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보다 2살 늦다는 우리 아이, 치료는 좀..
[오마이뉴스 김승한 기자]
한동안 받아쓰기 시험이 없었는데 지난 12일 드디어 시험을 봤습니다. 전날 엄마와 첫째 아이가 책상에 앉았습니다. 일단 받아쓰기 10문제를 읽습니다.
"오늘은 학교에 안 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놀았습니다."
제대로 읽어냅니다.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아, 너 다 알아?"
"예, 다 알아요."
?"그럼 이제 불러본다, 잘 써봐. 1번 '학교에 안 갔습니다.'"
▲ 시험문제 풀고 있는 첫째 아이 받아쓰기를 하면서 자꾸 곁눈질로 엄마를 봅니다. 눈치를 보는거죠. 공부때문에 벌써부터 아이가 눈치를 봐야하나... |
ⓒ 김승한 |
"어, 뭐야. 다 틀렸네? ○○아! 다 안다면서 왜 틀렸어?"
"어, 그러네."
아이가 당황했나 봅니다. 문제집과 자기가 쓴 글을 하나씩 보면서 짚어갑니다.
"이거는? 음, 이거죠? 요거는 이게 맞고요?"
"다 아네? 왜 알면서 다 틀려?"
?"엄마, 마음이 급했나 봐요."
"왜, 엄마가 때릴까봐서?"
?"예."
"○○아, 엄마가 왜 자꾸 때린다고 그래. 안 때린다니까!"
?"왜요?"
"엄마는 네가 건강한 게 최고야."
?"그래요? 예."
○○이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엄마가 틀린 글자 짚어주고 다시 받아쓰기를 하자고 합니다.
"○○아, 다시 틀린 거 써 봐야지."
"네."
다시 엄마 눈치를 봅니다. 한 문장 쓰고 곁눈으로 엄마 보고, 한 문장 쓰고 또 엄마 보고. 보다 못한 엄마가 다시 얘기합니다.
"왜 자꾸 엄마 눈치를 봐? 엄마가 그렇게 무서워?"
"네, 습관이 되었나 봐요."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내와 아이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웃음은 나오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상황입니다. 책상 위를 봤습니다. 열흘 전 테스트했던 첫째 아들의 언어평가 소견서가 도착했습니다. 흘끗 보니 점수와 간단한 의견이 적혀 있었습니다.
드디어 날아온 첫째 아들의 '학령별 언어 평가 소견서'
▲ 언어평가 소견서 첫째 아이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어휘력 및 문장 이해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나이에 비해 발음도 부정확합니다. 혹시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해서 검사를 받아보았습니다. |
ⓒ 김승한 |
수용 어휘력은 7살 정도, 표현 어휘력은 6살 수준입니다. 평소 가족끼리 말할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비슷한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듣다 보면 우리 아이보다 발음, 표현 어휘력, 문장의 완성도와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 언어 평가 소견서를 받아봤는데 우리 생각과 다르지 않네요.
음운 인식 검사 역시 상당히 낮은 수치로 평가됩니다. 음운 인식이란, 아이가 학업을 수행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읽기 및 쓰기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의 소리 구조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단어는 음절로, 음절은 여러 음소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떨어질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문장과 단어, 음절, 음소를 구분하지 못해 마치 처음 접하는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듣기 능력에서 언어의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채 듣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음절 발음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의 띄어 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이런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받아쓰기 같은 '쓰기'를 할 때도 음운을 구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바로 우리 아이가 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나이보다 2살 이상 어리다는 언어평가 소견서... 걱정이네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와 비교해 볼 때 음운 인식(음절과 음소 인식 능력)이 다소 떨어진답니다. 말소리와 음소 간 대칭 관계에 대한 이해를 못해서 쓰기와 읽기에서 내용 파악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휘력은 떨어지나? 어느 정도 주제의 이해는 따라갈 수 있고, 쓰기도 평균 속도에 속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음운 인식이 어려우니 빈번한 철자 오류와 함께 문체가 산만해 안정되지 않는 답니다.
아이 소견서를 보며 나와 아내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받아쓰기나 일기 쓰기를 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겁니다. 받침이 있는 발음은 입 모양을 보여주며 따라 해보라 시켜 보지만 정확한 발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밧줄을 놓쳤습니다'를 불러주면 '밥줄을 놓쳤습니다'라고 발음하거나, '능력이 있습니다'는 '는력이 있습니다'로 한다든지 말입니다. 그러니 받아쓰기 문장을 불러준다거나 자기 입으로 문장을 읊은 후 글을 쓰더라도 받침 글자는 반 이상이 틀립니다.
언어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는 책을 많이 읽어주고 일기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해주라고 합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자고 하면 멀쩡한 머리가 아프다 하고 온몸을 긁적이는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긴 하지만, 우릴 따라서 책을 펴는 것도 잠시고 바로 장난감에 손길이 갑니다. 뿐인가요? 일기 쓰자고 연필만 들면 갑자기 졸리며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우리 아이... 고민되네요.
그렇다고 치료까지 필요할까?
▲ 두 아들이 만든 어버이날 카드 왼쪽은 둘째(7살)이 유치원에서 만든 카드이고 오른쪽은 첫째(9살)이 학교에서 만든 어버이날 감사카드입니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카드를 펼치는 순간만큼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 김승한 |
일전에 우리집에서 첫째 아이를 테스트하던 선생님이 조언해주신 내용은, 가급적 지금 아이의 학습 지도는 엄마보다 아빠가 맡는 것이 낫답니다. 아마도 아이가 숙제나 문제 풀이 할 때 엄마가 지나치게 다그치지 않았냐는 것이지요. 문제를 풀면서 자꾸 엄마 눈치를 보는 것도 그렇구요. 그리고 "정확한 결과는 열흘 후에나 나오겠지만, 지금 상황을 봐서는 언어 치료를 한 번 알아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하고 가셨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 어릴 적에도 어휘력이나 읽기, 쓰기 등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넘어가며 자연스레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나요? 우리가 너무 아이의 상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어느 분야에서는 일찍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데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학령별 검사라는 게 아동의 성장 단계 중 대체적인 평균치에서 어느 지점에 어떤 형태로 분포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거지, 난독증 운운하며 언어 치료를 떠올리는 건 지나친 우려는 아닐까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아들 둘이서 학교와 유치원에서 만든 어버이날 카드를 보여줍니다. 종이로 접은 하트 모양의 꽃도 줍니다. 카드에 쓰인 글씨는 받침이 하나도 안 맞지만.
'아빠, 사랑해요. 마니마니 사랑해요.'
'엄마, 부자 되세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종이 접기하는 손놀림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들에게 종이접기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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