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라도 월세전환율 3.7~9.6% 들쑥날쑥

2014. 2. 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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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구별 '전국 월세지도' 만들어 집집마다 다른 '고무줄 시세' 없앤다

[동아일보]

10월 결혼을 앞둔 김모 씨(31·로펌 근무)는 약혼자의 친정과 가까운 서울 송파구 잠실동 A아파트에서 월세 아파트를 알아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같은 단지 내 비슷한 면적의 아파트 월세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층에 있어 매매가가 유사한 전용 84.9m² 아파트의 시세는 보증금 3억 원은 같아도 월세는 80만∼140만 원대로 중구난방이었다. 바로 옆 동의 같은 면적 아파트는 보증금 2억5000만 원에 월세 150만 원이었다. 김 씨는 "같은 단지 안, 같은 면적의 아파트들도 월세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 임대차시장서 밀리는 세입자 지원

정부가 월세시장 개혁에 나선 것은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늘어 내년이면 5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월세 가격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월세 공급이 부족해 세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월세 시세를 세밀하게 공개하고 월세 물량을 늘리는 대책이 없으면 집주인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들이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고 사회적 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월세 시세는 서울 부산 등 7개 광역시와 경기 등 전국 8개 광역시도에 대해서만 발표되고 있어 특정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시세가 다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제공되는 통계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참고하기 힘들 정도로 질이 낮다"라고 말했다. 향후 정부가 244개 시군구별 월세 평균 시세와 월세 전환율을 공개하면 월세가격이 집주인 맘대로 고무줄처럼 높아지는 일이 줄어 월세 세입자의 피해도 적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부는 또 전세가격 급등으로 서민들이 월세가 끼지 않은 '순수 전셋집'을 구하기 힘들어진 만큼 보증부 월세 물량 자체를 늘려야 월세가격이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주먹구구 월세가격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격은 시장 관행에 맞춰 자의적으로 책정돼 들쑥날쑥하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부터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집주인이 받을 수 있는 월세전환율 상한은 10%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전국의 아파트 평균 월세전환율은 임대차시장에서 7%대 이하로 통용되고 있어 큰 의미가 없다.

김 씨가 신혼집을 구하고 있는 잠실의 A아파트는 총 5000채로 구성된 대단지다. 본보가 이 지역 공인중개업소들이 인터넷 중개 사이트에 올린 전용 85m² 아파트 44채의 월세가격을 조사한 결과 보증금은 5000만 원에서 5억5000만 원, 월세는 70만∼230만 원으로 시세가 제각각이었다.

▼ "결혼시장서 집 소유는 막강 스펙" ▼

보통 보증금이 높을수록 월세는 낮게 정해진다. 하지만 보증금이 4억 원으로 동일한 경우에도 월세는 70만∼100만 원으로 차이가 컸다. 같은 물건인데도 중개업소마다 서로 다른 5개의 가격이 올려진 사례도 있었다. 이 지역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시세가 대체로 일정한 전세와 달리 월세금은 집주인의 의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월세 시장의 정보 부족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월세 계약을 할 때 집주인들이 한국의 보증금과 비슷한 '시큐리티 디파짓'으로 한두 달치 렌트비(월세)를 받는다는 기준이 통용된다. 세입자가 집을 나갈 때 연체한 월세가 있거나 수리를 해야 할 경우 여기에서 일부 돈을 떼고 나머지를 돌려준다.

이상명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월세보증금의 기준이 월세의 몇 개월 치쯤 돼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세입자가 보증금과 월세를 동시에 부담해야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월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이 보증금과 월세에 대한 시세 정보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영국은 정부와 런던 시가 운영하는 '런던 렌트 맵' 사이트를 통해 구역별로 월세 시세 지도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집주인들도 할 말이 있다. 박기정 한국감정원 연구위원은 "보증제도 등의 제도 미비로 공실 위험이나 체납 위험을 집주인이 다 감당해야 하다 보니 시장 이자율에 더해 '위험 프리미엄'까지 얹어 받아 월세금이 부담스럽게 책정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저소득층수록 월세 부담 높아

과도한 월세금은 저소득층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전모 씨(33·경기 부천시)는 최근 결혼을 전제로 1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결혼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이 씨가 여자친구에게 "당장 내 집 마련을 할 형편은 안 되고 전셋집은 찾기 어려우니 월셋집을 얻어야겠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 씨는 "헤어진 후 지인을 통해 여자친구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지출하려면 계속 맞벌이를 해야 할 것 같고, 씀씀이도 줄여야 할 것 같아 고민이 됐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이명길 연애코치는 "월세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최근 1, 2년 여성 회원들이 부쩍 남성의 주택 보유 여부를 중요한 '스펙'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 코치는 "여성들은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이 되는 '리스크'까지 고려해 가계 소득에 대해 셈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지난해 9월 펴낸 '존폐 기로의 전세제도'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전세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면서 저소득층 가구가 많아 주거불안전이 심각한 월세가구가 더 많은 임대료를 내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월세가구가 전세가구보다 1.6∼4배 정도(수도권 아파트 기준) 더 많은 주거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은행이 전월세 가격이 가계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금이 오르면 고소득층이, 월세금이 오르면 저소득층의 소비가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준일 jikim@donga.com·김현진 / 세종=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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