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전 서양 선교사들 발길 따라 걸으니 성령의 보물 여기 있었네

2013. 10. 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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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부산총회 30일 개막… 미리가보는 기독유적

우둘투둘한 산들이 아름다운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색다른 도시가 부산이야. … 이곳은 안식일이 없는 이교도의 땅이란다. 아직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거든.' 1905년 부산에 도착했던 선교사 메리 켈리가 호주에 있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다. 100여년 전만 해도 이교도의 땅이었던 부산에서 이달 30일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10월30일∼11월8일)가 열린다.

총회를 열게 된 과정에는 한국이 선교대국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한국 교회가 1세기 만에 이렇게 급성장한 것은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헌신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부산을 통해 입국했다. 부산·경남은 호주 출신 선교사들이 주로 사역했다. 현재 부산·경남 기독교 인구는 50만명을 웃돈다. 본보는 지난 1일 이상규(사진) 고신대 교수와 함께 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봤다.

선교사들의 첫 기착지

영도 고신대 교정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봤다. 넓은 바다다. 100여년 전 선교사들은 어떤 꿈을 안고 이 땅에 첫발을 내딛었을까. 미국 의사 알렌(H N Allen)은 1884년 9월 14일 부산에 도착, 제물포를 거쳐 같은 달 20일 서울에 당도했다. 이듬해 4월 2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나란히 부산에 도착했다.

언더우드는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어둠과 인습에 묶인 조선사람뿐입니다"라고 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훗날 각각 연희전문학교와 배재학당을 세웠다. 이들이 조선에 처음 왔을 때 부산항은 현재 롯데백화점 광복점 맞은편 부산데파트 부근이었다. 올해 4월에야 표지석이 세워졌다. 주변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표지석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교가 최초로 파송한 선교사 데이비스(J H Davies)는 제물포로 입국, 선교사가 없는 지방에서 일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20여일 500㎞ 도보여행 끝에 열병으로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인 1890년 4월 5일 열병으로 숨졌다.

"당시 호주 신문에 그가 숨진 소식이 보도됐어요. 멜버른대를 졸업한 데이비스는 카오필드 문법학교를 설립, 교장을 역임한 인물이었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공부할 때 박사논문 쓰려고 자료를 찾으니까 담당자가 100년 만에 처음 열람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호주에서 공부한 이 교수의 얘기다.

호주 선교부 해방 전 78명 파송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교 해외선교위원회는 5월 "데이비스의 열성적 헌신은 새로운 선교에 중요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에 감화받고 그를 본받기 바란다"고 보고했다. 실제 호주 장로교는 이듬해 2진을 파송했다. 1891년 10월 매카이(Rev. J Mackay) 목사 부부와 미혼 여선교사 멘지스(B Menzies) 등 5명이 왔다. 호주 교회는 일제가 선교사들을 강제 추방한 1941년 전까지 선교사 78명을 파송했다.

미국 북장로교는 호주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전 부산에 베어드(W M Baird·한국명 배위량) 목사를 파송했다. 베어드는 1893년 6월 일기에서 '처음으로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모였다'고 기록했다. 부산 초량동 초량교회의 시작이다. 우리는 초량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곽원섭 장로의 안내로 역사관으로 갔다. 초량교회 역사관은 2층 예배당에서 연결되는 문을 열고 한 층 더 올라간 곳이었다.

꼭 보물을 숨겨둔 것 같았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두 친품인데 별로 좋지 않은 사고가 있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전시관에는 선교사 사택 사진, 당회록, 사진집 등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었다. 베어드 목사의 부인 애니가 작사한 찬송가 '멀리 멀리 갔더니'(387장) 악보가 전시돼 있다.

전시물 중에는 호주 선교부가 '1893년 교회 부지 689평을 336원에 샀다'는 기록이 있었다. 생명록(生命錄)이라는 제목의 책자가 눈에 띄었다. 1900∼1931년라고 부기돼 있었다. 곽 장로는 "요즘으로 치면 교적부예요. 언제, 누가 세례를 받았는지 기록돼 있어요. 표현이 참 재미있죠"라고 했다. 역사관 한쪽에는 고풍스러운 강대상이 있었다. "평양신학교 졸업 후 주기철 목사의 1926년 첫 부임지가 저희 교회였어요.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일사각오 설교도 이 강대상 위에서 한 겁니다." 관람은 사전 예약제다(051-465-0533).

일신여학교 박순천·박차정 배출

호주 여 선교사 멘지스는 1891년 한옥에서 예배를 드렸다. 좌천동 부산진교회의 출발이다. 그러다 1900년 10월 도착한 왕길지(G Engel) 선교사가 더 넓은 곳으로 예배당을 옮겼고, 1904년 당회를 조직했다. 멘지스는 후배 선교사들로부터 '호주 선교부의 어머니'로 불렸다. 온화한 성품에 배려심 깊은 생활 태도로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멘지스는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1893년 부산 최초의 고아원 '미오라'를 지었다. 한국 이남 최초 여학교인 일신여학교의 전신이다. 멘지스는 1895년 소학교를 설립하고 고아 3명을 가르쳤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부인과 어머니들이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생 수가 점점 늘어 1909년 좌천동 서양식 교사를 신축했다. 현존하는 부산 최고(最古)의 근대 건축물이다.

1919년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부산 지역 3·1운동 선봉에 섰다. 일신여학교 학생 김반수(당시 16세)는 어머니가 혼수용으로 마련한 옥양목 한 필을 품었다. 거기다 태극기를 그렸다. 교사 주경애를 비롯해 김반수 등 학생 11명이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수백 명이 호응했고 시위대 수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부산·경남 첫 독립만세운동이었다.

좌천동 비탈길 골목을 내다보자 만세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일신여학교 출신 중에 쟁쟁한 분이 많아요. 광복 후 2·4·5·6·7대 국회의원으로 여성 정치계를 이끌었던 박순천씨가 이 학교 출신이에요. 1930년대 애정소설 '찔레꽃'을 쓴 김말봉도 배출했고요. 일제시대 대표적 항일운동 부산방직 파업을 주도했던 박차정도요." 이 교수가 설명했다.

대이은 의료선교, 29만번째 아기

일제 말기 일신여학교 교사들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강제 출국됐다. 학교는 폐교됐다. 고등과로 있던 동래일신여학교는 현재 동래초·여중·고교·부산예고로 확장됐다. 일신여학교 건물은 역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바로 맞은편 부산진교회로 들어섰다. 교회 마당에는 멘지스와 무어 선교사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애는 열두살만 되면 낮에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멘지스 부인은 여자애들을 인도하려고 야학을 열었어요. 밤에 여자애들이 물동이를 이고 샘으로 물 길러 가는 길에 물동이를 학교 문 안에 내려놓고 한참 배우고 가고 했던 거예요. 부모도 나중에는 이상하게 여겨 물 길러 가서 왜 이다지 늦게 오는가 하면서 담뱃대를 물고 기다리고…." 왕길지 목사 부인의 회고담이다.

부산진교회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큰길가에 일신기독병원이 있었다. 1910년 맥킨지 선교사 가족이 세운 곳이다. 의료훈련을 받은 맥킨지는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감만동 한센병치료센터는 처음 20명에 불과했으나 1935년 600여명이 생활했다. 그는 한센병 환자의 아버지였다. 손양원 목사는 한센병을 돌보던 상애원 전도사로 일했다. 맥킨지 목사의 두 딸 헬렌(Helen)과 캐드린(Catherine)은 1952년 일신부인병원을 열었다. 진료·교육·선교 목적이었다. 올해 9월 29만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일신기독병원으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는 맥킨지기념관이 있다.

부산진교회를 중심으로 한 좌천동 언덕배기를 돌아봤다. 100여년 전 선교사들이 남긴 유산이 우리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다음 방문객을 기다리는 듯.

부산=글·강주화 기자, 사진·신웅수 인턴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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