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지진 강창욱 특파원] 세계유산 다라하라 타워 밑동만 남았다

카트만두 2015. 5. 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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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다라하라 타워는 부러진 창처럼 밑동만 남아 있었다. 하얀 표면이 달걀껍질처럼 벗겨지고 엷은 갈색 흙벽이 드러났다. 길바닥에 뒹구는 돌조각을 쥐고서 이것이 몇 층의 조각인지, 원래는 고개를 얼마나 쳐들어야 꼭대기가 보였을지 생각했다.

다라하라 타워는 도심 한복판에 62m 높이로 솟아있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흰색 원통 9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둥근 지붕을 얹은 구조는 등대를 닮았었다. 지금은 7개 계단 위에 1개 반층 높이, 그것도 비스듬히 쳐낸 대나무처럼 대각선 형태로 일부만 남았다. 꼭대기부터 2층까지 주저앉아 흙더미가 됐다.

25일 지진으로 네팔은 간결하고도 강렬한 상징을 잃었다. 타워는 1832년 세워져 83년간 네팔의 기둥 노릇을 했다. 현지인 가이드 템바 셰르파(25)씨는 "카트만두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였다. 타워에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오는 데만 1시간20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탑 안에는 9층까지 나선형으로 감아 올라가는 계단 213개가 있었다. 8층 전망대에서는 카트만두 시내를 안은 카트만두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보려던 관광객 180명이 참사를 당했다.

잔해는 거의 치워졌지만 타워가 붕괴되던 순간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직선거리로 20여m 떨어진 건물 앞 은색 해치백 승용차는 반파된 채 방치돼 있었다. 뒤쪽이 밟힌 우유갑처럼 찌그러졌고, 유리창이 사라진 뒷좌석에 돌조각이 가득했다. 전봇대가 쓰러졌고, 수십 가닥의 전선이 수챗구멍 그물망에 걸린 머리카락들처럼 뭉쳐 있었다. 자전거 2대는 고철덩어리가 돼 있었다. 건물 2층 쇼윈도에는 마네킹들이 넘어져 발바닥을 내보였다.

바산타푸르, 박타푸르, 파탄 등 3곳의 더르바르(왕궁) 광장과 보드나트의 불탑도 이번 지진에 파괴됐다. 바산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은 높은 외벽 아래로 잔해가 모래처럼 쌓여 있었다. 파탄의 광장도 흙과 목자재를 쌓아놓은 공사장처럼 변했다.

화장

저물어가는 시간 카트만두의 화장터 파슈파티나트에는 짙은 강이 흘렀다. 성인남자의 무릎을 넘지 않는 바그마티강은 흔들리면서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인도까지 약 20㎞를 흘러가서 갠지스강이 된다. 지난 지진 이후 카트만두와 인근 도시에서 수습된 시신 대부분이 재가 돼서 바그마티강에 던져졌다. 사람들은 돌에 깔려 죽은 가족을 화장하면서 고통도 불태웠을까.

무표정하게 걸어오는 소년은 진회색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붉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여자 6명이 그 뒤를 따라왔다. 엄마와 할머니, 고모나 이모들로 보였다. 소년은 아버지를 잃은 상주였을 것이다. 이들이 장례를 치른 자리에는 연기만 무겁게 피어올랐다. 화장터 직원은 양동이에 강물을 퍼서 까맣게 그을린 돌바닥 위에 연거푸 부었다. 물과 열은 세차게 부딪쳐 파열음을 냈다. 돌바닥은 젖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낮은 연기를 내뿜었다.

한쪽에서는 이제 막 불을 붙인 짚단과 장작더미가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불은 짚더미를 먼저 까맣게 태우고 나무로 옮겨갔다. 화장을 집행하는 남자들은 불길이 약해지면 굵은 장대로 장작을 들쑤셨다. 연기와 열기, 재와 타는 냄새가 범벅이 돼 사방으로 번졌다. 연기가 안개처럼 파슈파티나트를 덮었다. 재가 머리, 어깨, 손등에 내려앉았다. 종교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건너편 강가에서 울음 같은 노래를 불렀다. 가족들은 흐느꼈다.

여진

사망자수가 6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날 15세 소년에 이어 20대 여성이 지진 발생 닷새 만에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일 새벽 2시57분 카트만두의 건물들은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개들이 짖고 까마귀 떼가 울었다. 예민한 사람들이 깨어서 웅성거렸다. 미세한 진동이 사라지고 쿵 소리가 다시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기자는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네팔인들은 여기서 살아가야 한다. 이들은 지진의 공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그 땅들의 싸움이 몰고 온 비극에 저항하고 있다. 카트만두와 박타푸르, 산골 신두파초크를 비롯한 지진피해 지역들이 바그마티 강가에서 화장하듯 절망을 사르고 소생하기를 바란다.

카트만두=강창욱 특파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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