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서 떨어지다니.. 그럴리 없는데

신상협 2015. 5. 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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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 - 위기의 순간들] 서울로 올라온 제주청년의 '대입 방황기'

[오마이뉴스 신상협 기자]

1987년 12월 말. 대학입학시험에 선지원 후시험제가 처음으로 도입되고 11월에 시험을 치른 뒤였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제주도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실었다. 대학 합격 발표와 신체검사가 12월 29일 지원 대학교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폭풍 같은 여러 가정사로 인해서인지 내 나이를 헷갈려 9살에 나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켰다. 그 여파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영 신체검사통지서가 나와 얼떨결에 그냥 신체검사를 받게 됐다. 그 결과, 뜻하지 않게 대입시험을 치르기 두 달 전에 이미 1월 자로 입영예비통보를 받게 됐다.

그리고 맞이한 대입 선지원 후시험제. 학교 선생님은 무슨 주문처럼 계속 낮은 데로만 원서를 쓰라고 권유했다. 하향지원 끝에 그래도 'SKY대'를 선택했다. 시험은 잘 보지 못했지만, 채점 결과 그래도 합격 예상 커트라인이라 안심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육지로 향했다.

내가 불합격이라니... 내가 불합격이라니!

어렵게 물어 물어 찾아온 대학교 운동장.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가 지원한 학과 게시판을 찾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지원학과 게시판 앞에 열 겹이상 쌓인 사람들 뒤에 서서 내 번호를 찾아봤다.

어라? 이상하게도 내 번호가 없었다.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생각나는 암호 같은 다섯 자리 숫자. 57000.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상단에 찍혀 있어야 할 번호인데 말이다. 행여나 사람들 머리에 가려졌을까 앞에 가서 살펴봐도 내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동안 얼떨떨하게 앉아 있다가 다시 찾아보고, 또 찾아보고…. 역시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과에, 그것도 자존심을 버리고 하향지원한 그 학교 그 학과 게시판에 내 번호가 없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덧 오후. 운동장을 빠져나오면서 2차 지망학과 게시판도 잠깐 들렀다. 내 번호는 없어보였다. 어차피 거긴 합격해도 가지 않으리라 마음 먹은 곳이었다. 그래, 난 대입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자, 이제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서울역을 찾아갔다. 오후 해가 빌딩 숲 사이에 아직도 걸려 있었다. 서울역 개표구에 줄을 섰다. 12월 29일 밤 마지막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표를 사려고 줄 끝에 섰다. 시험을 보러 올 때 처음 비행기를 탔다가 시험을 치를 때까지 고막이 웅웅거려 수학시험을 망친 게 미워 부산을 거쳐 배로 제주도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내 앞의 줄이 점점 짧아질수록 손이 떨려왔다. 줄이 다 사라지자 갑자기 표를 사기 두려워져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내일 모레 1월 1일 신정 때 우리집에 가족과 친척들이 다 모일 텐데(당시 제주도에서는 대부분 신정을 쇠고 있었다). 친척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봐라…. 제주대 가라고 내 말을 그렇게 안 듣더니….'(작은 아버지)
'형! S대 시험? 떨어젼?'(형, S대 시험봐서 떨어졌어?, 사촌동생들)
'공부 잘한뎅 핸게 아니었구나이… 헤헤헤.'(공부 잘한다더니 아니었구나, 육촌형들 웃음소리)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서울역 근처 24시 만화방으로 발걸음을 옮겨 만화에 몰두했다. 만화방은 해가 지지 않는 곳이었다. 형광등의 낮이 계속됐다. 창문이 판대기로 막혀 있어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무도 나를 몰라보는 곳. 내가 찾던 곳이었다.

시계의 분침이 수십 바퀴 원운동을 했을 게다. 시침도 몇 바퀴 원운동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이윽고 일어서는데 발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렸다. 그러고 보니 만화방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니 다행히 어두운 밤이었다. 리어카에서 오뎅 다섯 꼬치쯤 먹고 다시 서울역에서 표를 샀다. 날짜를 보니 이미 하루가 훌쩍 지난 12월 30일 오후 11시 50분 기차. 기차 좌석에 앉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종점인 부산역.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칠흙같은 어둠이 가득했다. 휴우…. 아무도 나를 알아보기 힘든 이 밤, 낯설은 곳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때 시각 오전 4시 40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말로만 들어봤던 부산,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가라는 신호를 따라야 하나… 광장 한쪽 모서리에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이따금 멀리 길가를 지나는 자동차 불빛만이 무심한 횡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광장 한쪽 시멘트 바닥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대로 해가 뜨지 말았으면….

그날 하루 부산 온 동네를 다 떠돌아다닌 것 같다. 용두산 공원부터 자갈치시장, 부산항, 서면까지. 저녁이 되자 다시 부산역 근처 24시 만화방에 갔다. 아무 생각없이 손에 잡히는 만화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눈이 떠져 있는지 감겨 있는지 모르는 몽롱한 시간이 계속됐다. 배고프면 만화방 안에서 라면을 시켜 먹었고, 졸리면 만화책을 배 위에 올려놓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는지도 모르는 시간들이 계속됐다.

'상협아!. 상협아아아!'

만화방에서 엉엉 울었다

 한 만화방 풍경(기사에 등장하는 만화방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박창우
갑자기 깨질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눈을 떴다. 엄마 목소리였다. 아빠랑 싸울 때 나오는 날선 목소리였다.
어… 엄마.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어딘가.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도 엄마는 없었다. 몇몇 자고 있는 아저씨들만 눈에 보이고 대낮 같은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벌떡 일어나 서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기가 어디야…, 여기가 어디야…. 눈물은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목구멍에서 서러운 외침같은 울음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엄마아…. 엄마아…. 여기가 어디야, 엄마아…. 엉엉…."

카운터 아저씨도 졸다가 깨서는 나를 바라보고, 잠자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무슨 영문인가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 몸에 물이 모두 다 빠져나갈 때까지, 남은 기운이 다 빠져나가 쓰러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부산발 제주행 카훼리에 탔다. 3등 객실에는 들어가지 않고, 갑판 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검은 바다에 흰 배가 부딪히는 경계선을 따라 흰 파도가 끓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물거품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이리 와, 이리 와라고. 갑판 옆 철판에 붙어 서 있다가 간이의자에 앉아있다가를 반복하며 검은 바다의 고요와 흰 물보라의 아우성을 지켜봤다. 어느새 해가 밝았다.

"아빠 돈 주세요... 급해요"

집에 도착하니 이미 신정은 이미 끝이 나 있었고, 집안은 고요했다. 마루에 엄마와 아빠가 앉아 계셨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입을 꾸욱 다무셨고, 아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떼셨다. 6일 동안 어디 갔었느냐고. 2차 지망에 합격했는데 등록을 안 해서 내일 4일까지 마지막 등록을 해야 한다고. 그 등록을 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된다고.

아…,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자기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2차 지망? 확인 안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 확인을 하긴 했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그곳. 힘이 빠져 대강 훑어보다 그냥 나왔던 것 같다. 대강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그 2차 지망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햇빛이 강하게 창문을 뚫고 들어와 강렬하게 나를 비췄다.

"'아…. 이 햇빛… 기다렸어, 이 빛…. 쿠오바디스…. 그건 없어도 그만인 게 아냐…."

갑자기 몸 속 어딘가에서 강한 열기가 입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아빠, 돈 주세요. 빨리, 빨리요. 지금 당장 서울 가야 해요."

이후 난 그 2차 지망학과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연구소에서 그 학과 전공을 무기로 아직도 잘 먹고 살고 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공모 '위기의 순간들' 응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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