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는 '스마일 쌤'이 계신다.. 여수 금오도 섬마을 선생님 존 매클린톡

2013. 10. 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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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에서 배로 30분 거리인 금오도. 비렁길로 유명한 이곳엔 특별한 '섬마을 선생님'이 산다.

제자들에게 집을 개방한 그는 방과 후 수시로 찾아오는 이들을 먹이고 놀아주는 일을 6년째 하고 있다.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많아 쉴 틈 없이 바쁘지만 그는 행복하다. 순수한 섬 아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시간과 재능을 헌신할 수 있어서다. 올해 마흔인 그는 대형마트도, 변변한 문화시설도 없는 낙도에서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미혼인 것에 감사하다고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언어도 생김새도 다른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영어실력뿐 아니라 이들의 삶까지 세세히 챙기는 그는 마치 낙도 선교사 같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존 매클린톡. 그는 전라남도 여수 금오도, 화태도, 안도 등 5개 섬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섬마을 원어민 교사다. 주중에 교사뿐 아니라 부모, 친구, 운전기사, 요리사 등의 역할을 해내느라 매일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존은 주말에도 여전히 바빴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엔 학생들에게 요리강습을 하고 격주 일요일마다 여수 대신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한다. 지난달 15일, 교회에서 성경모임을 이끌던 존은 함박웃음을 띠고 허리를 굽혀 한국식으로 인사하며 기자를 맞았다.

이날 모임에 온 교회학교 학생은 중·고등학생 5명. 이들을 위해 존은 아침 일찍 금오도에서 여수행 배를 탔다. 이들에게 존에 대해 물으니 '인상 좋고 친절하다' '너무 착해 탈이다'란 답이 돌아왔다.

"힘든 내색 없이 한없이 남들 돕는 걸 보면 '뭐 이런 사람도 있나' 싶어요. 아마 고아원 원장도 이렇게 아이들 못 챙길걸요. 앞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또 만나긴 어려울 것 같아요." 6년 전부터 그를 알았다는 박인환(18)군이 이렇게 말하자 칭찬에 머쓱한지 존은 헤벌쭉 입을 벌리고 또 다시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하나님의 계획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도와주길 좋아했던 존의 원래 꿈은 산업심리학자. 감리교인으로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학교에 가길 원했던 그는 남아공 포체스트룸 대학교에 진학해 산업심리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첫 직장은 남아공 전국에 14개 지사를 둔 전자제품 전문점이었다. 이곳 본사에서 재무 담당자로 10년간 일했다. 재무이사까지 빠르게 승진했지만 이내 장벽에 부닥쳤다. 경영자 가족이 아니고선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갈 수 없었던 것. 이직도 고려했지만 남아공의 흑인 우대 정책으로 백인 남성이 직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상당히 제한돼 있었다.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그때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던 사촌이 그에게 한국행을 권했다.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은 없지만 인종차별로 힘들어하던 그는 한국행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느꼈다. 결국 존은 2004년 전남 순천의 영어학원 강사로 한국에 왔다. 5년 정도 한국에 머무른 뒤 향후 진로를 결정하려던 게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섬마을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가 영어예배 찬양 인도자로 봉사하던 순천의 한 교회에서 여수대신교회 박진섭 목사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박 목사로부터 GS칼텍스와 여수시 교육지원청이 후원하는 '도서학교 원어민 영어교실'에서 강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존은 여기에 자원했다.

매일 여수 인근 금오도, 연도, 안도 등 외딴섬을 찾아 영어수업을 진행하는 고된 일. 그러나 그는 여기에 한술 더 떠 금오도에 살며 학생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순천에서의 아파트 생활이 답답했고 평소 섬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획이란 확신이 들어서였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제 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장 잘 아시니까요.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오고 금오도에서 지내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라 믿었던 것은 이 일이 막힘없이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분을 믿고 신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섬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친구 '존'

2008년부터 '섬마을 선생님'이 된 그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보단 '존'으로 불린다. "날 먼저 친구라 여긴 뒤 선생님으로 대하라(I'm friend first and then teacher)"란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영어로 쉽게 말을 떼지 못하는 학생들이 '외국인 공포증'을 극복하고 편하게 영어를 배우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 역시도 제자를 친한 친구로 대했다. 존은 그를 만나고 싶어 집으로 찾아온 학생들을 한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배가 고픈 이들에겐 피자나 토스트, 쿠키를 만들어줬고 고민이 있어 찾아온 학생들에겐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줬다. 수영, 보드게임, 영화상영도 존이 집에 놀러온 학생과 하는 주된 일 중 하나다.

그러자 학생들은 모임 장소가 필요할 때에도, 이동수단이 없거나 심지어 마땅히 지낼 곳이 없을 때에도 그를 찾았다. 이곳저곳 그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존은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웃으며 늘어가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 때문에 그는 '스마일맨'이란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197㎝ 장신인 그가 느릿한 말투로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학생들 끼니를 챙기고 운전기사를 자처하자 섬마을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를 추천한 박 목사는 존을 '섬마을 선교사'라 부르기도 했다. 섬 학교 순회교사로 일하기도 벅찰 텐데 방과 후에 학생을 위해 갖가지 일을 해서다. 그것도 모자라 소득의 반 이상을 제자들 간식비, 조손가정과 결손가정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학비 일부나 용돈으로 지원한다.

그의 일과는 모두 학생의 요구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도 지칠 때가 있어요. 하루에 세 번 저녁을 차리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여유롭고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럴 때죠. 그렇지만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데 큰 보람을 느끼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학생들이 행복해할 때 저도 행복하거든요."

존은 요새 새 일자리를 찾느라 바쁘다. 사고로 몸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내년 2월 한국을 떠나야 해서다. 10년간 외국인 친구 하나 없이 한국인과 친분을 쌓아온 그는 '평생 이곳에 살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 굳게 믿는다고 했다.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길 원하는지 물었다.

"제게 모든 학생들은 특별한 존재예요. 이들과 함께 전 한국에서 가장 멋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저 이들 마음 한쪽에 '친구 존'으로 기억해준다면 좋겠어요. 저 역시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이들을 잊지 않을 테니까요."

여수=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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