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경이로운 미물

2014. 5. 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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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누구나 절망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생존 능력만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몸길이 0.05∼1.5㎜의 작은 점만한 동물로 지의류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사는 곰벌레는 동물계에서 생존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 펄펄 끓는 물보다 뜨거운 151도의 온도에서 견딜 수 있으며, 영하 273도에서도 수일 동안 살 수 있다. 유럽우주국이 곰벌레를 우주선에 실어서 치명적인 우주광선으로 가득 찬 진공 상태의 우주 환경에 노출시켰다가 지구에 복귀시킨 뒤 조사한 결과 대부분 생존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밀라노자연사박물관의 이끼표본 안에서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120년 동안이나 보존되어 있던 어느 곰벌레는 물을 만나자마자 부활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체중의 85%가 수분인 곰벌레가 수분이 0.05%로 줄어도 죽지 않고 물만 만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체내의 글루코오스를 트레할로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 당분인 트레할로오스는 세포를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생리 활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마른 표고버섯을 몇 개월 후 물에 담그면 다시 생생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도 트레할로오스 덕분이다. 그러나 인간이나 포유류는 트레할로오스를 체내에서 직접 합성할 수 없다.

벌레는 아니지만 민물 갑각류의 일종인 '브라인슈림프'의 경우 산소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도 4년간 에너지 소비 없이 버틸 수 있다. 이 갑각류는 여름에 물이 마르거나 박테리아가 물속 산소를 모두 먹어치울 경우 포낭을 만들어서 버틴다. 한 생물학자가 그 포낭 상태를 4년 동안 산소가 없는 작은 유리병에 넣었다가 다시 산소를 공급하자 60% 이상이 동면 상태에서 깨어났다.

유럽의 석회암 동굴에서 서식하는 '올름'이라는 도롱뇽은 작은 유리병에 담긴 채 6도로 유지되는 냉장고에서 12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생존했다. 해부해본 결과 올름의 소화계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를 '극한생명체'라고 한다. 그런데 '극단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의 구별은 순전히 인간의 관점에서 본 주관적인 판단일 뿐 그들에겐 그런 상황이 오히려 정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월엔 이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微物)들의 생존 능력에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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