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이국 음식의 향연, 홍대 앞..가격에 놀라고 맛에 반하고

2014. 8. 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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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흔히 사람들이 '홍대 앞'이라 부르는 지역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이 동네의 발전 역사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구석이 있다. 원래 홍대 미대생의 작업실이 몰려 있던 지역이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유흥 상업지구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에 이 동네에 오면, 간혹 특이한 카페가 한두 개 있어서 차를 마시거나 작은 시장 골목에서 감자탕을 먹었다. 그도 아니면 정문 앞의 허름한 '용인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게 전부였다. 번잡한 신촌을 벗어나 한가로움을 즐기기 좋은 동네였고, 미대생들이 물감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뭐랄까 홍대 미대의 '분소' 같은 느낌이었다.

신촌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급격히 세력이 줄고 홍대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중반 이후인 듯하다. 필자는 몇 년 전에 2년 동안 이탈리아 식당을 하러 다른 동네로 갔다. 그 후 최근에 다시 돌아왔는데 정말 더 큰 격변이 있었다. 높은 부동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식당들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식당 창업 예비군들이 몰려오면서 새로운 홍대 상권이 생겨났다.

상수역 일대와 거기서 연결되는 당인리 발전소권, 연남동권, 서교동 주민센터로 이어지는 서교동권이 속칭 거대한 홍대 앞 상권을 이루고 있다.

이 동네는 편집과 영상제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하며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음식문화를 일구고 있다. 막 외국에서 돌아온 요리사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곳으로 이색적이고 '본토의 맛'에 충실한 외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이곳에 살다 보니 술집과 식당을 추천해 달라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 이번 기회에 지인들에게도 잘 알려주지 않은 '비장의 리스트'를 소개할까 한다.

먼저 '쿠시무라'다.

원래 속칭 주차장길 뒤편의 지하에서 영업했는데, 우연히 발견하곤 감탄했던 집이다. 지금은 상수역에서 한강 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작은 상권에 있다.

평범한 닭꼬치집이 아니라는 걸 보증한다. 닭의 여러 부위를 다져서 노른자 띄운 소스에 찍어 먹는 츠쿠네, 닭의 기름진 엉덩이 지방인 '히뿌' 같은 부위를 먹어보자. 닭의 기름이 주는 폭력적 미식에 빠져든다.

아니면 아주 담백하게 갈 수도 있다. 닭 안심을 미디엄레어로 구워 와사비를 발라 먹는 건 고급 식도락가에게 추천한다.

자리가 몇 안 되니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 카운터에 앉아 셰프가 비장탄(특유의 단단한 질감의 연료) 타는 연기를 들이마셔 가며 부채질해서 구운 야키토리를 맛보는 건 현실감이 들지 않는 몽롱한 즐거움이다. 지금 계절에는 밤에 문을 활짝 열고 영업하는데, 가을비라도 온다면 술이 술을 부를 것 같다.

음악이 좋은 술집을 찾는다면 '올드락'이다.

홍대앞 음악 술집으로는 '곱창전골'과 쌍벽을 이룬다. 위치는 대형 호프집으로 유명한 캐슬프라하 앞 건물 지하다. 번잡한 홍대 주차장길 구석에 있는데 이 집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오직 음악 때문이다.

홍대와 이태원, 청담권에서 이름을 날리는 디제이인 슈퍼플라이(하성채 씨)가 밤마다 와서 음악을 튼다. 음악이 왜 술집의 팔 할이라는 말이 있는지 실감케 된다. 술보다 음악에 절어서 흥이 고조되는 희한한 경험을 해보시길, 노래를 신청할 수도 있다.

옛 상호는 '중독'이다. 정말 중독될 위험이 있는 음악이 귀를 흔든다. 간혹 심야에 필자를 발견할 수도 있다. 아는 척하시면 술 한 병 낸다. 새벽 1~2시까지 영업한다.

어제 술 좀 하신 다음 날 해장을 원한다면 쌀국수다. 널리고 널린 게 쌀국수 체인점이니 그게 그 맛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집에서 쌀국수를 먹어 보면 '배신감'에 치를 떨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것이 쌀국수가 아니었단 말인가' 하면서. 셰프가 베트남에서 제대로 배운 솜씨를 보인다. 상수역에서 합정역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주차장길로 진입, 오른쪽 구석에 숨어 있는 '하노이안'이다. 깊은 국물이 일품이고, 여러 가지 요리도 이 집의 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걸 말해준다.

다음으로는 '카덴'이다. 그저 그런 이자카야가 널린 지역이 홍대 앞이지만 진부한 표현으로 '타의 추종 불허'다. 거의 최상급의 식재료를 거의 완벽한 요리 솜씨로 주물러 낸다. 야박한 이자카야의 안주량에 질겁한 분들마저 만족할 충분한 양도 주목할 집. 아마도 홍대 주 상권 변두리 지역에서는 최고 매출을 올리는 집인 듯.

제철 감각이 살아 있어 매번 바뀌는 해산물(올여름에는 민어와 벤자리, 성게가 많이 나왔다), 깊은 맛의 구이와 조림 요리가 있다. 덩치 큰 셰프가 손 크게 음식을 한다. 특히 인기 있는 메뉴는 모둠회(양과 구색이 버릴 것이 없다)와 그날그날 좋은 해물로 만드는 구이류.

음식을 오래 먹다 보면 주인의 야박하거나 반대로 해탈(?)한 듯한 품성 따위가 느껴지게 되는데, 당연히 이 집은 후자다. 예약 필수이고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 합정역에서 망원역 방면으로 성산초등학교 사거리 근처. 주차도 서너 대 가능하다.

제대로 된 맥주 한 잔을 하고 싶다면 단연 이집이다. '퀸스헤드'. 주차장길에서도 최고 요지에 있는데 이 동네의 '콘셉트'와 달라서인지 손님이 그다지 바글거리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오히려 맥주 좀 잘 마시고 싶은 분들에게는 장점이기도 하다.

직접 만드는 맥주가 나오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다. 안주는 평범한데 맥주가 아주 좋다. 주인이 들으면 기분 안 좋겠지만, 다른 것보다 오직 필스너 한 가지는 확실한 집. 회전이 좋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맥주를 특히 잘 만들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품질에 비해 값도 말도 안 되게 싸다. 아, 호프와 맥아의 향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진짜 맥주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좌석이 많고 넓어서 작은 모임을 하기 좋다. 필자는 주로 혼자 들러 필스너를 마신다.

연남동권은 언론에서 '제2의 가로수길'이니 뭐니 할 정도로 요즘 '핫'한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주택가와 기사식당 몇몇이 있던 지역인데 젊은 요리사들이 몰려들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곳에 있는 '옥타'는 일본식 선술집의 한 전형이다. 이자카야라기보다는 일본 대정(大正)시대(1910~1920년대)의 바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가정식 같은 소박한 음식이 있으며 '하이보루' 같은 술을 마실 수 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젊은 일본인 셰프가 비치는 기운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가지와 토마토 같은, 한국의 술집에서 천시되는 재료로 요리하는 메뉴가 인기 있다. 단언컨대, 이 집과 비슷한 느낌의 술집은 한국에는 없다.

술집은 아니지만, 최고의 커피집 한 군데를 소개한다. '블라썸'이다. 커피 잘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 홍대앞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든다.

주인이 '법 없이 살 사람'처럼 보이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시인 정대구 씨의 아들인데, 커피 볶는 마음은 순한데 커피 맛은 오묘하고 복합적이다. 드립을 추천한다. 근처가 한가한 지역이라 무언가 생각할 것이 있을 때 들르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이집 커피가 이끄는 흡인력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몽로'도 잠깐 소개한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필자가 같이 운영하는 좀 이색적인 술집이다. 기회가 되시면 들러 보시길.

[박찬일 요리연구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1호(08.20~08.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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