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영자에서 서윤까지..2014 가장 인기있는 이름은?

2014. 6. 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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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선호 이름은 그 시대에 선호된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1948년 출생 신고된 남자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은 영수(942명)였다. 영호(795명) 영식(773명)이 뒤를 이었다. 당시 남자 이름에 쓰인 '영'은 '길 영(永)'자가 많았다. 이수봉 동국대 평생교육원 교수는 20일 "예전에는 일찍 죽는 아이들이 많아서 길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이런 한자가 선호됐다"고 말했다. 1958년에도 영수(1488), 영철(1352), 영호(1309)가 선호 이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40년대 후반 여자 이름에는 일본식 한자로 '∼코(아이)'를 의미하는 '자(子)'가 많이 쓰였다. 1948년 선호된 여자 이름은 순자(5636), 영자(4284), 정순(4021)이었고, 1958년에는 영숙(7598), 정숙(6278), 영희(5144) 순이었다. 아직 일제 잔재가 남아 있었던 당시에는 일본식 이름인 '미야꼬'를 한글로 풀어낸 '미옥'이라는 이름도 흔했다. 정숙하다는 뜻의 '곧을 정(貞)' '맑을 정(晶)' '맑을 숙(淑)'자도 여자이름으로 많이 쓰였다. 이 교수는 "현모양처라는 가치를 중요시했던 옛날 시대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며 "큰 굴곡 없이 무난하게 살라는 뜻에서 '순할 순(順)' 등의 한자도 선호됐다"고 말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선호 이름 순위도 바뀐다. 1968년 '성호(1716)'는 '영수'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1978년에는 정훈(1965) 성훈(1518) 상훈(1445) 성진(1428) 등 남자 이름에 '성'과 '훈'이 인기를 끌었다. 남자로서 사회에서 성공하라는 뜻의 '이룰 성(成)' '밝을 성(晟)'과 업적을 쌓으라는 뜻의 '공 훈(勳)'이 유행한 것이다. 여자이름은 1968년 기준으로 미경(8963) 미숙(8181) 경희(5518)가 인기였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인식이 커졌고, 예쁜 이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아름다울 미(美)' '은 은(銀)'과 같은 부드러운 한자가 인기를 끌었다. 1978년에도 지영(4315) 은정(4250) 미영(3781) 등 여성스러운 이름이 선호됐다.

1980년대 후반은 조기교육 열풍으로 학원 시장이 급속히 팽창한 시대다. 아이들 이름에는 '알 지(知)' '지혜 지(智)' '슬기로울 혜(慧)'자가 자주 등장했다. 남자 이름 지훈은 1988년과 1998년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1980년대 이후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알 지'와 같은 한자들이 선호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때부터 여자 이름에도 교육 관련 한자들이 쓰였다. 1988년 여자 이름에는 지혜(4713) 지은(3536) 수진(3508)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천인호 동방대학교대학원 미래예측학과 교수는 "정숙, 현모양처 등의 가치를 중요시했던 40∼50년대와 달리 여성들의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한자가 선호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2000년대 들어서 선호 이름 트렌드는 다시 변화한다. 2008년 남자 이름 선호 순위는 민준(2039) 지훈(1538) 현우(1381)였고, 2014년에는 4월 기준 민준(449), 서준(413), 주원(262)이 인기가 많았다. '민준'의 경우 옥돌 민(珉)과 높을 준(峻), 준걸 준(俊) 등이 주로 쓰였다. 큰 산에서 나온 보석 혹은 옥돌로 산을 쌓듯 부자가 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천 교수는 "부(富)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화 사회가 되면서 민준이나 지훈처럼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부르기 쉬운 이름을 선호하게 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여자이름도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 중성적인 이름, 여자의 사회 성공을 바라는 이름이 선호됐다. 2008년에는 서연(2375), 지민(2192) 민서(2149)가, 2014년에는 4월 기준으로 서윤(310건), 서연(304건), 민서(253건)가 선호됐다. 민서, 서윤, 지민 등의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고, 남자 이름으로도 쓸 수 있다. 천 교수는 "한 가족 한 자녀 가정이 늘고, 여성 사회 진출이 늘다보니 중성적인 이름이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서로울 서(瑞), 옥돌 민(珉), 윤택할 윤(潤) 등 사회 성공과 부를 쌓는 의미의 한자가 여자 이름에 쓰이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성명학 분야 전문가들은 시대마다 유행하는 이름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지나치게 유행하는 이름만 좇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름은 본인의 브랜드이니 만큼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이름은 한 사람의 상표나 마찬가지인데 예쁜 이름이 좋다고 유행만 따르다보면 정작 그 사람의 개성이 사라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유행했던 이름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될 수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980년대 후반 한글 전용화 운동으로 '꽃님' '다롱'과 같은 순 한글 이름이 잠시 유행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른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순 한글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 교수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원하는 점을 반영해 이름을 짓는 것은 예전 시대의 논리"라며 "이제는 통계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기초로 아이에게 맞는 맞춤형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옥편엔 있는데, 이름은 못써요?

대법원이 지정해주는 이름용 한자

지난 3월 딸을 출산한 이모(31·여)씨는 아이 이름을 '완전할 윤'과 '기쁠 희(僖)'로 짓기로 했다. 하지만 이씨는 주민 센터에서 완전할 윤은 인명용 한자가 아니라 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씨는 할 수 없이 '진실로 윤(允)'을 사용해 아이 이름을 지어야 했다.

아이 이름을 직접 지으려는 신세대 부모들이 늘고 있지만, 출생 신고에 쓸 수 있는 인명용 한자가 제한돼 이름 짓기가 쉽지 않다는 불평이 나온다.

가족관계 등록법 제44조는 '자녀의 이름에는 한글 또는 통상 사용되는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 한자 범위는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일 현재까지 대법원이 지정한 인명용 한자는 5761개다. 대법원은 1990년 12월 교육용 한자와 이름 사용 빈도가 높은 한자들을 토대로 인명용 한자 2731자를 지정했고, 8차례 관련 규칙을 개정해 범위를 확대했다.

인명용 한자에 없는 한자를 이름으로 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절차가 다소 까다롭다. 대법원은 인명용 한자 추가 신청이 들어오면 심사를 거쳐 한자를 추가하고 있다. 옥편에 없거나, 쓰이지 않는 음가의 한자가 아니면 대부분 통과된다. 하지만 규칙 개정이 2∼3년 주기로 진행되는 게 맹점이다. 부모들이 아이 이름에 한자를 쓰기 위해 최대 3년까지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인명용 한자에 이름으로 쓰기 어려운 한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죽을 사(死)' '도둑 도(盜)' '배설물 시(屎)' '시체 시(屍)' '마귀 마(魔)' '재앙 화(禍)' '무덤 묘(墓)'는 사실상 이름에 쓰기 어려운 한자들인데 인명용 한자에 포함돼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 사회에서 쓰이는 한자들을 인명용 한자에 넣다보니 해당 한자들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인명용 한자의 범위가 협소하다는 문제는 인식하고 있으나 옥편의 한자를 모두 시스템에 등록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1995년 제정된 한·중·일 통합한자 2만7484자의 경우 통상 사용되지 않는 한자들이 포함돼 있어 전산화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음가, 자형 등이 통일되지 않은 한자를 인명용 한자로 쓰면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함을 끼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법원 관계자는 "민원에 의한 확대뿐만 아니라 인명용 한자에 포함되지 않은 한자를 대법원 차원에서 검토해 추가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국민일보 그래픽뉴스팀, 국민일보DB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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