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치소 여사 1호실에서 머리를 자르다

2015. 1. 9. 10: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73]9. 목숨을 걸고

[오마이뉴스 민종덕 기자]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어둠 속에 우뚝 솟은 높다란 벽, 기다란 복도, 수많은 철문을 지나 성동구치소 여사 1호실 방에 이소선의 몸은 갇혔다. 사방은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침묵의 바다다. 그 침묵을 헤집고 수인 중에서 직책이 높은 '지도'라는 사람이 이소선방 앞에 섰다.

"어떻게 들어왔소?"

"나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소."

그는 누런 덩어리와 노란 무가 담긴 찌그러진 그릇을 구멍을 통해 밑에 넣어 주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밥 먹으시오."

"밥이 어디 있소?"

그는 벽에 난 구멍으로 밀어 넣은 덩이를 가리켰다.

"저기 밥이 있잖아요."

이것이 사람 먹는 밥이라니, 그것도 다 식어빠진 것을, 문득 일본제국 시대 때 데이신따이에 잡혀가서 먹던 강냉이 죽이 떠올랐다.

"난 안 먹을라요."

"배고프면 먹겠지. 안 먹으려면 관둬."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사라졌다. 이소선은 관짝 같이 좁은 방안에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어렸을 때의 태일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노동교실과 노조사무실도 떠올랐다. 자신이 없는 집에서 어렵게 살아갈 아들 태삼이, 순옥이 그리고 순덕이가 궁금했다. 태일이가 마지막으로 했던 유언이 생생히 되살아온다.

구치소에 갇힌 이소선, 비녀머리를 버리다

'그래 태일이는 나한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참아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어린 노동자들을 밝혀주는 불이 되어 달라고 했지…… 나는 태일이하고 마지막으로 약속을 했다. 그렇다. 어렵더라도 태일이하고 약속했던 사항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이후에 내가 태일이를 떳떳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 이소선은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다.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아들 태일이는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 힘을 내세요! 내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잖아요!'

태일이의 목소리가 생시에 듣는 것처럼 그의 귀를 파고 들어왔다.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이방 저 방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소리가 요란하다. 이어서 구치소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소선은 특별한 일 없이 하루 종일 감방 안에 앉아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바깥에서는 자신을 내놓으라고 야단들일 텐데 조합원들은 얼마나 고생을 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자신이 여기에 와 있는 걸 알면 순옥이라도 면회를 올 텐데……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여기에 있는지 아직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면회를 시켜주지 않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렇게 면회조차 안 되는 상태에서 삼 일이 지났다. 그러더니 낮에 이소선의 방문을 간수가 덜컹 열더니 나오라고 했다. 이소선이 간수를 따라간 곳은 보안과였다. 남방 셔츠를 깨끗하게 입어서 인상이 깔끔하게 생긴 어떤 사람이 이소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 법전이 놓여 있었다. 그는 종이와 볼펜을 들고서 이소선한테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내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지도 모르는데 무슨 얘기를 하란 말이요? 당신네들이 무조건 잡아왔으니 나한테 뭘 묻기 전에 당신네들이 먼저 하시오."

"장기표의 재판에 방청하러 간 사실이 있지요?"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질문을 했다. 이소선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상대방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계속 얘기를 했다. 장기표의 재판에 가서 몇 월 며칟날, 어떻게 소란을 피우고 판사와 검사한테 욕설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욕을 한 사실이 있소. 재판을 가뜩이나 지배적으로 하길래 울화통이 터져 욕을 했소. 판·검사라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들인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상식으로 생각할 때 많이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소. 배운 사람들이 그렇게 진실되지 못하게 사람을 업신여기고 야비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었소. 그래서 재판장이나 검사가 먼저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우리가 정말로 다 죽겠다는 뜻으로 욕을 했소."

"그럼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합니까? '잘못했다'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 집에 빨리 갈 수 있을 텐데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묻는다.

'나 같은 여자에게 항복을 받으려고 하다니.'

야비한 처사에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역겨움이 솟구쳤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맞는 말을 했는데 왜 잘못했다고 해! 형사 놈의 새끼들이 구제 안 해 줘도 내가 살 수도 있어!"

"참 구제불능이구만, 왜 욕을 해? 내가 형산 줄 아는가 보지?"

그는 싸늘한 냉소를 던지더니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고 난 뒤 보안과장이 이소선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람 형사가 아니고 검사요."

"검사가 왜 여기에 오나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서 영장을 떼 갖고 왔으면 검사가 이런 것을 안 하는데, 그것을 안 해왔기 때문에 검사가 직접 온 겁니다."

요식적인 절차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지만 조사는 그것으로 끝나고 구치소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소선이 처음 구치소 생활을 할 때는 몹시 더운 여름이었다. 날씨는 더운데다 감방 안은 물이 귀하다. 그러니 머리 감는 일이 큰일이다. 이때까지 이소선은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고 살았다. 이소선이 여태껏 머리를 자르지 않은 이유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자신한테 했던 유언 때문이다.

"태일이 에미야, 우리 상수가 부족하더라도 네가 꼭 참고 열심히 살아라.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태일이 저놈도 참 똑똑하다. 네가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전씨 집 사람으로 살면 나중에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예, 아버님 염려하지 마세요. 열심히 잘살게요. 아이들도 훌륭하게 키우겠어요."

"암. 그래야지. 그리고 에미야, 너는 내가 죽더라도 그 쪽진 머리는 자르지 말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

"예, 아버님."

남편하고 부부의 정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온 이소선을 시아버님은 끔찍이 아껴주셨다. 시아버님은 당신의 아들보다도 이소선을 더 미더워 했다. 그래서 이소선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누구보다도 더 서럽게 울었다.

이소선은 시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여태껏 비녀머리를 하고 살았는데 결국 이런 곳에 와서 머리를 잘라야 하니 돌아가신 시아버지한테도 한없이 죄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지육신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허전했다. 그날 밤 이소선은 시아버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태일이보다 한 해 먼저 저 세상에 간 남편 꿈도 꾸었다. 이소선은 살아생전 살뜰하게 해주지 못한 남편한테 속죄를 하고 또 했다.

구치소 담밖에서 들려온 "이소선 어머니 내놔라!"

수인복을 입은 이소선

ⓒ 전태삼

면회는 가족밖에 안되기 때문에 순옥이만 매일 찾아왔다. 조합원들은 날마다 수십 명씩 찾아와 구치소 밖에서 몸싸움만 하다가 되돌아간다고 했다. 나이 어린 조합원들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공장일도 제쳐놓고 면회 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순옥이한테 면회 오지 말라고 하라고 당부했다.이소선은 사회에 있을 때도 가슴앓이 속병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가슴앓이 속병이 발병했다. 속병이 발병하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고 온몸이 뻣뻣해지며 정신을 잃는다. 이소선은 쓰러진 채 죽는다고 소리치며 성모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구치소 측은 치료할 생각은 안하고, 이소선의 방에 '지도' 여자를 집어넣더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들었다. 구치소라는 데는 사람이 죽는가 안 죽는가만 감시하는 곳인가 보다. 이소선이 아파서 죽는다고 해도 그대로 놔두고 감시만 했다.

며칠 동안 아파서 죽겠기에 면회 온 순옥이한테 자신이 집에서 먹던 약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나 약을 넣어주지 않아서 홍성우 변호사를 통해 약을 받아먹을 수가 있었다. 이소선이 아파서 고생을 하니까 밖에서는 이것이 와전이 되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니 조합원들은 이소선의 건강상태가 염려 되어 날마다 면회 투쟁을 했다. 그러나 구치소 측은 면회를 시켜 주지 않아 날마다 구치소까지 와서 몸싸움만 하고 그냥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소선이 운동시간이 되어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담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하나 둘 셋, 이소선 어머니 내놔라!"

이소선의 귀에 분명히 미경이 또래 시다들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듣고 싶은 목소리였던가. 애들은 이소선이 이렇게 듣고 있는 줄도 모를테지. 조합원들은 하도 답답하니까 이왕에 온 것, 힘껏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갑고 그리운지 목소리인지 이소선은 눈물을 흘렸다.

"미경아! 청계!"

이소선도 온 힘을 다해 불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저 높은 담을 넘지 못했다. 조합원들이 날이면 날마다 어찌나 찰거머리처럼 면회시켜 달라고 했는지 어느 날 보안과에서 이소선을 불렀다.

"면회를 시켜줄 테니까 나가서 '너희들 자꾸 이렇게 와서 소란을 피우면 내가 나가는 데 지장이 많으니까 그러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한다'라고 말 좀 해주시오."

"좋소. 그렇다면 면회를 시켜주시오."

드디어 면회가 성사되었다. 면회실에 나가보니까 어린 시다들이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얼마나 반가운지 아이들이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눈물을 질질 흘리기도 했다. 이소선은 이 아이들이 반갑다는 생각은 제쳐놓고 미안한 생각이 먼저 앞섰다.

"어떻게 일 안하고, 결근을 했냐?"

"어머니, 지금 일이 문제예요? 어머니가 잡혀서 여기 계시는데 우리가 일 나가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 석방투쟁을 해야지요."

"야 너네들, 일을 제대로 안하면 뭐 먹고 사냐? 싸우더라도 일을 해서, 먹으면서 싸워야지. 배고프면 소리도 지를 수가 없잖아. 나는 잘 있으니까 그만 찾아와도 된다. 너희들이 착실하게 일하고 있으면 나도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보안과장의 부탁 때문이 아니었다. 어린 것들이 일도 팽개치고 날마다 여기까지 와서 싸우고 얻어맞다가, 허탈하게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이소선의 속이 편치 않았다. 그 다음부터 조합원들이 조별로 번갈아가면서 매일같이 면회를 왔다.

덧붙이는 글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은 매일노동뉴스와 함께 연재 합니다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