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그르노블 유학생

2013. 11. 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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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남부의 고도(古都) 그르노블. 인구 17만에 알프스 몽블랑으로 가는 길목이다. 1968년 제10회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후 세계적 휴양지로 떠올랐다. 동쪽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남쪽엔 지중해 항구 마르세유로 통한다. 그르노블은 4세기 로마황제 그라티아누스의 이름을 딴 그라티아노폴리스에서 유래됐다.

그르노블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문호 스탕달의 고향이기도 하다. '적과 흑' '연애론'을 쓴 그는 1783년 이곳에서 태어나 17살 나이에 나폴레옹을 따라 이탈리아에 갔다가 밀라노에 빠져버렸다. '마음의 고향' 밀라노를 사랑했던 그는 '밀라노 사람, 썼노라, 사랑했노라, 살았노라'는 명언을 묘비에 남겼다.

그르노블이 1970년대 초 프랑스 최첨단 과학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가 과학강국을 기치로 집중 육성했다. 14세기 설립된 그르노블대학도 화학, 전자, 핵공학 등 첨단과학연구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1974년 2월. 가냘픈 한국 여학생이 그르노블을 찾아왔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프랑스 최초로 이곳에 개설된 외국인 불어교육기관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대학 부근 하숙집에서 프랑스 독일 캐나다에서 온 젊은이들과 우정도 나눴다. 그는 '마드므와젤 박'이라 불리었다. 프랑스어로 마드므와젤(Mademoiselle)은 보통 젊은 여성을 지칭한다.

6개월 후 그는 서울로부터 '급히 귀국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영문도 모른 채 짐을 꾸려 그르노블을 떠났던 그는 오를리공항 대합실 신문 가판대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보았다.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이 39년 만에 프랑스를 방문했다. 파리 외곽의 바로 오를리공항을 통해서였다. 프랑스 3대 일간지 중 보수적인 르 피가로는 머리기사로 '한국의 대통령, 파리에 다시 온다'는 인터뷰를 전했다. 호칭도 '마드므와젤'이 아닌 대통령이란 뜻의 '프레지당'이었다. 르 피가로는 "갸냘픈 몸매에 수줍은 미소, 그러나 강력한 눈길"이라는 첫 인상도 상세히 소개했다.

예술과 공학의 도시 옛 그르노블을 기억하는 박 대통령. 가수 싸이의 에펠탑 공연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K팝 현장은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을 듯하다. 39년 전 오를리공항을 떠올렸을 박 대통령이 어머니 저격을 사주했던 북한에 대화의 손을 다시 내밀었다. 그르노블 유학생에서 대통령까지 39년의 세월은 르 피가로의 표현대로 '셰익스피어 소설속의 인물'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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