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57)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무의식에 도사린 '친부 살해'

2014. 10.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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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년)의 대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1880년)'은 작가의 불운이 빚어낸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25세에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 주목받았던 도스토옙스키는 그로부터 3년 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회주의 성향의 모임에 가입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 것. 사형은 집행 직전에 취소되고 그는 8년을 시베리아 감옥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 불행이 30년 후 대작이 탄생하는 '밀알'이 됐다. 그는 감옥에서 '친부 살인범'인 한 귀족 출신 일리인스키에 대해 알게 됐는데, 방탕한 생활을 하다 유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와 있었다. 그 후 범인은 그 남자의 약혼녀를 사랑했던 동생의 소행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30년 동안 도스토옙스키는 이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 뒀다 마침내 이를 모티프로 활용해 1878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그해 애지중지하던 셋째 아들 알료사가 갑작스러운 간질 발작으로 죽은 것도 아버지의 가슴을 움직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알료사를 이 소설에서 가장 호의적인 인물로 그린다. 소설에서나마 아들이 자신의 생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부성애를 담았으리라. 그는 이듬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발표했고 집필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880년 11월 완결했다. 그리고 두 달 후 갑작스러운 폐동맥 파열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마치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해 알을 낳고 '밀알'이 되듯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또 하나의 '밀알'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이었다. 가난한 작가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심지어 '도박꾼'은 선불을 받고 쓴 '돈과 바꿔 먹은 소설'이다. 그의 작품 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만큼 돈을 많이 언급하는 소설도 없다. 전체를 통틀어 3000루블(현재적 가치로 약 5000만~6000만원 정도)에 대한 언급은 정확하게 191번이며 그 외 돈의 액수가 언급되는 것이 무려 3000번 정도(석영중)라고 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호색가인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의 네 아들인 드미트리와 이반, 알료사 그리고 서자인 스메르쟈코프가 20년 만에 다시 아버지와 재회하면서 시작한다. 방탕한 아버지는 세 아들을 버렸고 남의 집에서 자란 세 아들은 장성해서 돌아왔다. 서자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의 요리사이자 하인으로 있다. 표면적인 줄거리는 표도르와 드미트리 두 사람과 고리대금업자의 첩인 그루셴카의 삼각관계 틀 속에서 진행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돈의 욕망으로 인한 인간의 원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가장 파괴적인 범죄이자 원초적인 '친부 살해'를 소재로 사용한다. 그런데 작가는 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인간의 범죄성을 행동뿐 아니라 마음과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찾는다. 즉 아들들이 단순히 아버지를 죽였다는 행위만이 아니라 '죽이려는 마음'을 품었다는 데도 그 범죄성이 있다는 것.

먼저 그루셴카를 두고 아버지와 경쟁한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이고 싶었던 죄가 있다.

"약속한 대로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의 머리를 부수고 아버지 베개 밑에서 3000루블을 가져올 거야. (…) 내 돈을 훔쳐 간 도둑놈(아버지)을 죽이고야 말겠어!" 드미트리는 약혼녀 카체리나에게 자신이 유용한 3000루블을 꼭 갚겠다며 쓴 편지에서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던 친부 살해를 호기롭게 언급한다. 결국 이게 물증이 돼 친부 살해범으로 판결받는다. 하지만 표도르의 진짜 살해범은 스메르쟈코프였다.

무신론자인 차남 이반은 무의식적으로 스메르쟈코프에게 범죄를 부추긴 죄가 있다.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심지어 살인까지도 허용된다"는 이반의 무신론적 사상이 스메르쟈코프의 뒤틀린 머릿속에서 살인을 정당화해 줬다.

알료사는 조시마 장로가 임종 전에 드미트리의 발에 키스한 이유를 말해주면서 드미트리의 범죄성을 예언했지만 이 예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렇게 보면, 친부 살해를 두고 형제들은 모두 아버지에게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죄를 지은 꼴이다.

이 죄에는 그루셴카와 드미트리의 약혼녀 카체리나 등도 포함된다. 그루셴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용하고 조롱함으로써 드미트리의 살의를 부추긴 죄가 있다. 카체리나는 3000루블을 자신의 동생에게 송금해달라고 드미트리에게 줬지만, 사실 이 돈은 드미트리의 낭비벽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죄는 형사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신과 양심 앞에서의 죄라고 도스토옙스키는 정의 내렸다.

이런 인물 구도와 관계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조시마 장로를 통해 설파하는 사상을 전달해주는 도구가 된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만인에 대해 책임이 있고 죄인이라는 사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의 심판자가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설사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 할지라도 타인에게 '빛'을 비춰주지 않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4부 12편으로 구성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가운데 6편 '러시아의 수도승'은 조시마 장로가 죽은 후 그의 정신적 후계자인 알료사가 쓴 평전과 같은 것으로 여기에 작가의 사상이 집약돼 있다. 이와 함께 5편 'Pro와 Contra'에서 '대심문관' 부분은 6편과 더불어 이 소설의 정점을 이룬다. 6편에 조시마 장로와 알료사로 이어지는 신앙관이 집약돼 있다면, 5편은 대심문관과 이반으로 이어지는 무신론을 대변한다.

이반은 동생 알료사에게 '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요지의 고백을 하고 이 논리를 설파한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연일 종교재판이 열리던 16세기 스페인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 대심문관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자신의 지상낙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수와 '상상의 대결'을 펼친다. "그리스도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빵을 주고 대신 자유를 반납받았으며, 그리해 그들을 온순한 양떼로 만들었다." 대심문관은 인간을 '먹을 빵이 없으면 쉽게 죄에 빠지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그런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는 신의 인간에 대한 무책임한 방기를 증명하는 예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빵과 자유'의 철학적 논쟁이 시작돼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에서 짐승 같은 육욕에 사로잡힌 표도르와 드미트리를 통해 '카라마조프적 저열함'이라는 인간적 속성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 초반부의 이런 '인간적 저열함' 혹은 드미트리의 표현처럼 '벌레 같은 정욕'은 점차 완화돼 간다. 그루셴카는 그가 "짐승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마음씨는 고결한 분"이라며 "이 사람과 함께라면 사형이라도 달게 받겠어요"라고 호소한다. 드미트리는 러시아의 민중 혹은 대지를 상징하는 그루셴카에 의해 그렇게 구원받는다. "인간이여, 고결해질지어다!" 작가는 괴테의 시를 인용하면서 카라마조프적인 저열함이 고결함으로 변모해 감을 비유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드미트리의 갱생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 보편의 갱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삶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에 의해 얻어진다. 여기서 이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제사(題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의 의미가 밝혀진다. 말하자면 타락한 아버지의 표상인 표도르 또한 하나의 '밀알'이 돼 죽는 존재인 것이다. 드미트리 또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자청한 것은 아닐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7호(10.08~10.1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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