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변호사>와 <탐정>은 기획된 쌍둥이인가

김성호 2015. 10. 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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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85] 안정적인, 너무나 안정적인, 그래서 안타까운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 성난 변호사 원톱으로 영화를 멱살 잡고 끌고 갔다는 평을 받은 배우 이선균
ⓒ CJ 엔터테인먼트
지난 7월 22일 <암살>이 개봉한 뒤 3달 넘게 지속된 한국영화의 압도적 흥행세가 10월 8일 <마션>의 개봉과 함께 식어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암살>의 개봉 직전까지 할리우드 외화에 참담하게 눌려있던 한국영화가 <암살>, <베테랑>, <사도>, <탐정: 더 비기닝>의 연타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리들리 스콧의 <마션>에 맞설 만한 대작의 부재로 다시금 주도권을 내어준 것이다.

한국영화 가운데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마션>과 같은날 개봉한 이선균 주연의 <성난 변호사>다. CJ 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투자하고 배급한 영화로 <탐정: 더 비기닝>과 함께 가을 극장가를 휩쓸 오락영화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개봉 1주일 만에 69만의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3위에 올라있는 <성난 변호사>는 10월 중순에 돌입한 현재까지 가장 선전하고 있는 한국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봤던 듯한 장면이 이어지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특히 2주 앞서 개봉한 <탐정: 더 비기닝>을 본 관객이라면 이런 인상을 더욱 많이 받을 것이다. 두 영화가 많은 면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CJ 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았다는 것부터, 보름 차이를 두고 개봉한 범죄액션물이라는 점 등 비슷한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이 우연이 아닌 철저히 의도된 장치일 수 있다는 점에서 몹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두 영화가 얼마나, 그리고 왜 그렇게 비슷한 건지 살펴보면 한국영화가 어떤 힘과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부터 두 영화가 얼마나 닮아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투톱 형사액션물과 원톱 범죄액션물

 2주 차이를 두고 개봉한 <성난 변호사>(왼쪽)와 <탐정: 더 비기닝> 포스터. 두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 오마이뉴스
우선 공통점을 논하기 전에 차이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먼저 개봉한 <탐정: 더 비기닝>은 왕년에 잘 나갔던 형사와 형사가 되고 싶은 남자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어가는 작품이다. 주인공 사이에 신뢰가 쌓여있지 않고 문제는 실마리조차 잡기 어려우며 각자 가정사의 고충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삼중고를 안고 있지만, 둘은 뛰어난 실력과 운으로 마침내 사건을 해결한다. <리썰웨폰>이나 <러시아워>, <투캅스> 류의 전형적인 투톱 형사액션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 <성난 변호사>는 원톱 범죄액션물이다. 잘 나가는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변호성이 주인공으로, 그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어느 쪽이든 이기는 게 곧 정의'라는 좌우명에 걸맞게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한 제약회사 대표의 제안에 따라 여대생을 살해한 피의자의 변호를 맡게 되는데, 사건이 예상치 않게 흘러가며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빠져든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절망하는 대신 분노한 변호성은 뛰어난 능력으로 악을 물리치고 통쾌한 결말을 이룩한다.

얼핏 보면 두 영화는 투톱 형사액션물과 원톱 범죄액션물이라는 차이가 확연하고, 악당이 드러나는 시점도 달라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탐정: 더 비기닝>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까지 누가 악당인지 알려주지 않고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재미를 주는 반면, <성난 변호사>는 중반부터 악당의 정체가 드러나고 주인공이 어떻게 이 거대한 악을 물리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비슷한 오토바이 추격신

하지만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이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두 영화가 너무도 비슷한 나머지 보고 나서 하루 이틀만 지나도 어느 장면이 어떤 영화에 나온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대표적으로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악당의 추격신을 들 수 있다. 이 장면은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데, 두 사건 모두 비슷한 시점에 유사한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탐정: 더 비기닝>에선 사건의 실마리를 ?던 형사 노태수가 코스프레 행사에 악당 이유노가 나타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행사장을 찾는 장면이 있다. 노태수는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수적인 우위를 점하고서도 사람이 많은 공원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갈아타며 빠져나가는 이유노를 놓치고 만다.

<성난 변호사>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과 유사한 신을 금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변호성이 누명을 뒤집어 쓴 피의자를 돕기 위해 나선 용식, 갑수와 함께 악당을 검거하려 하지만 실패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변호성은 한강시민공원 사물함에서 물건을 가져갈 악당을 잡기 위해 잠복했다가 물건을 갖고 도망치는 상대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오토바이에 탄 상대와 주인공 사이의 추격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이 신이 <탐정: 더 비기닝>과 상당히 비슷하다. 마치 같은 에피소드를 구상해 두고 상황에 맞게 변주해 서로 다른 영화에 끼워넣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 장면들은 두 영화에서 모두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범죄액션을 표방하는 전형적인 장르오락물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추격신이 비슷한 구도로 펼쳐졌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장면이다.

또 있다. 형사와 뛰어난 추리능력을 지닌 파워블로거가 짝을 이룬 <탐정: 더 비기닝>은 그 결말에 이르러 제목과 같이 탐정사무소를 개업했다. <성난 변호사> 역시 결말에서 변호사와 사무장이 함께 탐정사무소를 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정적인, 너무나 안정적인, '대기업 상품'으로서의 영화

▲ 성난 변호사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추격전 도중 넘어진 변호성(이선균 분)
ⓒ CJ 엔터테인먼트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 편의 CJ E&M 배급작에서 이처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엿보이는 게 과연 우연일까?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걸리라고, 탐정 시리즈물을 내보자고 기획된 상품은 아닐까?

사실 두 편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안정적인 작품이다.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어디서 많이 쓰인 전형적인 장면과 캐릭터를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장점도 있다.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는 매력적인 장면·캐릭터가 곳곳에 위치해 마치 거대한 기계 속 부품들처럼 제 역할을 하며 영화 전반을 움직인다. 김고은과 박지영이 연기한 캐릭터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조차 기능적 측면에서만 캐릭터를 활용한 탓으로 읽힌다.

이 영화들은 이 시대의 상업영화가 얼마나 정형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렇게 정형화된 영화들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장면을 어떻게든 더 낫게,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가장 고심했어야 하는 장면들을 가장 편하게 찍어냈기에, 이 영화들은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훌륭하지 않으며,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감동적이지 못하다. 지난 십 수 년 간 한국영화가 거둔 성취를 한 몸에 품고 있으면서도 작가라고 부를 만한 연출자의 씨가 말라가는 현실을 개탄하게끔 한다. 휘발되는 재미를 넘어 감격에 이를 수 있는 작품은 결코 이와 같은 에피소드의 연결만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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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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