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누비라' 어디 갔나..한글 이름 국산차 '전무'

데일리안 2013. 10. 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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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 쌍용자동차 무쏘(위)와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누비라.ⓒ쌍용차/한국지엠

22년 만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 되면서 올해부터 10월 9일은 다시 '빨간 날'이 됐다. 한글의 중요성을 깊이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주어진 휴일이다.

하지만, 정작 한글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점점 외국어와 조합어, 은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자동차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이름부터 각종 부품명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양산 판매 중인 90여대의 국산차 중 한글이름을 가진 차량은 단 한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대우자동차의 맵시나(1983년), 누비라(1997년), 삼성상용차의 야무진(1998년), 쌍용자동차의 무쏘(2003년)처럼 우리말을 활용한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파워프라자의 독자 개발 전기차 '예쁘자나'가 한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는 양산 차종이 아닌 한정 판매 차종이라는 한계가 있다.

중고차업체 카즈가 국산 자동차 이름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가장 많이 활용된 언어는 영어로, 국산차의 약 30% 정도가 이에 해당됐다. 일부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라틴어 계열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아반떼'는 스페인어로 '전진'이라는 뜻이다. '에쿠스'는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외국 지명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주로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휴양지의 이름을 빌려온다. 특히 쉐보레는 말리부, 올란도, 캡티바 등 대부분의 차량에 지역명을 붙여 '휴양'의 인상을 강화하고 있다.

음악 용어를 활용한 경우도 있다. 물론, '느리게'를 뜻하는 용어는 금물이고, 대부분 '빠르게'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를 사용한다. 현대차 엑센트, 기아차 포르테가 대표적이다.

국가별로 다양한 이름을 가진 차종도 있다. 해당 국가의 언어적 특성을 고려해 어감이 좋지 않은 모델명은 피하느라 벌어진 현상이다.

기아차 플래그십 세단 K9의 경우 북미에는 우리나라와 다른 'K900'이라는 이름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미국에서 K9(케이나인 canine)은 개과의 동물을 의미하는데다, 경찰견이나 수색견 등을 통칭해 차명으로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내에서는 차명을 변경했지만, 해외에서는 현지에서의 인지도 등을 감안해 옛 차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차 아반떼의 수출명이 국내에서는 단종된 '엘란트라'인 것과, 기아차 프라이드의 수출명 역시 국내에서는 단종 모델인 '리오'인 게 대표적이다.

요즘 자동차 업계에는 회사를 상징하는 알파벳에 차급을 의미하는 숫자를 조합해 주력 차종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알파뉴메릭(이 용어는 대체할 한글 표현이 없다)' 방식도 유행하고 있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푸조, 렉서스 등이 알파뉴메릭 방식을 채택해 자동차 이름을 짓고 있다. 국내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최초로 알파뉴메릭 방식을 도입해 SM시리즈를 탄생시켰고, 기아차의 K시리즈(세단 차종에 적용), 현대차의 i시리즈(해치백 차종에 적용)도 알파뉴메릭의 일종이다.

자동차 이름에 알파뉴메릭을 적용시키면, 통합 브랜드 구축을 통해 회사와 제품 이미지 관리가 한결 수월해진다. 또 수출시 제품명이 겹쳐 발생하는 분쟁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알파뉴메릭 방식이 유행하면서 한글 이름을 단 국산차를 만나는 일은 더욱 요원해졌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글이 자동차 업계에서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명을 짓는 것은 자동차 업체지만, 그들로 하여금 한글을 배제하도록 만든 것은 소비자 책임이 크다.

국내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한글 이름을 세련되지 못하다고 받아들이는 소비자 성향이 분명히 존재하고, 제품을 만들어 파는 입장에서는 그런 성향을 외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입차에 대한 선호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차명도 좀 더 이국적인 것을 선호하는 추세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1년 3월 기존 '지엠대우' 대신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하고 차명도 쉐보레 본사의 것으로 전면 교체하면서 판매 증가 효과를 톡톡히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동차 업체에 한글사랑 차원에서 한글 차명을 짓는 풍토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자동차 이름을 새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 노력이 들어간다"며, "소비자들의 한글 이름 선호 성향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수년간 만들어 팔아야 할 자동차에 한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라고 말했다.

파워프라자가 독자 개발 전기차에 '예쁘자나'라는 파격적인 한글 이름을 붙인 것도, 이 차가 한정 판매 차종이라 가능한 것이지, 연간 수만 대 판매를 바라보고 만드는 양산차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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