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사표내고 내려간 섬, 카메라에 담다

2014. 7.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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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신문웅 기자]

손현주씨의 캘러리를 찾은 영국인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손현주

손현주씨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신문웅

태안 안면도 사진가 손현주씨가 '섬은 부표다'라는 주제로 런던중심가에서 사진전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 손현주

안면도 섬 사진을 둘러보며 손현주작가(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런더너들.

ⓒ 손현주

"뷰티플! 숨이 멎었어요. 사진에서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꿈이 하나 더 생겼는데, 언젠가는 그 섬에 꼭 가보고 싶어요."

"섬에서 이런 컬러가 나오다니, 놀라워요."

"전 이 사진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미래는 감춰진, 제 인생길을 읽었어요.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요."

런던의 중심가 대영박물관 앞 목스페이스 갤러리는 동양에서 온 한 작가의 섬 사진들을 앞에 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연히 지나다가 창 밖 사진을 보고 끌려 들어왔다는 박물관 직원도 있었고, 아티스트에서 스위스와 일본 관광객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그 섬' 안면도가 궁금하여 자꾸 묻고 또 물었다.

주인공은 '카메라를 멘 섬 사색자', 태안 안면도 사진가 손현주(50)씨다. 작가는 7월 5일까지 2주간 런던 목스페이스 갤러리 초대전을 진행했다. 현지 반응과 작가의 사진에 대한 철학을 본지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작가는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a Buoy)라는 주제로 태안 안면도 사진만 25점을 런던으로 공수 했다. 하지만 런던시민들을 매료시킨 것은 단순한 '섬 풍경사진'만은 아니었다.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태생적 섬 이야기'를 끌어냈고, 동양의 섬 하나가 그들 가슴 속에 자오록하게 떠 있도록 만든 것이다.

혹자는 기억의 저장고에서 끄집어 낸 비현실적 '섬 배설물'들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더러는 사진의 결에서 우주를 읽었다고 했다. 누구는 사진 오브제들이 막 집어 먹고 싶은 눈깔사탕처럼 달콤한 과거를 호출해냈다고 했다. 그러나 촬영과정에서 엄지발톱을 두 개나 빼먹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작가는 이미지 생성과정에 애틋함이 녹아있는 듯 싶었다.

그는 "밤바다에 한 시간이상 앉아 있어본 적 있느냐"고 운을 떼며, "시각적으로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을 때 진정 내면이 투영 되더라"는 선문답 같은 질문으로 이야기로 풀어 갔다.

"짠내와 비린내는 섬의 눈물이며, 섬사람들 몸에 흐르는 유전자입니다. 섬을 깊숙이 탐색하는 동안 섬과 자신이 동일시되었음을 경험했고, 동화적 상상이나 비현실성, 신화적 깊이가 이미지로 끌려 나오고 있음을 느꼈죠. 그것은 공기놀이처럼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습니다."

작가는 지난겨울 혹한 때 안면도를 걸어서 일주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따라 길 없는 길을 무던히도 걸었다. 물이 들어오면 뒤로 물러서고, 빠져 나가면 수평선 가까이로 다가갔다. 섬을 일주하여 동그라미를 완성 하는데는 딱 보름 걸렸다. 바람은 눈을 못 뜨게 했고, 어떤 날은 눈보라가 카메라 렌즈를 가렸으며 손가락은 늘 굽어 있었다. 도보일주는 2010년 가을 이후 두 번째다. 그는 왜 고통을 자초하며 섬을 말없이 걷고 있는 것일까.

"제 조상은 수 백년간 안면도에서 살아왔습니다. 몸속에는 섬 유전자가 잠복해 있죠. 육지에서 30년을 보내는 동안 수시로 복통처럼 기운이 흔들리곤 했어요. 열아홉에 섬을 떠났죠. 상경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을 했지만 근원이 섬사람인데 섬을 떠나니 아프고 힘들고 그랬던 거예요. 이유 없이 혈소판수치가 떨어져 병원을 전전했어요. 어느 날이던가, 내가 가장 건강했을 때가 언제인지 짚어보게 되었는데 가장 아팠던 때도 건강했던 때도 섬에 있을 때였습니다."

기자생활 딱 20년 시점, 아슬아슬하던 '향수 복통'이 터져 버렸다고 한다. 세상물정 생각 않고 무작정 사표를 냈다. 이튿날 초등학교 6학년짜리 막내딸을 앞세워 고향 안면도로 들어왔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잘 한 결정'이라고 여긴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이를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시키며 팔자 타령할 만큼 바쁘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쳐 안면도 일주... 그 매력에 푹 빠지다

사계절 먹을거리가 풍부하며 빼어난 관광자원을 지닌 태안의 안면도가 제주도보다 뒤질 이유가 없다는 그녀의 지론은 태안 로컬푸드를 알리는데 새 장을 열었다. 3년 전부터 국내 최초로 태안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파인다이닝을 기획하여 매체의 주목을 받았고, 관련된 강의나 글쓰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 사진가들에게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타이틀들을 여럿 지녔다. 신문기자에서 사진가로 돌아서면서 와인 칼럼니스트, 푸드 칼럼니스트, 숲 해설가, 여행작가, 문화기획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외국 사진가들의 경우 다채로운 이력가들이 많아요. 배우이면서 환경 보호론자, 시인, 철학자 등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사진을 접근하여 깊이 있는 사진을 선보이는 경우가 흔하죠. 이는 사진이 사유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며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미지를 형성해야 하는 시각언어이기 때문이에요. 사진 본성이 가지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함의가 없는 사진은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독하게 길을 걷고 내면을 후비는 진정성이 작동했을 때, 내안의 지식과 버무려져 비로서 사유하는 사진이 된다고 보거든요. 전 본격적으로 사진을 한지는 5년이지만, '50년 결과물'이라고 말해요. 제 나이만큼 몸속에 박힌 섬 유전자가, 학습된 과거의 기억이, 팰름시스트(palimpsest, 글자가 거듭 쓰인 고대 양피지원고)로 재생되었다고 믿거든요."

작가는 두 차례에 걸쳐 안면도를 걸어서 일주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발견하고 '감성적 찌름'을 느낀 것이 '부표'다. 부표는 위치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바다위에 띄우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구조물이다. 먼 바다에서 섬으로 돌아오는 배들에게 대나무부표는 '안도'다. 그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안전한 길' 표시이고, 그 행간에는 따뜻한 밥상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담겨있다. 시간과 존재가 스며든 푼크툼(punctum)이다.

하지만 바람이나 어떤 환경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졌을 때' 부표는 배회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쓰레기로 보일 수 있었던 부표가 카메라 속으로 들어와 작가와 관계를 형성하며, 물성을 버리고, 시공간에서 의식을 확장 시켰다. '섬은 부표이고 부표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명제를 인간의 욕망과 대비, 강렬한 빛과 섬의 결(Texture)로 표현했다는 평가다.

작가는 섬의 기억들을 끌어내 작업과의 연관성을 얻기 위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를 인지, 사진적 관점을 찾아냈다. 소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과자의 냄새, 소리 등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는데, 작가는 섬을 일주하면서 바닷물이 드나들며 내는 소리와 짠 냄새, 마을에서 흘러나온 섬사람들의 관계적 물건들을 오브제로 인식했다. 과거로부터 흘러나온 무의지적 기억(involuntary memory)인 셈이다.

부러져 바다로 흘러 들어온 나무 조각, 항로를 표시하는 깃발, 양식장에서 끊겨 나온 스티로폼 부표, 눈발 성성한 갯벌과 죽은 산비둘기 한 마리. 모든 오브제가 과거의 아카이브에서 굴절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상징되었다. 따라서 작가의 사진은 현재의 비현실적인 컬러사진이 작용하지만 존재의 기억 속에 머물러 팰름시스트를 만들어 잔영처럼 잡아낸 흑백 사진의 힘 또한 크게 작용한다.

갤러리 목스페이스의 큐레이터 쥴리목(Julley Mok)은 "본질적으로 섬 유전자를 지닌 작가가 내면 깊숙이 간직한 무의식을 동력으로 퍼낸 섬 작업들을 지켜봐왔다"며 "작가 특유의 비현실적이며 사유를 갖게 하는 현대 작업들이 런더너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손현주 작가는 "일상의 나는 다시 섬 둘레에서 서성거려야 옳다, 그걸 것이다"라고 말하며 "런던전시를 통해 단순히 개인의 사진전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우리의 잠재력을 알리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동쪽 작은나라 대한민국의 섬이 서쪽으로 시간이동을 하여 같은 섬나라 런더너들과 서로 같거나 다른 부분을 교감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안면도를 방문하였을 때 삼각대를 세워놓고 먼 바다를 응시하는 여성을 만나면 필시 '그'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난 왜 이 섬의 경계에 서 있는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라는 내면의 독백에 귀 기울이며 시간을 잡고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바른지역언론연대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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