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히스토리아] 오바마가 사랑한 '하와이안(스팸주먹밥) 무스비'

2015. 9. 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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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무스비(hawaiian musubi)’라는 음식이 화제다. 최근 몇몇 ‘먹방’에서 요리법을 방영한 이후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낯선 이름 같지만 사실 우리도 많이 먹는 음식이다. ‘스팸무스비’라고도 하는데 간단하게 말해 스팸주먹밥 내지는 스팸김밥이다.

만드는 법도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사각 주먹밥에 구운 스팸을 얹고 재료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김으로 감싸거나 묶으면 끝이다. 변화를 주고 싶으면 입맛 따라 계란말이나 치즈, 채소를 추가로 얹으면 된다. 쌀밥에 통조림 햄의 조합이니 기본적으로 미각을 자극해 아이들 도시락이나 어른들의 간편한 간식으로 인기가 높다.

우리한테는 그저 간편 음식에 지나지 않는 스팸주먹밥이지만 본고장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나름 사연이 있다. 하와이안 무스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와이 음식이다. 무스비는 일본 주먹밥 오무스비(おむすび)에서 나왔다. 일본 주먹밥에 미국 통조림 햄, 스팸을 결합한 퓨전 음식이다.

하와이 주민들은 왜 이런 음식을 먹게 됐을까? 하와이는 일본계 주민이 많은 곳이니 일본 음식 문화와 미국 통조림 햄이 사이좋게 결합해 자연스럽게 스팸주먹밥이 생겼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융합의 결과가 아니다.

2008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미국에서 하와이안 무스비가 화제가 됐다. 어느 날 신문과 방송을 본 미국인들이 낯선 음식을 보며 “저 이상한 음식이 도대체 무엇이냐?”며 궁금해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고향인 하와이에서 골프를 치다 그늘집에서 하와이안 무스비를 먹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었던 첫 흑인 대통령 당선인이 흑인 음식인지 하와이 음식인지 정체 모를 낯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하와이안 무스비가 미국 본토에 소개됐다.

쌀밥에 스팸을 김으로 묶은 낯선 음식이 하와이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즐겨 먹는 간편 음식이라는 것, 하와이에서 자란 버락 오바마 당선인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이 음식을 먹었다는 것, 그리고 이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등이 보도되면서 졸지에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와이안 무스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음식이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하와이에는 수많은 군인이 주둔했고 전쟁 기간 중 다량의 스팸이 보급품으로 지급됐다. 전쟁으로 신선한 고기의 공급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장병들은 대신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스팸을 먹곤 했다.

스팸은 사실 하와이 주둔 미 해군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전체에 대량으로 보급됐다. 스팸은 사실 ‘짝퉁’ 햄 통조림이다. 특정 상표인 스팸(SPAM)이라는 이름이 짝퉁이라는 증거다. 진짜 햄이 아니라 양념한 햄(spiced ham) 혹은 돼지고기 어깨살과 햄(Shoulder of Pork And Ham)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순수 햄이 아닌 돼지고기 어깨살과 소량의 햄, 그리고 전분을 혼합해 만들기 때문에 순수 햄과는 달리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따라서 군인들에게 무한정 공급됐다. 너무 많이 공급되자 넘치는 분량은 공식, 비공식 경로로 민간에 흘러들어갔다. 하와이에 스팸이 넘치게 된 배경이다.

한편 하와이에서 일본계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던 생선초밥은 전쟁 중 쉽게 먹을 수 없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생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만든 것이 주먹밥에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스팸을 얹고 김밥으로 둘러싼 하와이안 무스비다.

전쟁이 끝났어도 하와이 주민들은 맛있는 스팸주먹밥을 계속 먹었고 오바마 역시 대통령 당선 후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음식을 찾았던 것이다. 스팸무스비가 널리 알려진 배경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그래픽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24호 (2015.09.09~09.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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