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골길, 아직 가을이 머무르고 있었네

2013. 11. 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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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혜준 기자]

시흥늠내길 '갯골길'

ⓒ 유혜준

가을은 아직 길 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나무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느낀 듯 마른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가끔은 한꺼번에 떨어지는 마른 나뭇잎이 비가 되어 내리기도 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풍경에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가는 가을이 아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12일, 시흥늠내길 4개 코스(숲길, 갯골길, 옛길, 바람길) 가운데 2코스인 '갯골길'을 걸었다. 갯골길은 시흥시청을 출발해 갯골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걸어 다시 시흥시청으로 돌아오는 길로, 전체 구간의 길이는 16km. 다 걸으려면 4시간 남짓 걸린다. 아름다운 시흥 갯벌을 볼 수 있어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시흥늠내길 '갯골길' 안내 표지판

ⓒ 유혜준

특히 이 구간에는 시흥갯골생태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 경기도의 유일한 내만 갯골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원통형 전망대에 오르면 갯벌 전체 풍경을 조망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날 도보여행에는 이성덕 시흥시의원과 이점숙 '늠내길지킴이'가 동행했다. 이점숙 지킴이는 시흥시가 늠내길을 처음 만들 때 같이 참여했다. 때문에 시흥늠내길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세세하게 잘 알고 있으며, 늠내길을 찾는 이들의 길 안내를 맡아 한다. 이점숙 지킴이가 지금까지 시흥늠내길을 걸은 횟수는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다. 그이는 시흥늠내길 외에도 시흥의 아름다운 길들을 많이 알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런 길을 찾아 걷는다.

이성덕 시흥시의원과 이점숙 늠내길 지킴이

ⓒ 유혜준

시흥늠내길을 걷고 싶은데 길을 몰라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이점숙 지킴이를 찾으면 된다. 길 안내 뿐만 아니라, 길에 얽힌 이야기, 나무와 꽃 그리고 시흥 염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시흥시청 정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낙엽이 깔린 인도가 나온다. 갯골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단풍나무가 마치 불이 붙은 듯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보니 길을 나서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시흥늠내길 '갯골길'

ⓒ 유혜준

걷기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불지 않았고, 햇볕은 따사로웠다. 볼을 스치는 찬 기운은 상쾌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장현천으로 들어서는 길에 갯골길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표지판 위로 솟대 2개가 불쑥 솟아 있다. 이 길은 솟대가 길안내를 한다. 솟대의 부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걸으면 된다. 하지만 어느 구간에선가 솟대의 부리가 하늘을 향했다. 어, 하늘로 날아올라야 하는 건가? 하면서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아름답다.

장현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장현천에는 암컷 세 마리를 거느린 수컷 거위 한 마리가 유유히 물 위에 떠 있고, 그 앞에는 여러 마리의 오리들이 놀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지만, 길 위로 나서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시흥늠내길 '갯골길'

ⓒ 유혜준

우리 앞에 할머니 두 분이 정겹게 짐을 끌고 걸어가고 계셨다. 두 분, 초코바 하나를 번갈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걸음이 잰 우리가 할머니들을 따라잡자 먼저 가라고 옆으로 비켜주신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

시흥시에는 세 가지 특산품이 있다는 게 이점숙 지킴이의 설명. 그 가운데 2가지를 걸으면서 보았다. 하나는 쌀, 다른 하나는 미나리. 시흥시에서 생산되는 쌀은 한때 '햇토미'로 불렸으나, 지금은 '갯골 으뜸미'로 이름이 바뀌었다. 세가지 특산품 가운데 마지막 하나는 포도란다.

갯골길로 가는 길에 쌀을 가공하는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한쪽에 잔뜩 쌓아둔 쌀포대들이 보인다. 나중에 저 쌀을 사먹어 봐야겠다, 생각했다.

시흥 갯골 으뜸미

ⓒ 유혜준

시흥시 특산품 가운데 하나인 미나리.

ⓒ 유혜준

'갯골 으뜸미'가 생산되는 논은 가을걷이가 끝나 텅텅 비었다. 겨울이 오면 그 논들은 온통 눈으로 뒤덮일 것이다. 한데 한쪽에서 푸른 싹이 올라온 게 보인다. 바로 미나리다. 미나리꽝 위에 철사로 비닐하우스를 칠 준비를 해놨다. 겨울 채비를 서두르는 거다.

갯골길은 택지개발공사로 일부 구간이 사라졌다. 그래서 길이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즐겨 찾는 자전거도로인 그린웨이로 이어진다. 그 길에 자전거를 탄 이들이 무리지어 달려오고 있다. 그들 위에 늦가을의 볕이 따사롭게 쏟아진다. 한가로우면서 여유로운 풍경이다.

시흥의 갯골은 아주 특별하다. 밀물 때면 바닷물이 갯골을 따라 육지 안으로 밀려온다. 때문에 시흥 갯골은 '내만형 갯골'이라 불린다. 경기도에서 유일하단다. 갯골은 생태계의 보물창고로 불리기도 한다. 갈대의 한 종류인 모새달이 지천으로 자라나고 붉은 색을 띠는 염생식물인 함초와 칠면초가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칠면초는 색깔이 일곱 번 변한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시흥늠내길 '갯골길'

ⓒ 유혜준

< 시흥늠내길 > 2코스 갯골길. 갯골생태공원 안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

ⓒ 유혜준

한데 함초가 몸에 좋다고 하니 사람들이 와서 뿌리째 캐어가고 있단다. 그뿐인가. 토종 민들레가 좋다고 하니 너도 나도 와서 캐어가 자칫 하다가는 갯골공원에서 사라질 것 같아서 일부러 보존해서 싹을 틔우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칫하다가는 갯골생태공원의 명물인 함초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사람의 손과 발길이 닿으면 남아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생태계가 훼손되고 무너지면 그 영향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건데 사람들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나만 건강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염생식물이 나무나 꽃보다 더 많이 산소를 내뿜어 자연을 정화시킨다는 것이 이점숙 지킴이의 설명이다. 그러니 지키고 보존하고 더 많이 살려야한다는 것이다.

갯골길에는 염전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다는 시흥 염전은 한때 시흥을 흥청거리는 곳으로 만들기도 했으나, 지금은 죄다 사라져 버렸다. 40여개의 소금창고는 문화재로 지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땅임자가 하룻밤 사이에 대부분을 철거, 고작 2개만 남았다.

염부들이 땀을 흘리면서 소금을 일궜던 땅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장이 들어섰다. 시흥시의 도시화는 지금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택지개발을 하기 위해 땅을 고르고 파헤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 덕분에 시흥늠내길도 코스가 이리저리 변경될 수밖에 없는 상황.

시흥늠내길 '갯골길'

ⓒ 유혜준

갯골공원에는 옛날 소금창고 모양을 흉내 낸 건물이 두 채 들어서 있다. 지금은 새 건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저것 또한 시흥 갯골공원의 명물이 되어 문화재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불쑥 했다. 그 건물 뒤쪽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진짜 소금창고. 언제까지나 저 모습을 견딜 수 있을까?

갯골공원에서는 소금이 생산되고 있다. 체험용으로 염전이 만들어져 있고,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것. 갯골축제를 할 때 아이들이 소금 만들기 체험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흥시는 매년 이곳 갯골공원에서 갯골축제를 연다.

겨울을 앞두고 시흥 갯골의 명물 모새달이 죽어가고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색깔이 선명해 멋진 풍경을 연출했는데 이제는 시들어가고 있다는 게 이점숙 지킴이의 설명이다. 모새달 사이로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책로에서는 갯골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방게와 농게가 서식한다는데, 겨울에는 볼 수 없단다. 다 갯골 안으로 숨어들어가기 때문이다.

해당화 열매

ⓒ 유혜준

해당화는 꽃이 지고 붉은 열매를 매달았다. 그리고 은행나무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우수수 은행잎 비를 내려준다. 이성덕 의원이 은행잎 비를 맞으면서 탄성을 지른다. 이 의원은 낙엽이 쌓인 곳에서는 낙엽을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쥐고 하늘로 흩뿌리면서 좋아한다. 그 모습, 보기만 해도 좋다. 봄에는 꽃비를 맞으면서 걷고, 가을에는 낙엽비를 맞으면서 걸을 수 있다. 이 맛에 걷는 거다.

시흥시청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갯골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갯골생태공원은 눈 내린 겨울에도 풍경이 일품이라니 겨울에 다시 걸으러와야겠다. 그것도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

간장게장

ⓒ 유혜준

이날 도보여행의 마무리는 '게장 백반'이었다. 시흥시청 뒤에 있는 게장 전문식당인데 '꽃게탕'도 일품이라는 게 이 의원의 귀띔이다. 꽃게탕은 끓이는데 시간이 걸리니, 걷느라 허기가 진 중생들은 빨리 나오는 메뉴 '게장 백반'을 주문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알이 밴 꽃게의 맛이 일품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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