시 ‘새로운 럭셔리’를 표방하는 존 롭의 특징이다. 기본 가죽인 ‘옥스퍼드’ 외에도 오톨도톨한 질감으로 스크래치가 덜 나는 가죽 등 10여 가지를 개발하는 등 소재에 많은 투자를 한다. 폴도팽 CEO는 “가벼운 느낌의 구두라도 비즈니스맨에게 자신감과 편안함을 주려고 꾸준히 기술을 개발한다”고 말했다.

| 연간 4만 켤레 생산, 평생 AS 원칙
영국 공장 장인이 수리해 석 달 걸려

Q : 애프터서비스엔 어떤 남다름을 고수하나.
A : “평생 수리가 가능한 것은 원칙 중의 원칙이다. 대부분 영국 노스햄턴 공장으로 보내 장인이 고친다. 수리에만 3개월 정도 걸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즐거움도 특권이다.”

Q : 연간 몇 켤레의 구두를 생산하나.
A : “4만 켤레다. 대형 구두 브랜드에 비하면 적은 수치다(금강제화가 연간 생산하는 구두는 230만 켤레다). 하지만 한 켤레를 장인이 만드는 데 4~6개월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한국 판매 가격은 한 켤레에 200만~1700만원 정도 한다. 비스포크는 1000만원 정도 한다.”

Q : 비스포크는 어떤 사람이 신나.
A : “전 세계의 부호들이 많이 신는다. 프랑스·영국·러시아 등 국적은 다양하다. 매년 400명의 고객이 주문하는데 200명 정도는 기존 고객의 재주문이고, 나머지 200명은 신규 고객이다.”
| 한 켤레당 200만~1700만원 고가
회장님·연예인·변호사 등이 단골

존 롭의 구두는 비싸다. 켤레당 평균 가격이 자그마치 250만원이나 한다. 소가죽 구두는 180만~190만원대부터 시작하지만 악어 가죽 구두는 1700만원을 훌쩍 넘긴다. 기성화인데도 그렇다. 국내에서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배우 소지섭·지창욱, 일본에서는 축구선수 나카타 히데토시가 대표적인 존 롭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Q : 이번 한국 방문 이유는.
A : “새로운 매장을 내러 왔다. 최근 한국은 럭셔리 구두 업계에서 뜨고 있는 시장이다(업계에서는 한국 럭셔리 구두 시장을 약 60억원대로 평가한다. 매년 10~20%씩 성장해 수년 내 100억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2곳(서울신라호텔·갤러리아 백화점) 외에 매장을 추가로 낼까 한다. 한국 고객들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역사적 전통과 명품의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Q : 어떤 매장인가.
A : “면세점 입점을 검토하고 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 면세점에 에르메스와 같이 입점돼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홍콩공항에 에르메스와 입점하기도 했다. 평범한 백화점에는 매장을 내지 않는다. 명품 업체로서 ‘데스티네이션 숍’(구두를 사기 위해서만 방문하는, 매장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곳)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굳이 신라호텔과 갤러리아백화점에만 입점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런던 코노트호텔, 파리 플라자호텔, 홍콩 만다린호텔 등 고급 호텔 안에 매장이 있는 경우가 많다.” 1976년 에르메스가 인수 후 기성화도 만들어

존 롭은 영국의 신발 장인 존 롭(1829~95)이 만든 구두 기업이다. 그는 영국 콘월 출신으로 호주로 이주해 금광 인부들을 위한 부츠를 만들다가 구두 제작에 나섰다. 이후 1864년 영국 런던, 1902년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열였고 영국·프랑스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납품을 했다.

에르메스그룹에 편입된 것은 1976년이다. 롭 가문의 에릭 롭(1907~93) 당시 존 롭 최고경영자(CEO)와 에르메스의 CEO인 로베르 뒤마 에르메스(1898~1978)의 친분이 단초가 됐다. 에르메스는 명품 신발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존롭에 인수를 제안했고 결국 에릭 롭은 가족 회사의 경영권을 에르메스에 매각했다. 에르메스그룹 인수 이후 존 롭은 81년부터 기성화(RTW·Ready to Wear) 생산에도 들어갔다. 이전까지는 주문생산(bespoke·비스포크)만 했다.

존 롭은 1981~2003년 에르메스 매장에서 팔리다 2003년 이후에는 에르메스 매장에서 나와 전 세계 22개 독립 부티크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의 에르메스 면세 매장에는 존롭 매장이 ‘숍 인 숍’으로 남아 있다.

76년 매각 당시 에릭 롭과 로베르 뒤마 에르메스 두 사람은 ‘신사 협정’을 맺었다. 영국 런던 지역의 비스포크 신발 시장만큼은 보장해 주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창업자 가문의 가족 회사 ‘존 롭 LTD’는 런던 세인트제임스 거리에서 따로 매장을 운영한다. 에르메스그룹 존 롭(존 롭 SA)과 달리 여성 구두도 만든다. 존 롭 LTD가 만드는 런던 존 롭 구두는 한 켤레에 약 720만~2100만원 선이다.
글=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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