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삼국지] 유우, 공손찬에 패해 역적수괴로 참수된 현인

2013. 7. 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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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유우는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매우 훌륭한 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어진 지방관이었고, 유능한 외교가였으며, 끝까지 나라를 배신하지 않은 충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적의 수괴라는 누명을 쓰고 저잣거리에서 참수됐다. 그는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것 이외에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었다.

유우는 후한 황실 가문의 일원으로 조부 유가가 *광록훈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었다. 젊어서 '오경(五經)'에 통달했고 사대부 사이에서 명성이 높아 이응·순익 등과 함께 '팔준(八俊)'으로 꼽혔다. 팔준이란 당시 가장 이름난 명사들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벼슬길도 순탄해서 일찍이 유주자사를 지냈다. 장순·장거가 난을 일으켜 오환족 수령 구력거와 연합하자 유주는 일시에 혼란상태에 빠졌다. 조정에서는 유주자사 시절에 선정을 베풀어 변방의 백성들과 이민족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던 유우를 유주목에 임명해 파견했다.

유우는 임지에 도착한 후 오환족에게 사자를 보내 협상을 개시했다. 또 한편으론 장순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오환족 수령들을 회유하고 설득했다. 오환족이라면 이를 갈던 공손찬이 이를 방해했다. 힘들게 싸워왔지만 별 성과를 거주지 못하고 있던 공손찬은 유우가 협상에 의해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배가 아프기도 했지만, 이민족과의 싸움을 핑계로 자신의 군세를 키워보려는 흑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공손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우는 오환족과의 화해를 성사시켰다. 난을 일으킨 장본인인 장순은 피살돼 그 목이 유우에게 보내졌다.

난이 진압된 후 유우는 유주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 근검절약하며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고 호족과의 교역을 하는 등 경제를 진흥시키니 곧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졌다. 청주와 서주에서 난민이 몰려와 인구도 크게 늘었다. 천하혼란의 와중에 보기 드문 선정이었다.그러나 공손찬과의 관계가 문제였다. 두 사람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유우는 오환족 등 이민족들과 화해와 협력을 추구했으나 공손찬은 무력으로 격멸하려 했다. 유우는 백성들이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세를 거두어 군대를 키우는 일을 싫어했으나 공손찬은 군대 증강을 위해 유우가 대폭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조정에 대해서도 유우는 변함없는 충성을 표했으나 공손찬은 형세를 관망하며 자신의 세를 키우는 일에만 열중했다.

원칙적으로는 유우가 공손찬의 상관이었으므로 공손찬이 그의 명령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청주와 서주의 황건적을 무찔러 위세가 크게 오른 공손찬은 사실상 독자적 군벌 행세를 했으므로 통제가 되질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불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이른 유우가 먼저 선공을 취했으나 오히려 패배해 잡혀 죽고 만다. 훌륭한 유학자이자, 유능한 외교관, 존경받는 지방관으로 우수한 실적을 낸 유우는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었다. 유우가 난세에 적합하지 않은 유형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치세의 재능과 난세의 능력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현대정치에서 유능한 관료가 선거판에 무용지물인 반면에 뛰어난 정치참모가 국가의 통치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같다.

[미화된 영웅] 유우, 꾹꾹 눌러참다가 감정조절 실패

공손찬이 군대를 증강하고자 백성들을 제멋대로 약탈하자 유우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유우가 은밀히 유주 전역에서 1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공손찬의 거성을 포위했다. 당시 공손찬의 주력 군단은 외지에 파견되었으므로 남아있는 공손찬의 병력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결과는 공손찬의 승리였다. 압도적 병력을 동원했음에도 유우가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유는 병력만 많았지 군심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주의 여론은 공손찬과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유우의 장수들은 청주와 서주의 황건적을 격파한 공손찬의 위명을 두려워했다. 유우가 막 출병하려는 순간까지 정서라는 장수가 나서 출병을 만류했고, 공손기라는 자는 공손찬에게 달려가 이 계획을 밀고하기까지 했다. 의론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작전으로 장졸들의 행동을 통일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둘째 유우의 자질이 전장에 나선 장수로서는 자격미달이었다. 성 주변의 피난민촌을 불살라 화공을 취하자는 건의에 피난민들의 생활을 걱정한 유우가 이를 거절했다. 그날 밤 바람의 풍향이 바뀌자 공손찬은 주저하지 않고 피난민촌에 불을 질러 유우의 군영을 일시에 혼란에 빠뜨렸다. 싸움이란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싸우질 말던지.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싸움의 속성이다.

유우의 점잖은 성품은 난세에 벌어지는 이전투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마치 요즘 웰빙족 정치인들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에도 유우가 무력 해결에 나선 이유는 그의 성격적 결함 때문일 것이다. 유학자적 수양을 닦아온 유우는 감정을 쉽게 표출하지 않고 화가 나도 안으로 꾹꾹 눌러 참는 성격이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일수록 어느 한계치를 넘게 되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한번 감정이 폭발하면 스스로도 통제가 불가능해지곤 한다. 수양이 부족해 감정조절에 실패하면 겉으로 보여주던 위선적인 면이 한순간에 벗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성격적 결함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은 적어도 한 국가나 한 지역의 통치자로서는 낙제점이다. 우리는 비현실적으로 늘 착한 척, 올바른 척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비열해보이거나 그때, 그때 직설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보다 더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 벗겨보기] 유우가 유비보다 황실에 더 가까운 친족이었다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유비가 꽤 가까운 황실의 일원인 것처럼 나온다. 실제로 촌수를 따진다면 여러 군웅들 중 헌제의 가장 가까운 친족은 유우였다. 유우는 전한을 창업한 한고조 유방의 후손들인 유비·유표·유언·유대·유요 등과는 달리 후한 광무제 유수의 장남인 동해공왕 유강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씨들 중 유우를 제외하면 후한 황실의 후손은 광무제의 아들 부릉왕의 후손인 유엽 정도이다.

풀이

*광록훈=궁전 문을 지키고 황제를 모시는 일을 맡은 고위직으로 많은 부하를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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