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주들 단체행동 나선 골프존..'프랜차이즈냐 아니냐' 논란 증폭

2015. 1. 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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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말 대전에서 골프존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한 김영식 씨(가명·45)는 요즘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얼마 전 같은 건물 바로 위층에 골프존 스크린골프장이 또 들어섰기 때문이다. '비전(Vision)'이란 최신형 스크린골프 장비를 들여놓은 신규 점포는 구형 장비 '리얼(Real)'을 구비한 김 씨 점포 고객을 순식간에 뺏어갔다. 김 씨도 리얼을 팔고 비전으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할까 했지만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년여 전 대당 3500만원에 구입했던 리얼의 중고 판매 가격이 300만원 정도로 뚝 떨어져 있었던 것. 고작 300만원씩에 팔고 수천만원대 기기를 여러 대 구비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창업 당시 "리얼 중고가가 3000만원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본사에서 조절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던 골프존 영업사원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었다.

본사에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에 김 씨는 더욱 허탈해졌다. "우린 프랜차이즈가 아니고 스크린골프 장비만 판매하는 회사"라며 모르쇠로 일관한 것. 김 씨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고 신규 출점 거리 제한 등 최소한의 도리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골프존은 스크린골프 장비 판매만 하는 게 아니다. 리얼이나 비전으로 게임을 즐기려면 골프존의 인터넷 서버와 연결해 프로그램을 제공받아야 한다. 그에 대한 수수료도 본사에서 꼬박꼬박 떼 가는 만큼 사실상 프랜차이즈라고 봐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골프존과 점주들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29일 오후 1시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선 전국 골프존 점주 500여명이 모여 '전국 골프존 사업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12월 18일 대전 골프존 본사 앞에서 1차 항의집회를 가진 데 이어 열린 2차 상경집회다. 골프존이 2015년 1월 중 대전에 개장하는 골프테마파크 '조이마루'와 골프시뮬레이션 '비전플러스'의 가격 인상이 도화선이 됐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오랜 기간 누적된 골프존 본사와 점주 간 갈등이 두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다.

골프존 점주들은 골프존이 국내 스크린골프 장비 업계 1위라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국내 스크린골프 업계에서 골프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시장점유율이 무려 80~90%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하거나 창업하려면 고객과 점주의 십중팔구가 골프존 장비가 있는 점포(이하 '골프존 점포')를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스크린골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 골프존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골프존의 2014년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3067억원, 9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 43% 증가했다.

문제는 이런 스크린골프 시장 성장의 수혜가 골프존 본사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 골프존 점주들은 점포 간 과당경쟁 때문에 폐업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당장 점포가 너무 많다는 게 골프존 점주들 주장이다. 2014년 말 기준 전국 골프존 점포는 약 5000여개에 달한다. 국내 제과점과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중 점포수가 가장 많은 '파리바게뜨(약 3300개)'와 '이디야(약 1400개)'보다도 훨씬 많다. 심지어 한 건물에 골프존 스크린골프장이 2개 이상 들어가 있거나 바로 인근에 점포를 또 여는 경우도 적잖다.

스크린골프 시장 포화 우려가 높은데도 이 같은 과당경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첫째, 골프존은 가맹사업법상 프랜차이즈가 아니어서 신규 출점 거리 제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의 요건은 가맹점주가 가맹본부의 상표와 상호, 간판 등을 사용하고 영업에 대한 지원·교육·통제 등 '계속적 거래'가 이뤄져야 하는데 골프존은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 지난 2010년 말 스크린골프장 점주 박 모 씨가 "가맹사업법상의 영업 지역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골프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배경이다.

실제 골프존은 영업점이 '골프존'이란 상표를 쓰거나 요금을 책정하는 데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또 다른 주요 요건인 '본사와 점주 간 계속적 거래'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점주들 주장이다.

골프존 점주는 본사가 인터넷 서버를 통해 제공하는 라운딩 프로그램 없이는 스크린골프 장비를 아예 운용할 수 없다. 때문에 대당 4000만~6000만원의 장비를 사고도 해당 장비로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게임료의 15%가량을 골프존에 수수료로 지급한다. 파리바게뜨나 이디야 점주가 본사에서 제공하는 생지나 커피 등의 재료를 납품받아 영업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게 '골프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주장이다. 비대위는 전국 5000여개 골프존 점포에서 발생하는 게임 수수료만 연간 수천억원대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골프존은 주기적으로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이 때문에 점포 간 서비스 차이가 발생한다. 골프존은 보통 5년에 한 번씩 새 하드웨어를, 2~3년에 한 번씩은 새 소프트웨어를 선보인다. 점주가 이에 맞춰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려면 하드웨어 교체는 4000만~6000만원, 소프트웨어 교체는 2000만~3000만원이 소요된다.

워낙 업그레이드 비용이 높다 보니 비용이 부담스러운 점주는 장비 업그레이드를 포기하고 구형 장비로 영업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바로 옆에 최신 장비를 구비한 신규 점포가 들어서면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신규 점포로 몰려가게 된다. 후발 점주로선 이미 골프존 점포가 있는 줄 알면서도 신규 점포를 낼 유인이 충분한 것. 이렇게 되면 기존 점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을 내서라도 업그레이드를 따라가거나 장비를 헐값에 내놓고 가게를 정리해야만 한다. "결국 양쪽에 장비를 팔 수 있는 골프존 본사만 이득을 보는 구조"라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

수년간 해묵은 점주들 불만 조이마루·비전플러스로 폭발 상생계획 내놨지만 갈등 여전

골프존 본사와 점주 간 이 같은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해묵은 문제가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조이마루 론칭과 비전플러스의 가격 인상이다.

조이마루는 대전 유성구 도룡동에 자리 잡은 1만여평 규모의 복합골프문화센터다. 점주들은 골프존이 조이마루에서 또 스크린골프 영업을 하면 인근 지역 골프존 점포 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골프존이 비전플러스 기기 이용 가격을 기존 대비 2000원 올렸는데, 이는 점포 영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비대위 주장이다.

비대위는 이 외에도 '골프존과 점주 관계를 프랜차이즈로 인정' '신규·중고 장비 판매 중단' '기존 장비 중고 가격 최소 50% 보장' '15개 무료코스(라운딩 프로그램 중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 코스) 운영 재개' '스크린골프 이용 시 노출되는 광고 수익 분배'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결국 골프존은 신제품 비전플러스 이용료 인상 계획을 철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골프존 측은 "이번 상생 방안을 통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는 4월부터 골프 시뮬레이터 기기 판매를 재개하기로 했던 계획은 수정 없이 진행하기로 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서승묘 골프존 홍보팀장은 "골프존이 프랜차이즈가 아님은 2011년 법원 판결로 이미 끝난 얘기다. 중고 기기 가격을 보장하라는 건 지나친 요구"라고 말했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골프존에 도의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법적으로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사실상 점주들과 파트너십 관계인 만큼, 본사가 상생을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점주들 상황이 어려운데도 골프존이 무리하게 상권을 확장시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업가의 경영철학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비록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파트너십 관계를 고려해서 지금이라도 상권 침해로부터 점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91호(2015.01.14~01.20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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