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살처분' 부안 줄포면 르포] 오리 14만마리 땅 속으로.. 농민 장탄식

2014. 1. 2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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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조심, 천천히 천천히…."

2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줄포면 신성마을 김모(58)씨의 오리농장. 농장 입구에서 공무원과 군인들이 마대 자루에 담아온 오리들을 굴착기를 통해 PVC통에 쉴 새 없이 담아 묻고 있었다. "으악." 굴착기에 들려진 마대에서 떨어지는 오리들이 통 앞에 서 있던 자신 쪽으로 떨어지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오리들은 바로 옆 농장 내 비닐하우스에서 질식해 숨진 채 담겨져 나왔다. 통 속에서는 계속 김이 솟아올랐다. 미리 땅속에 파묻어 둔 1t짜리 파란색 PVC통은 2000여 마리의 오리가 채워지자 비로소 뚜껑이 닫혔다.

"어찌 이런 일이…. 오리 농사 2년 만에 생떼 같은 아이들을 그대로 묻어야 하니 가슴이 미어지네요."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농장 주인 김씨는 "조류인플루엔자(AI) 하곤 상관없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20여일 뒤면 출하할 수 있었는데 1만 마리를 모두 묻었다. 답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다. 모두 다같이 겪는 아픔"이라며 오히려 담담해했다.

AI가 발생한 지 이날로 8일째. 줄포면 날씨는 오랜만에 푸근했다. 하지만 마을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정읍과 고창, 부안 읍내에서 줄포로 가는 도로에는 방역 요원들이 나서 오가는 차량에 모두 소독이 실시됐다. '가축 방역 차량 소독'이라고 적힌 입간판이 차량들을 안내했다.

이번 AI 사태로 줄포 지역 오리농장이 쑥대밭이 됐다. 이날에만 김씨 농장 등 7곳의 오리 농가에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됐다. 며칠 새 20개 농가 14만여 마리의 오리가 땅속에 묻혔다. 이제 면내에서 남은 오리 농가는 1곳뿐이다. 이미 8000여 마리의 오리를 묻은 박모씨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그럴 기분이 아니다"며 단호히 말했다.

다행히 닭을 키우는 이 지역 11농가는 아직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불똥이 튈지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줄포에서 자동차로 10여분 지나 도착한 동림저수지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멀리서 가창오리 등 철새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살얼음이 언 저수지 위에서 한가롭게 노닐었다. 저수지로 통하는 10여곳에 초소가 놓여 여전히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전북 서남부 주민들은 체념하는 분위기였다. 고창 해리면 농가의 오리도 AI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됐다는 소식에 일부에선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이날부터 고창과 부안, 정읍 지역 소독초소 29곳에서 모든 통행차량에 대해 소독에 들어갔다. 처음 AI가 발생한 고창군 신림면 씨오리농장의 살처분 매몰지에서 전날 침출수 일부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군청 직원들이 밤새 굴착기를 동원해 처리 작업을 했다.

연일 계속되는 작업으로 방역 요원들은 3중고를 겪고 있다. 공무원과 군인과 경찰이 중심이 된 방역 요원들은 강추위 속에 시간이 가면서 피로가 누적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세 지역에는 하루 1700여명이 투입되는 등 '방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부안=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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