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 15초간에 볼 수 있는 것들

이상국 2015. 12. 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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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 - '인블룸'그리고 '사랑과 영혼'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래전엔 그것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잊혀 그것을 비웃는 사람이 되진 않았는가. 나는 나를 돌아다본다.

영화 '인블룸(in bloom, 2008년)'과 '사랑과 영혼(1990년)을 우연히 같은 날 다시 보았다. 인블룸은 디비디로, 그리고 사랑과 영혼은 늦은 밤 EBS명화로 보았다. 내 마음 속에서 두 작품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어떤 공유지점들이 강렬한 의미망을 이루며 내 의식을 흔드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은 오랜 만이다.

가족이 암 선고를 받고나서, 나는 남의 일처럼 여기던 죽음을 일상 속으로 끌어와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태어난 모든 이는 죽으며, 한번 밖에 죽지 못한다는 이 평범하고 진부한 사실이, 그 한 존재에겐 모든 것이라는 것을, 우린 너무나 흔하게 만나는 죽음들과 일상에 널린 죽음의 스토리들 때문에 쉽게 직면하지 못한다. 죽음이 가벼운 자리에 놓이면서, 삶의 영성과 죽음의 영성이 동시에 천박해지는 재앙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싶다.

꽃 피는 시절을 의미하는 '인블룸'은 원제목이 '그녀 눈 앞에 펼쳐진 인생(The Life Before Her Eyes)'이다. 학교의 총기난사로 화장실에서 죽음을 당한 한 소녀가 죽어가는 15초 동안에 바라보았던, 죽지 않았더라면 보았을 15년간의 삶을 영화로 꾸민 스토리다. 총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온 학교친구는 마침 절친과함께 그곳에 있던 다이애나와 모린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묻는다. "나는 너희들 중 한 사람만 죽일 거야. 누가 죽고싶어?" 이 질문은 운명의 선택지였다. 삶의 어느 순간엔 인간이 저렇게 저승사자의 대역을 하기도 한다.

물론 둘 다 이제 막 피어나는 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적인 신념이 강했던 모린이 먼저 말했다. "내가 죽을거야. 쟤는 살려줘." 그때도 다이애나는 자신의 생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망설이고 망설였다. 그것을 눈치 챈 총기난사범은 다이애나에게 압박하듯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때, 그녀는 모린처럼 말한다. "내가 죽을거야." 총구는 그녀의 가슴을 향해 총성을 울린다.

물이 흥건한 화장실의 수면 위로, 죽어가는 자가 바라본 못다한 생의 풍경과 영혼을 뒤흔든 트라우마들. 존경하는 교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남편의 외도와 자식의 죽음까지를 목도하며 그녀는 다시 죽는다. 추사에 관한 취재를 할 때 예산 고택의 화장실에 씌어있던 말을 떠올린다.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싶던 내일이라는 것." 죽음 앞의 간절함을 깨닫는 것이 삶의 영성이 아닌가 싶어지는 영화였다.

어젯밤에 본 영화 '사랑과 영혼'의 원제목은 '유령(GHOST)'이다. 원제가 훨씬 선명하지만, 우리 감성에는 사랑하는 육신과 그것의 영혼을 병렬로 풀어준 제목이 더욱 인상적이고 힘있게 느껴진다. 카피를 뽑은 이의 재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영화는 '죽음 이후의 영혼'의 행방과 그것의 고뇌에 대해 성찰하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죽음 이후에 그토록 사랑했던 그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삶과 죽음 사이에 경계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아왔지만, 꾸준히 수많은 스토리들의 질료가 되어 우리의 생을 떠돈다.

'사랑과 영혼'은 너무 우화적이어서 지금 다시 보니 유치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지만, 처음 이 영화를 접할 때의 감동과 충격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것은 삶을 뛰어넘는 사랑, 죽음에 이르러서도 접지 못하는 검질긴 사랑에 대한 동경과 예찬이 심장을 벌떡이게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냥 싱거운 블랙코메디였을 것이다. 이제 막 절정을 향해가는 사랑을 긴급히 중지시킨 죽음에 대한, 인간의 항의가 이 영화에 묻어있는 심정의 기폭제를 이룬다.

그러나 다시 보니, 죽음 이후의 '존재'마저도 물화(物化)하여 해석하고 표현하는 서구의 사유구조를 잘 드러내는 영화이구나 싶었다. 귀신이 어떻게 살아있는 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그들 나름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육신을 지니지 않은 자는 분노와 같은 지극한 감정으로만 현실 속의 물건을 움직이고 흔들 수 있다는 '가상적인 원리'를 스토리 속에 심어놓았다. 또 그것이 어떻게 벽이나 닫힌 지하철을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영상으로 '현실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죽음 이후를 물질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그 귀결과 신념은 오히려 종교적이다. 죽은 이후 그의 역할은 세상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또 악인과 선인의 죽음 이후에 대한 이미지를 단순화하여 보여주면서, 권선징악의 도덕교과서를 펼쳐놓기도 한다.

죽으면 다 똑같아지며, 무화(無化)하는 물질적 과정들을 겪게 된다는 생각에 대한 반격으로 만든 이 영화는, 죽음의 영성(靈性)을 돋워 우리 삶의 둔감과 비루함을 되살피게 하는 힘이 있다. 생애 안에 갇혀 우리의 모든 가치를 설정했던 그것보다 조금은 더 멀리, 더 길게, 그 의미를 확장함으로써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었는지 모른다. 죽었다고 죽은 것이 아니다. 1955년 영화의 주제곡이었던 Unchained Melody는 이 영화에서 다시 주제곡이 되면서 놀라운 히트를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오, 나의 사랑스런 그대여. 나는 오랫동안 쓸쓸히 당신을 구하고 있었소. 많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는데, 당신은 지금도 나의 것일까?

체인에서 풀려난 노래는 영원히 흐른다.

어린 다이애나를 연기한 에반 레이첼우드와 죽음 이후의 삶을 연기한 우마 셔먼, 그리고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의 눈길을 잊을 수 없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살아도 살아있는 것만은 아니다. 흐르는 영성의 시절이 있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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