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으로 '약 쇼핑'을 다녀오다

강상오 2015. 6. 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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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난 행복하지 (17)] 방사성 요오드 치료 준비

[오마이뉴스 강상오 기자]

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2013년 11월 28일. 병원에 가는 날이라 준비하면서 뉴스를 보는데 강원도 지역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1년 동안 눈 구경 한두 번 할까 말까한데... 12월도 안 됐는데 벌써 눈이 내렸다고 하니 겨울이 오고 있음이 실감이 났다. 윗 지방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날씨가 쌀쌀해졌기 때문에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에 단단히 싸맸다.

병원이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외과 외래진료가 있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엔 주차장이 항상 만원이다. 집에서 병원까지 차로 30분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병원입구에서 주차장 들어가는 데만 3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운동도 할 겸 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경전철-지하철-마을버스' 이렇게 여러 번 환승을 해야 도착할 수 있는 병원인데 몇 번 왔다갔다 했더니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외과에서 체혈을 해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고 신지로이드 처방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핵의학과에서는 방사성 요오드치료에 대한 상세 설명을 들어야 한다. 들러야 할 곳이 많기 때문에 오전에 일찍 병원에 갔다. 10시반쯤 도착해 본관3층 체혈실에서 체혈을 하고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있는 핵의학과로 내려갔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 2주간 뭐 먹고 살아야 하나

▲ 갑상선암 환자를 위한 가이드패키지 방사성 요오드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날 받은 갑상선암 환자를 위한 가이드 패키지
ⓒ 강상오
핵의학과에서 방사성 요오드치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준비사항에 대해서 들었다. 나 혼자가 아닌 다른 갑상샘암 환자들과 함께 조그만 회의실에 모여 들었는데 새삼 갑상샘암 환자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교육을 받고 핵의학과를 나올 때 내 손에는 '갑상선암 환자를 위한 가이드패키지'라는 안내서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신지로이드 중단에 따른 부작용 체크리스트와 기록용 다이어리가 들어 있었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방사성 요오드 약물 복용 한 달 전부터 매일 아침에 복용하고 있는 갑상샘호르몬제인 '신지로이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또한 2주 전부터는 '저요오드식'을 병행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에 많은 부작용들이 생긴다.

그렇게 발생된 부작용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병원에 제출하는데 제출된 부작용 자료를 근거로 이후에 하게 될 방사성 요오드 검사에서 신지로이드 중단을 대체할 수 있는 고가의 주사약에 보험적용이 가능하게 된다.

▲ 저요오드식 허용식품 목록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위한 저요오드식에 대한 허용식품 목록
ⓒ 강상오
나는 12월 30일에 입원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12월 한 달간은 신지로이드를 끊어야 하고 12월 3주차부터는 저요오드식을 해야 한다. 신지로이드는 그냥 안 먹으면 되는데 저요오드식은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병원에서 받은 허용식품목록과 더불어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들로 나름의 기준을 정리했다.

가장 힘든 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먹는 음식인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이 들어간 음식을 전부 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평상시 우리가 먹는 음식 중 장류가 들어간 음식을 제외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다.

또 천일염이 들어간 음식도 먹지 못한다. 저요오드식이라는게 요오드 성분을 최대한 먹지 않는 것인데 요오드 성분이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나 해조류 그리고 소금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천일염을 못먹으니 자연스럽게 천일염이 들어간 '장류'도 먹지 못하는 것이다.

'뭐 먹고 2주를 살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병원 매점에 판매하고 있는 '무요오드 소금'을 한봉지 구매했다. 2주간은 오로지 이걸로 만든 음식을 먹고 살아야 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닭가슴살만 먹고 살았던 적도 있었던 터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직접 해보면서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됐지만, 당시엔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예상할 수가 없었다.

▲ 메피폼 수술흉터를 없애주는 메피폼. 스마트폰 크기정도인 메피폼의 가격이 엄청 비싸다
ⓒ 강상오
핵의학과 진료를 끝내고 체혈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시간 동안 병원 주변을 배회하다 외과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수치의 변화가 있어 복용하던 신지로이드 용량을 조금 줄였다. 지난번 외래에서 평소보다 피곤한 느낌이 든다고 한 뒤 올렸던 약 용량을 수치검사 후 다시 내린 거다.

처방받은 몇 개월치 신지로이드와 비타민,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 복용해야 하는 테트로닌 2주분까지... 약이 쇼핑백으로 한가득이다. 병원 다녀오는 날엔 '약 쇼핑'하러 가는 것 같다. 그리고 퇴원할 때 받은 수술 흉터에 붙이는 밴드가 떨어져 1장 더 받았다.

스마트폰 크기만 한 것 1장이 10만 원이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 대충 잘라 붙였는데 이번에 받은 것은 수술 흉터 모양으로 조금 더 크게 여러장으로 잘 잘라서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비보험이 없었다면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이제 며칠 후부터 신지로이드를 중단함과 동시에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2013년. 내 나이 서른두 살의 겨울은 내 몸에 남은 갑상샘암과의 마지막 사투를 준비하기 바빠 추운 줄도 모른 채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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