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 내 시조는 왜 중국 사람일까

2014. 10.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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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다르지만 종씨라서 잘 통하는군요."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회담이 꼬이자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건넨 '조크'였다. 조상숭배를 미신으로 여기는 공산주의자가 대화 소재로 족보를 꺼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전주 김 씨, 김 전 대통령은 김해 김 씨다. 그는 이어 "시조 묘에도 꼭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도 했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조상과 족보가 얼마나 뿌리 깊이 새겨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씨는 7세기 후반 문무왕릉비에서부터 나타났다. 통일신라 초기만 해도 거칠부, 이사부 등 이두식 이름만 쓰다가 대외무역 과정에서 중국의 유명 성씨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한국인 성씨 중 본관이 중국인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족보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족보를 '한 성씨의 시조를 기점으로 해, 그로부터 출생한 자손을 일정한 형식과 범위로 망라한 집단적 가계 기록'이라 정의한다. 우리가 처음 족보를 만든 것은 15세기 무렵이지만 민중에까지 전파된 건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즈음이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조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념은 유교 사상이 뿌리내리면서 차츰 한국인 특유의 정서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김정일도 족보 찾아…'어쩔 수 없는 한국인'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 족보의 변천사(1부), 성씨와 본관, 조상 찾기(2부), 집단기억과 족보의 문화사(3부), 조상과 족보에 대한 전통 가꾸기(4부)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서양의 족보, 개와 말의 족보 등 다양한 족보도 살핀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8호(10.15~10.2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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