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줄테니 내 수업 등록 좀 .." 시간제 교사의 설움

손국희 2013. 12. 2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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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학생·학부모·학교 모두에게 '을'영업사원처럼 학생 유치 세일즈

서울 서대문구 A초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모(43)씨는 최근 아들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컴퓨터 수업을 담당하는 한 방과후 교사가 아이들을 불러놓고 "다음 학기 컴퓨터 수업을 들으면 '뽀로로' 등 인기 만화 캐릭터의 스티커 세트를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교사가 "다른 반 친구들을 수업에 함께 데려올 경우 피자를 사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얘기를 추가로 듣고는 기가 찼다.

 서울 영등포구의 B초등학교에선 음악을 가르치는 한 시간제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다음 학기 방과 후 수업에 등록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수강인원이 적을 경우 다음 학기 수업을 맡지 못할 처지"라는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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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시간제 교사들은 수업을 맡느냐 못 맡느냐에 따라 생계가 갈린다. 이에 따라 일부 시간제 교사들은 수업 준비는 제쳐두고 마치 영업사원처럼 학생을 유치하는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담당하는 수업 수, 근무 시간에 따라 보수가 다른 시간제 교사의 특성상 수업을 계속 맡기 위해 학생·학부모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특히 시간제 교사의 경우 체육·미술·음악 등 예체능 수업이나 방과후 교실 수업을 주로 담당한다.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이 적을 경우 과목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현직 시간제 교사 최모(33)씨는 "근무 시간이나 임금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시간제 교사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담당 수업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것"이라며 "문화상품권 등 유인책을 동원해서라도 수강 학생들을 모집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학부모 모두에게 '을'의 입장이다 보니 교사로서의 권위가 낮아져 부실한 교육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자유분방한 초등학생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워 수업 진행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시간제 교사들도 상당수다. 시간제 교사 장모(35)씨는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상황이라 아이들을 훈육하고 통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선 시간제 교사에게 자녀의 수업을 맡기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많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박미화(40)씨는 "대다수 학부모가 면학 분위기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는 시간제 교사의 수업보다는 기존 정규직 교사의 수업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시간제 교사는 일반 정규직 교사와 달리 학교 회의, 행정 업무에 참여하거나 담임을 맡을 수 없다. 또 소풍 등 학교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등 상대적 소외감도 높다.

 이화여대 정익중(사회복지학) 교수는 "시간제 교사가 매년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열악한 현실은 전반적인 교육의 질 저하와 공교육 붕괴로 이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며 "시간제 교사들에게 일정 수준의 수업과 임금을 보장해주는 등 교육 안정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국 초등학교의 시간제 교사는 2만5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중·고교 시간제 교사까지 합치면 9만여 명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지난달 말 '교육공무원 임용령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은 내년 2학기부터 하루 4시간, 주 15~20시간 근무를 보장하는 '정규 시간선택제 교사' 600명을 일선 국·공립학교에 채용토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 정규직 교사에 비해 절반 정도의 시간만 근무하는 대신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고용률과 시간제 교사의 처우를 개선해 교육의 질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들 정규 시간선택제 교사는 매달 약 90만~100만원의 임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규직 교원들은 이 제도 도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난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정규직 교원 4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82.7%가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

 국민대 최항섭(사회학) 교수는 "일부 시간제 교사들의 신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준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면서도 "수혜 범위가 제한적이라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순차적으로 정규직 교사와의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박교연(조지타운대 문화정치학) 인턴기자 < 9key@joongang.co.kr >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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