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길 따라 걷노라면 어느덧 나도 시인.. '지붕 없는 박물관' 영월 트레일 3選

2013. 9. 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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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一自寃禽出帝宮)… 중략…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窮恨年年恨不窮)… 중략…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血流春谷落花紅)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天聾尙未圓哀訴)…."

영월로 유배를 떠난 단종이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피를 토하며 운다는 자규새와 자신의 처지를 빗대 읊은 자규시(子規詩)의 일부다. 이처럼 영월은 어린 왕 단종의 꿈과 한이 서리고, 시선 김삿갓의 풍류가 함께 살아 숨쉬며, 동강과 서강을 따라 구절양장(九折羊腸)을 이루는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과 다름 아니다.

영월 길을 걷노라면 살아 숨쉬는 역사와 자연을 한 몸에 느낄 수 있다. 영월은 역사와 자연을 모두 담은 도시답게 다양한 트레일이 발달돼 있다. ▲단종이 유배를 떠났던 '단종대왕 유배길' ▲김삿갓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김삿갓문학길'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주천강둑 느림길' ▲탄광길과 맞닿은 '산꼬라데이길' ▲음이온 가득한 소나무숲길 '장릉웰빙등산로' 등 '지붕 없는 박물관' 영월을 걸으며 단종의 슬픔과, 김삿갓의 풍류와 대화를 나눠보자.

◇슬프고도 아름다운 '단종대왕 유배길'= 단종은 수양대군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해 영월 청령포 700리길 유배를 떠난다. 그 먼 유배길 가운데 영월 구간 단종대왕 유배길은 영월군과 경계인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솔치재 정상에서 시작돼 유배생활을 했던 영월읍 방절리 청령포에 이르는 43㎞ 구간이다. 1구간 '애달픈 통곡의 길'은 솔치재∼주천 3층석탑에 이르는 10.5㎞ 거리로 목숨을 바쳐 섬겨야 할 임금에게 사약을 들고 가 전했던 신하들이 울고 또 울며 걷던 길이다. 2구간은 '결연한 충절의 길'로 주천 3층석탑∼배일치마을 17㎞, 죽음으로서 단종을 향해 군신유의(君臣有義)를 지키고자 했던 사육신과 금성대군, 생육신 등의 길이다. 마지막 3구간 '인륜의 길'은 배일치마을∼청령포 유배지에 이르는 15.5㎞로 죽은 단종의 시신을 건드리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모셨던 영월호장 엄흥도의 길이다.

◇방랑시인 김삿갓과 이야기 나누는 '김삿갓문학길(외씨버선길)'= 우리에게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김병연(1807∼1863)은 조선 후기 시인으로 할아버지가 1811년 홍경래의 난에 연루돼 집안이 망하자 강원도 영월로 옮겨와 숨어 살았다. 집안의 내력을 모르고 성장한 김삿갓은 과거에 응시해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했다. 이후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으로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다니며 수많은 시를 남겼다. 김삿갓문학길은 김삿갓면 와석리 감삿갓 계곡에 있는 난고김삿갓문학관에서 시작해 김삿갓면사무소까지 12.4㎞ 구간이다. 인근에 김삿갓묘역이 있고 생가가 복원돼 있다. 김삿갓의 행적을 따라 자연을 벗하며 걷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시인이 된다. 또 조선민화박물관, 묵산미술관 등 길에서 만나는 이색 박물관에서 다양한 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는 길로 각광받고 있다.

◇느림의 미학 배우는 '주천강둑 느림길'= 바쁜 일상을 접고 느린 삶의 미학을 맛볼 수 있는 주천강둑 느림길은 주천강 제방둑에 있는 강원도 문화재 제28호 주천 3층석탑과 의호총(義虎塚)을 시작으로 한자로 주천(酒泉)이란 글씨가 새겨진 비석거리 술샘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샘에서 술이 나왔는데 양반이 오면 약주(藥酒)가 나오고 천민이 오면 탁주(濁酒)가 나왔다고 한다. 술샘 옆에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조선 선비의 청렴함을 보여주는 빙허루(憑虛樓)가 나온다. 이후 가파른 할딱고개를 지나 정상에 다다르면 유유하게 흐르는 주천강 줄기와 저 멀리 수준면 무릉리와 도원리, 즉 무릉도원의 너른 벌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소 수령 80년생 이상의 소나무 숲은 일상에 찌든 마음을 정화시킨다. 총거리 6㎞.

박주호 쿠키뉴스 기자 epi0212@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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