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평냉'을 아느냐?
평양냉면 즉 ‘평냉’은 미식계의 떠오르는 별미다. 그래서 준비했다. 평양냉면계의 고수 배순탁 작가가 소개하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그러나 그 누구도 모르는 평양냉면 맛집들.

평양냉면 전성기다. 관련 기사와 방송이 차고 넘친다. 그 와중에 tvN <수요미식회>까지 평양냉면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수요미식회>에 등장한 평양냉면집 세 곳은 목하 시간 불문하고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전해진다. 내가 ‘전해진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최근 서울 시내의 주요 평양냉면집 근처에도 가본 적 없기 때문이다. 방송의 여파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나는 여름에 평양냉면을 잘 먹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더운 여름에 돌아다니는 게 싫기 때문. 물론 작심하고 평양냉면을 먹겠다고 나선다면 한여름의 더위 따위가 문제일 리 없다. 그리고 <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한 세 군데의 가게 외에도 평양냉면 맛집은 무진장이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오래 줄을 설 필요 없이 평양냉면을 호로록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실로 ‘허니버터칩’만큼 귀한 정보 아니겠는가.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경험한 건 마포을밀대에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음반사에 다닐 당시 회사 선배가 처음으로 데려갔다. 처음 평양냉면을 흡입하기 시작했을 땐,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선배를 한 대 칠 뻔했다. ‘이따위 걸 나에게 먹여?’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평양냉면에 입문한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빨래를 빨고 난 물 같았던 그 육수가 계속 당기는 것이었다. 이후 여의도 MBC에서 방송작가로 일한 뒤부터 을밀대에서 수육과 냉면을 주문하고, 빨간 뚜껑(당시 대세였던 진로 소주를 이렇게 불렀다)을 얼마나 깠을까. 그러나 이제 평양냉면이라면 먹어볼 만큼 먹어본 나는 을밀대에 ‘자주’ 가진 않는다. 1년에 두어 번 정도? 그보다 더 훌륭한 평양냉면집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MBC 방송국이 상암동으로 이전한 지금은 일산 을밀대를 애용하는 편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오너 드라이버라면 마포보다 일산의 을밀대를 권한다. 사람도 훨씬 적고, 육수도 마포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한여름이라면 오후 3~4시 사이가 베스트다. 반대로 강남 분점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포 본점만큼이나 사람이 너무 많다.
두 번째로 평양냉면의 맛을 각성시킨 곳은 너무도 유명한 주교동의우래옥이다. 당시에 만났던 여자친구 생일이라 특별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는데 ‘한식 사랑녀’였던 여자친구는 불고기를 원했다. 수소문해 보니 우래옥의 불고기가 끝내준다는 정보를 득템.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허걱. 불고기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 결국 “내일부터 당분간 굶는다”는 각오로 불고기를 주문했다. 맛있었다. 하긴, 1인분에 2만원이 넘는데도 쥐꼬리만한 양이라 맛이 없다면 가게에 불을 질러야지. 그런데 후식으로 시킨 냉면을 먹는 순간, 아아, 유레카! 그윽한 육 향과 툭툭 끊어지는 메밀 면의 환상적인 조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드디어 내가 ‘평양냉면 성애자’로 거듭난 것이다.
얼마 전 평양냉면을 다룬 <수요미식회>에선 우래옥을 좋아한다고 하면 속칭 ‘평뽕 공력’이 좀 떨어진다는 식으로 묘사했는데 다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듯 수많은 평양냉면 집을 순례하고 돌아온 나의 결론은 역시 ‘결국 우래옥’이다. 일단 주말보단 평일을 권하고,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이 막 끝난 오후 2시쯤을 선택하시라. 혹시라도 옆자리에서 비싼 불고기를 굽는다면 그 냄새라도 맡으면서 냉면 한 그릇을 비워도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을 거다. 우래옥은 주교동 본점 외에도 강남점이 있지만 선택은 무조건 본점이어야 마땅하다.
우래옥을 영접한 뒤부터는 서울과 근교의 평양냉면집이란 집은 거의 다 가본 것 같다. 우래옥과 을밀대를 제외하고, 계보를 정리해 보자. 평양냉면 성애자라면 ‘의정부파’와 ‘장충파’를 꿰고 있어야 한다. 고춧가루가 특징인 의정부파는 총 네 곳이다. 의정부 평양면옥 본점을 필두로 필동의필동면옥, 입정동을지면옥, 잠원동본가평양면옥이 그 주인공들이다. 모두 가족들이 하는 집들인데, 이 중에서는 잠원동에 있는 본가평양면옥을 최고로 꼽겠다. 육수가 가장 깔끔하고, 다른 노포들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상대적으로 가게 자체가 깨끗하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연인끼리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면 이곳이 좋다. 전통적인 강자로 인정받는 평양냉면집 중에서 우래옥을 제외하면 화장실 관리 상태가 압도적으로 좋다.
물처럼 투명한 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장충파로 유명한 평양냉면집은 장충동평양면옥을 필두로 강남과 분당에 각각 하나씩 있다. 여기서 ‘가수 존 박의 단골로 유명해진 집’이라고 잘 알려진 논현동 평양면옥은 평양냉면 ‘입배틀’을 할 때 써먹기 쏠쏠하니 기억해 두면 좋다. 그리고 조금씩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분당의 평양면옥도 훌륭하다. 그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장충파 평양냉면 맛집이 하나 있다. 바로 일산에 있는대동관이다. 대동관은 장충동 평양면옥 주방장 출신의 사장이 차린, 이름만 다른 분점이다. 상대적으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충동 평양면옥 본점의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맛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대동관을 제외한다면 장충파 평양냉면은 아무래도 분당의 평양면옥이 가장 낫다.
분당이라고 하니까 한 군데가 더 생각난다. 몇 년 전부터 평양냉면 신흥강자로 주목받은 가게이자 을밀대처럼 북한의 지명을 상호로 가져온 ‘능라’다. 놀랄 정도로 훌륭한 평양냉면을 말아내는 가게다. 다만 차가 없으면 정말 가기 힘든 위치에 있다는 게 흠이다. 나도 방문 경험이 두 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최근엔 너무 유명해져서 식사 시간보다 일찍 움직이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고 한다. 여의도에 있는정인면옥도 빼놓을 수 없다. 본래 경기도 광명에 있었는데 어느 유명 블로거의 격찬 이후로 대박이 터졌고, 결국 여의도까지 터를 옮겼다. 완성도가 들쭉날쭉하게 느껴졌지만 여의도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다는 희소성만으로도 한때 자주 애용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전 11시에는 가야 줄을 서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마 오전 11시에 가게를 찾아서 평양냉면을 흡입하고 나오면 길게 줄지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짓게 될 거다.
이밖에도 종로의유진식당과 남대문의부원면옥은 값싼 가격이 장점이고, 다동의남포면옥에선 동치미 육수로 담아낸 평양냉면을 만날 수 있다. 우래옥 출신의 장인 김태원이 개발해 낸 벽제갈비 즉봉피양의 평양냉면은 어떤가. 이건 진짜 애기하지 않으려 했는데 봉피양의 평양냉면은 신촌 지점이 갑이다. 가히 방이동 본점과 맞먹는 클래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반대로 최악의 봉피양은 인천공항점인데 해외에서 귀국해서 평양냉면이 급하게 당긴다 하더라도 이곳만큼은 피하길 권한다. 그리고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서울역점도 인천공항점 못지않게 바닥을 치는 맛이 난다고 한다.
평양냉면을 둘러싼 오랜 논쟁은 “과연 어떤 평양냉면이 평양에서 파는 진짜 평양냉면과 가장 유사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는 우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중식은 중국의 중식과 같은가? 평양냉면도 마찬가지다. 본래 냉면은 메밀 면과 국물 혹은 육수로 만들어진 요리를 의미한다. 결국 변형을 가하되 이런 기본 조건을 잘 지킨, 완성도 있는 한 그릇을 내놓으면 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있어서 최고는 역시 우래옥이고, 차선으론 신촌 봉피양, 세 번째론 일산 대동관, 네 번째론 내 추천으로 강풀 작가도 반한 방이동금왕평양면옥을 꼽겠다. 방이동 금왕평양면옥은 내 기준엔 방이동 봉피양 본점보다 맛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서울 밖까지 훑어보면 인천의경인면옥, 동두천의평남면옥, 연천의황해냉면등 평양냉면의 세계는 <수요미식회>에서 논한 수준보다도 넓고 광활하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음악 평론이 아니라 평냉 평론을 하고 있담?
who's he?
배순탁은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방송작가이자 음악평론가 그리고 <청춘을 달리다>의 저자이며 SNS상에서 ‘냉면 왕’을 자부하는 미식가다.
WRITER 배순탁
EDITOR 민용준
PHOTO 중앙일보
DESIGN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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