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다카야마 과수원엔 '유령벚꽃'이 핀다

2014. 4. 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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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신준 기자]

일본 규슈지방 다카야마 과수원의 유령벚꽃

ⓒ 유신준

다카야마 과수원에 유령벚꽃이 피었다.

다카야마 과수원의 유령벚꽃 소문은 오래 전부터 들었다. 다카야마씨와 알고 지낸 지 20년 가까이 됐으니 벚꽃이야기도 비슷하게 오래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봄철에 늘 바쁜 일거리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령벚꽃이 궁금해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드디어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본에 건너갈 계획이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건너가기 며칠 전부터 주변에서 하나 둘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규슈는 한국보다 훨씬 남쪽이지 않은가. 4월 첫날 급한 마음에 서둘러 일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카야마씨다. 지금 막 유령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단다. 내가 건너 올 즈음이면 한창일거라 했다. 다카야마 과수원이 지대가 높은 탓이다. 게다가 유령벚꽃은 다른 품종에 비해 개화시기가 좀 늦은 편이라 했다. 퇴직 후 뒤처리를 서둘러 마치고 밤배를 타고 규슈로 향했다(관련기사 : '밀도있게' 살고 싶어 명예퇴직 하기로 했네).

전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후쿠오카 벚꽃들은 이미 지는 중이었다. 파란 잎이 무성해진 나무도 있었다. 하카타역에서 출발해 두시간만에 목적지 다누시마루에 닿았다. 급한 마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과수원으로 향했다. 거봉 포도밭 한 가운데에 벚나무가 서 있었다. 수령이 300년을 넘는다 했던가. 멀리서도 거목의 자태가 늠름하다. 맑은 한지 등불이라도 켜놓은 듯 주변이 환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화경이 다른 벚꽃에 비해 큰 품종이다. 게다가 화심에 핑크빛이 감돈다. 귀여운 이미지다. 태백이라는 품종으로 일본에서도 진귀한 벚나무에 속한단다. 벚꽃을 취재하기 위해 지역 신문기자도 다녀갔다. 벚나무 아래 사람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다. 유령벚꽃은 이 지역의 유명인사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일본 규슈지방 다카야마 과수원의 유령벚꽃

ⓒ 유신준

다카야마 과수원에서는 유령벚꽃의 관람료를 받는다. 1인당 300엔(한화 3000원 정도). 단골들에겐 무료다. 다카야마씨는 벚꽃 피는 시기를 예측해서 매년 단골들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이런 행사를 통하여 지난해 감과 포도를 주문한 고객들과 만난다. 그들과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담소를 즐긴다.

단골들은 꽃그늘 아래 다카야마씨와 그의 과수원 풍경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는 과수원 경영사업이 과일을 파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 다카야마라는 이름을 파는 일이라 여긴다. 사람사이 신뢰가 생명이라는 것이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관계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통해 물건 너머 사람을 지향하는 것이다.

다카야마씨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이 가꾸어 생산한 포도와 감을 통해 맺어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긴다. 지난해 단골들의 입소문을 통해 오천평의 거봉이 조기 품절됐다. 주변 농가들이 물건을 팔지 못해서 고민이 깊을 때라서 더 의미가 있었다. 질이 떨어져서 잼을 만들려고 밀쳐 두었던 등외품마저 고객들의 성화에 남아나지 않았다 한다.

가격이 싸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비싼 가격을 받는다. 정성들여 생산한 농산물은 응당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떻게 비싼 가격에 남들보다 많이 팔 수 있는가.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앞으로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 보려한다.

그는 부지런하다. 평상시에도 작은 이벤트를 많이 만든다. 때때로 주변에서 생산되는 야채를 구입하여 절임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단골들에게 보내기 위해서다. 평소 관계가 없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농산물에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공을 들여야 탄탄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관계는 신뢰를 통해 넓어지고 깊어지는 거라며.

다카야마씨 과수원 내 '유령벚꽃'의 정체

일본 규슈지방 다카야마 과수원의 유령벚꽃

ⓒ 유신준

다카야마씨는 유령벚꽃에 전해오는 전설이야기를 했다. 옛날 다누시마루가 유곽으로 번창했을 때 일이라 한다. 시루라는 기방에 인기 있는 미인 기생 유우와 레이라는 자매가 있었다. 예쁜 여자들 소문은 산 너머 야메지방에 있던 남자들 마음까지 들썩이게 했다. 두 사람을 지명하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나날이 바빠졌다. 반년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지만 그녀들은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결 같이 밝고 상냥했다.

그녀들은 벚꽃을 유난해 좋아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벚꽃 기다리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드디어 다누시마루에 벚꽃이 만개 봄날이 왔다. 그녀들은 일을 마치자마자 벚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달빛아래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자매는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기모노를 벗고 온몸으로 꽃잎을 맞았다. 달빛을 받은 그녀들의 나신 위에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꽃잎은 그녀들의 몸속으로 사르르 스며들었다. 꽃잎이 그녀들의 지친 몸을 회복시켰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그녀들의 몸이 꽃잎들로 변했다. 꽃잎들은 난무하는 나비처럼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벚꽃과 하나가 된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은 벚꽃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다. 그 후 이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몸으로 받으면 언제까지나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유령벚꽃은 그녀들의 이름을 합한 발음에서 왔다. 유우레이가 귀신을 뜻하는 유령과 같다 해서 귀신벚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한번 본 사람들이 매년 귀신에 홀린 듯 보러 오는지도 모른다. 유령벚꽃은 이 지역의 명물이다. 꽃이 피면 주변에서 보러오는 것은 물론이고 멀리 도쿄에서까지 온단다. 호텔예약까지 해놓고 비행기를 타고 보러오는 극성파 벚꽃광들이다.

하나둘 떨어지는 벚꽃... 그 모습 참 애잔하네

일본 규슈지방 다카야마 과수원의 유령벚꽃

ⓒ 유신준

공교롭게도 내가 도착한 날은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하루 종일 흐렸다 비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런 날은 노출이 떨어져서 선명한 사진을 얻기 어렵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대니 피사체까지 흔들린다. 사진촬영에 최악의 조건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벚나무 아래서면 일단 주머니에서 휴대폰부터 꺼낸다. 이런 벚꽃 언제 또 보랴. 비오고 바람 불면 대수인가. 벚꽃를 올려다보며 새 봄의 아름다움을 담느라 분주하다.

왜 일본 사람들이 그토록 벚꽃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벚꽃이 뭐 길래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날아와야 하는 거리조차 마다하지 않는가. 마침 가고시마에서 수의사를 하는 둘째 도모코가 다니러 왔다. 밝고 명랑한 스물아홉 살 아가씨다. 그녀에게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하면서 그녀가 내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벚꽃은 길지 않다. 길어봐야 일주일이다. 누구라서 이 속절없는 아름다움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붙잡아 둘 수 없는 아름다움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다.

둘째는 4월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이다. 4월은 일본에서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다. 학교에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는 것도 4월이고 신입사원을 뽑는 것도 4월이다. 벚꽃은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메신저인 셈이다. 화사한 아름다움을 지닌 벚꽃은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에 딱 맞는 상징이다. 그래서인지 유명한 벚꽃장소에는 좋은 자리를 먼저 맡느라 전날부터 자리를 깔아두는 소동까지 벌어진단다.

어느 새 유령벚꽃이 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다. 바람도 없는 나무아래 서면 하나둘 나풀나풀 떨어지는 풍경이 애잔하다. 짧아서 더 아름다운 일본의 봄은 벚꽃과 함께 피고 진다. 가는 봄 막을 수 있으랴. 수채화를 풀어놓은 듯한 다카토리산 신록과 더불어 봄은 더욱 깊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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