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빨래, 화장..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바라나시

이상기 2016. 4. 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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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21] 바라나시 ② 화장 의식

[오마이뉴스 글:이상기, 편집:박혜경]

 갠지스의 아침
ⓒ 이상기
갠지스강 일출을 보기 위해 우리는 오전 6시에 호텔을 출발한다. 아침시간이라 버스가 가트 가까이까지 우리를 실어다 준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가트가 나온다. 길가에는 꽃과 음식을 파는 상인들이 벌써 장사를 하고 있다. 추위에 불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소도 볼 수 있다. 이를 닦는 데 쓰는 님나무를 파는 여인도 보인다. 님나무는 치약과 칫솔 역할도 하지만, 비누로 만들어져 팔리기도 한다. 길에는 노숙하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우리는 다시 다샤슈와메드 가트로 간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하류에 있는 마니카르니카(Manikarnika) 가트까지 내려간 다음, 상류인 하리쉬찬드라(Harishchandra) 가트까지 올라갈 것이다. 강에는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강가 아르티 의식이 진행되던 다샤슈와메트 가트는 지난밤에 비해 한산하고 조용하다. 배에 탄 우리는 꽃불을 하나씩 사 불을 붙인 다음 갠지스강에 띄운다. 각자 소원을 빌면서.

 만 만디르 가트
ⓒ 이상기
이제 배는 하류로 흘러간다. 중간에 만 만디르(Man Madir) 가트와 랄리타(Lalita) 가트를 지난다. 만 만디르 가트는 자이푸르의 왕(Maharaja) 자이 싱 2세가 1770년에 세운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이름의 가트를 델리, 자이푸르, 우자인, 마투라에 세웠다. 그러고 보니 그가 세운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도 이들 다섯 개 도시에 세운 바 있다. 이들을 지나며 동쪽을 보니 일출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안개가 너무 많고 또 날씨도 흐리기 때문이다. 

마니카르니카 가트의 화장의식 바라보기

 마니카르니카 가트
ⓒ 이상기
배는 어느새 마니카르니카 가트에 이른다.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화장터로 유명하다. 화장은 인도에서 가장 흔한 장례방식이다. 갠지스강의 가트에서 화장을 하면 그의 영혼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바라나시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다. 그리고 이 가트는 인도에서 화장 의식이 시작된 때부터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행해지는 장례의식을 잠시 살펴본다. 바라나시에서 죽은 사람들은 우선 이곳 마니카르니카 가트로 운반된다. 그리고 시신을 천으로 감싼다. 먼저 흰 천으로 감싸는데, 이것이 우리의 수의에 해당한다. 그리고는 노란색 천으로 한 번 더 감싼다. 그 다음 시신을 대나무로 만든 들것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시신을 꽃과 천으로 다시 장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상여를 네 사람이 들어 갠지스강으로 운구한다. 그리고는 그 상여를 통째로 갠지스강에 넣어 시신을 목욕시킨다. 그리고 나서 장작을 쌓은 화장대에 시신만 올린다. 장작은 보통 3단으로 쌓는데,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5단으로 쌓기도 한다. 그리고는 불을 붙여 화장을 한다.

그런데 시신이 우리처럼 완벽하게 타 뼈만 남는 게 아니다. 화장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드러나기도 하고 덜 태워지기도 한다. 화장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까지는 볼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화장한 시신은 갠지스강에 뿌려진다. 그러나 덜 탄 시신 일부가 떠내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화장터 주변에는 꽃을 먹는 소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화장되어 갠지스강으로 돌아간다.

배를 타고 올라가면서 만난 풍경들

 갈매기 배
ⓒ 이상기
이제 뱃머리를 돌려 상류로 올라간다. 아침인데도 간간이 목욕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러나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이지 때를 닦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목욕의 개념이 우리와는 다르다. 여기서 목욕은 신의 축복을 받는 의식이다. 강에는 아침식사를 찾아 나왔는지, 갈매기들이 많다. 한 배에 유난히 갈매기들이 모여든다. 자세히 살펴보니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 같다.

강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처럼 20명이 넘는 팀도 있지만, 한두 명 또는 네댓 명이 타는 배도 있다. 이들 배는 노를 저어가는 작은 배다. 우리는 아힐랴바이(Ahilyabai) 가트를 지나 더 올라간다. 그 다음 문쉬(Munshi) 가트가 나온다. 문쉬 가트는 궁전 형식으로 특이하게 지었다. 이 건물은 현재 호텔 체인인 클락스(Clarks) 그룹이 구입해 호텔로 개조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가트에서 빨래하는 사람
ⓒ 이상기
가트를 따라 일본어도 보이고 한국어도 보인다. '철수 최고의 보트'라고 썼다. 배낭여행객들이 철수네 보트를 많이 이용한다는 이야길 들은 것 같다. 이쯤부터는 강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이 한 빨래가 가트에 걸려 있다. 배를 타고 위로 올라갈수록 관광객이 적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트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다. 우리는 케다르(Kedar) 가트를 지나 하리쉬찬드라 가트에서 배를 내린다. 그리고는 가트의 계단을 통해 쉬발라(Shivala) 로드로 가 버스를 기다린다.

100주년을 맞는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 이상기
우리는 이제 버스를 타고 바나라스(Banaras) 힌두대학교로 간다. 여기서 바나라스는 바라나시의 인도식 표현이다. 바나라스 힌두대학교는 정치가이자 교육자인 마하마나(Mahamana)에 의해 1916년 설립되었다. 원래 그의 이름은 말라비야(Madan Mohan Malaviya, 1861~1946)지만, 마하트마(Mahatma)처럼 존경의 표시로 마하마나라 불린다.

그러므로 바나라스 힌두대학교는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현재 14개 단과대학과 6개 연구소에 3만 명이 넘는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공대, 경영대, 법대, 농대, 의대 등이 유명하다. 우리는 이들 단과대학을 차로 한 바퀴 돌아본다. 우리가 방문한 1월 22일에는 인도 수상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대학 개교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해서 경계가 삼엄한 편이었다.

 바라나시를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수상 기사
ⓒ 이상기
나렌드라 모디 수상이 이곳 바라나시를 방문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뉴델리와 바라나시를 연결하는 디젤기관차 마하마나 특급(Mahamana Express) 개통 테이프를 끊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바라나시의 모디 수상 환영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다 차가 전복되어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병원을 찾는 것이다. 셋째는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축하하는 일이다. 이들 세 가지 일 모두에 마하마나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이 1월 23일자 인도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중 <힌두스탄 타임스 hindustantimes>는 모디 수상의 바라나시 방문을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수상이 카시(Kashi)에서 기차의 테이프를 끊고, 장애자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카시는 바나라스의 옛날 이름이다.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 The Times of India> 역시 수상의 바라나시 방문을 2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바나라스 힌두대학교가 기차의 이름에 대학설립자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두루가 사원에 들어가 천대를 받다

 뉴비슈와나트 사원
ⓒ 이상기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내에는 뉴비슈와나트(New Vishwanath)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1931년부터 35년이나 걸려 1966년 완성되었다. 기존에 있는 카시 비슈와나트 사원을 모방했기 때문에 뉴비슈와나트 사원으로 불린다. 가장 큰 특징은 힌두교 사원 중 사원의 높이가 가장 높다는 점이다. 시카라로 불리는 중앙 타워가 77m나 된다. 사원의 주신은 1층에 모셔진 시바지만, 사원 내에 작은 규모로 사원이 나눠져 모두 9명의 신을 모시고 있다.

이곳은 다른 힌두교 사원과 달리 외국인의 출입이 허용된다. 그래서 우리는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지성소에서는 우유를 붓고 물로 씻어내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힌두교들은 그 앞에서 꽃을 바치고 머리 숙여 기도를 한다. 그런데 외국인인 우리가 그 광경을 보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성소를 빠져 나와 옆에 있는 작은 사원으로 간다. 그곳에는 신상만이 모셔져 있다.

 사원에서의 뿌자 의식
ⓒ 이상기
힌두교 신자가 아닌 우리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신이 보인다. 코끼리 모습을 한 가네샤와 원숭이 모습을 한 하누만이다. 춤추는 시바 나타라자도 보인다. 사라스와티와 빠르바티도 보인다. 그런데 이들 모두 옷을 입고 꽃을 걸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보고 사원을 나온다. 사원 입구에는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설립자인 마하마나 동상이 있다. 동상 아래 '가장 존경받는'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두르가(Durga) 사원이다. 이름처럼 두르가 여신을 모신 사원으로, 18세기 벵갈의 여왕 마하라니(Maharani)에 의해 건설되었다. 사원이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졌는데, 그것은 강한 힘의 소유자인 두르가의 상징색이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호랑이를 타고 다니며, 치명적인 무기로 악을 응징한다. 점잖은 빠르바티와는 대조적으로 용감하면서도 사나운 존재로 나타난다.

 두르가 사원
ⓒ 이상기
이곳은 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만을 살펴본다. 벽에 특별한 조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예술성이나 미학성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곳곳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보낸다. 사원에는 또 원숭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 원숭이들도 성질이 사나워 보인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이빨을 드러내고 경고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별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사원 북쪽의 연못을 살펴본다.

사원 옆에 이렇게 훌륭한 호수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호수에 비친 사원의 모습이 더 신비해 보인다. 이곳에 호수가 있는 것은 갠지스강으로부터 멀지 않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이 범람할 당시 만들어졌고, 그 후 도시 계획으로 연못으로 조성된 것 같다. 우리는 두르가 사원을 끝으로 바라나시 관광을 마친다. 그리고 10시 50분에 바라나시를 출발해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호수에 비친 두르가 사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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