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가 사는 성, 세고비아에 있었네

이성애 2015. 6.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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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가족 리씨네 유럽캠핑 에세이 24] 스페인 세고비아

[오마이뉴스 이성애 기자]

 4일 동안 우리 집을 줄기차게 관찰하시던 네델란드 부부. 떠나기 전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알고보니 현이 아버지가 일본의 유명한 축구선수인줄 알았다고 하신다. 미안해서 어쩌나.
ⓒ 이성애
전날 저녁 늦게 도착했을 때 옆집 아이 둘이 놀이터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내일 같이 놀면 좋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현아, 놀이터에 가서 옆 집 애들이랑 좀 놀아."
"엄마, 친구네 벌써 옷 입고 여행 가요."

 하루 중 반나절은 관광을 하고 반나절은 이렇게 독서, 그리기, 놀이 등 캠핑장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 이성애
시계를 보니 과연 캠퍼들이 관광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일어난 시간은 포르투갈 시간으론 오전 9시 40분이었고 이곳 시간으론 10시 40분이었다. 가장 늦게 일어난 날이다. 이곳엔 우리처럼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 여러 집이었다. 프랑스 집은 3살, 5살가량으로 보이는 딸 둘, 스페인 집은 1살, 4살가량의 아들 둘, 또 어느 나라인진 모르나 2살짜리 아들 1명이다. 아이들이 많다. 어떤 음성과 행동을 주고받으며 의사 소통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국적 아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꽤 오래도록 놀았다.

잠시 후 프랑스 집 둘째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현이가 달려와 말하기로는 쭈가 그 아이에게 침만 발랐을 뿐인데 울었다고 했다. 워낙 그 아이의 징징대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라 쭈가 침을 어디에, 어떻게 발랐을까만 상상하며 그냥 내버려두었다. 애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박물관과 타파스를 만나는 우리만의 방법

 카테드랄계의 귀부인 되시겠다.
ⓒ 이성애
포르투갈에서 넘어온 후 스페인의 첫 관광지라 그런지 세고비아의 골목길은 정갈하고 정겨웠다.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카테드랄은 지금껏 본 것 중 외관이 가장 화려했다. 좋게 말하면 화려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잡했다. 카테드랄계의 귀부인으로 불릴만 하다. 여하튼 섬세하고 예뻐서 이채로웠다.

골목길을 지나 월트디즈니 사가 만든 백설공주 애니메이션에서 백설공주 성의 모티브가 됐다는 캐슬은 깔끔하고 세련된 고딕 양식에 지붕을 파란색 타일로 붙인 궁전이었다. 사실 한국의 여행 책에서는 성의 외관에 대한 언급만 많았던지라 안쪽 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시큰둥했다. 들어갈까, 어쩔까 망설이는 사이 갈등을 종료케 한 현이의 말.

"엄마, 나 오줌 마려워요." 

 백설공주를 꿈꾸던 아이들을 너무 검게 태웠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 이성애
그래서 돈을 내고 박물관에 갔다. 화장실 때문에 궁전에 들어가다니. 그곳에서 아이들은 왕의 침실, 왕이 이웃 나라 사자를 만나는 접견실 등을 보았다. 세계 명작 동화라는 출판물 덕택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왕실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외국의 궁전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쉽다는 생각을 하며 '이것이 옳은가'에 대해 생각하다 그만뒀다. 고민을 깊이 하기엔 공기가 너무 산뜻하고 햇볕이 아름다웠다. 

관광을 했더니 뭔가를 먹어야겠다. 남편은 좋은 식당을 찾을 때 첫째, 손님이 많은가를 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곳은 아주 나쁜 식당이었다. 씨에스타 시작이라 현지인들이 쉬면서  맥주하기 좋은 시간일 텐데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 너무 나쁜 식당이었다.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종업원이 있었고 우린 그 앞 야외 좌석에 앉았다. 말은 안 통해 대충 눈치껏 알아낸 바로, 타파스는 식당 안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의 몸은 벽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팔짱도 풀어질 기미가 없어 보이기에 난 일어섰다. 시큰둥하게 인사하며 주차장으로 나왔다. 기분이 나빴다. 남편은 중년의 남자가 영어를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의 자세가 그렇게 투박하지 않았으며 안쪽에서 먹는 건 그곳의 규칙일 수도 있으니 기분 나빠할 것 없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동감하지만 말이 통하고, 안 통하고보다는 그냥 그곳에서 무엇을 먹든 맛있고 편안하게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온 것일 뿐 더 말하기는 싫었다. 여하튼 세고비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호의적이지 않다고 독단을 내리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 현지인 마을에 있는 큰 마트에 갔다가 가까이 있는 식당에 발견했다. 사람이 가장 많다. 주인쯤 돼 보이는 아저씨가 나왔다. 역시 영어를 못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도록 남편을 식당으로 와서 보라, 나에게 펜과 종이를 주며 먹고 싶은 음식을 그려 봐라 등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우린 원하는 타파스를 먹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오징어 튀김 타파스를 먹으려면 오징어를 그렸어야 했는데 뒤늦게 생각하니 내가 그린 것이 문어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이라면 어떤 곳을 여행할 때 그 공간과 사람, 물체 등 모든 것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또 내가 줄 수 있는 것 중 최고의 것은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정도 분주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곳에 머물며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눈여겨 봐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랬을 때 민달팽이 한 마리조차 친구가 되어 결국 추억이 되고, 외국인도 설령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해도 눈빛과 짧은 몇 마디로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조금만 속도를 늦추자. 그리고 머물러 보자. 그 공간과 사람에게 시간을 할애하자. 남들이 보면 한 나라, 한 장소에서  2~3배의 시간을 할애하는 우리 가족을 향해 " 왜 저 사람들은 볼 것도 없는 곳에서 며칠이고 똥 싸고 뭉기고 앉아 있는 걸까?" 할 수도 있겠지만 느리게 여행함으로써 우린 몇 가지를 얻었다. 그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그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줌으로써, 그곳에 대한 나의 속단, 독단을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난 엄마가 3cm만큼 좋아"

 사실 관광객들은 세고비아에서 이 다리를 가장 많이 보러 온다. 물이 지나는 다리의 위용은 물론 어마어마하다.
ⓒ 이성애
어제 우리는 캠핑장을 돌아가며 쌓은 높은 담장 밑으로 토끼가 드나드는 걸 봤었다. 현과 쭈는 아침부터 토끼굴에서 나오는 토끼를 잡는다고 그 앞에 캠핑 의자를 다 날라다 놨다. 아침을 먹어야 하니 가져오라고 했더니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 급기야 현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징징댄다.

할 수 없이 쭈가 의자를 가져 왔다. 언니가 징징댈 때 엄마가 예민해진다는 걸 아는지 그 작은 눈의 움직임이 빠르다. 눈치를 봐가며 할당된 아침 식사를 끝낼 때까지도 현은 식탁에 앉아 징징대며 아침 식사량을 가지고 엄마, 아빠와 협상 중이다. 그새 쭈와 나는 텐트 안에 들어가 끌어안고  뒹굴뒹굴하며 눈끼리 부비며 뽀뽀했다. 일명 '눈뽀뽀'다. 물론 턱뽀뽀, 발뽀뽀, 손뽀뽀 다양하다.

나 : "쭈야, 넌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나를  가리키며)"
쭈 : "엄마."
나 : "쭈야,  쭈는  엄마 좋아?"
쭈 : "응."
나 : "얼만큼?"
쭈 : "(엄지와 검지로 약 3cm를 만든다)"

나 : "그만큼?"
쭈 : (끄덕끄덕)
나 : "쭈야, 엄마가 왜 좋아?"
쭈 :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냥 엄마니까."
나 : (한 번 반문하여 똑같은 대답을 들은 후 허탈감이 밀려와 장기하의 <그렇고 그런 사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너랑 나랑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예~ 그런 사이니까~"

색칠하는 현의 그림을 보며 남편은 비례감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 뒤로 붙이는 설명이 비례감이란 개념과 맞지 않았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현의 그림을 낚아채 보았다.

"이건 비례감보다는 대칭이 가깝겠구만."

일부러 목에 힘을 빳빳이 주고 그림책을 현에게 되돌려 주는 사이 남편은 8개의 치아를 보이며 웃더니 자신의 구린내 충만한 신발을 벗어 나에게 던질 시늉을 했다.

나 : "여보, 오늘은 신발로 맞기에 적합하지 않은 날씨에요.
남편 : "그런 편견을 버려. 이런 화창한 날씨는 신발로 맞기 가장 좋은 날씨야. 비 는 날에 맞는다고 생각해봐."

그러나 역시 자애롭고 호탕하며 끝내주는 등 근육을 가진, 대한남아 리쌍훈님은 신발을 던지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이와 같은 맨트를 던져야했다.

"당신 사진 찍은 거 보니까 등근육이 멋있더라."

세고비아의  시원한 바람결에 느티나무의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참 시원하다. 바람의 결,  땅의 기운,  현지인의 냄새를  더 맡고 싶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간'이란 기회를  더 주면 되겠지만. 그래도 우린 여행자이니 여기까지! 가자!

덧붙이는 글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 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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