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유산', 결국 잘 먹고 잘 살았더래요

2013. 6. 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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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한경희 기자]

▲ '백년의 유산'

엄팽달의 국수공장 가업의 꿈은 가족들의 합심으로 좋은 결실을 맺었다.

ⓒ MBC

< 오마이스타 > 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 오마이스타 > 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지난 23일 최종회를 맞은 MBC < 백년의 유산 > 에서 민채원(유진 분)은 드디어 이세윤(이정진 분)과 결혼을 했고, 비상식적 집착성향을 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안기던 김철규(최원영 분)는 마홍주(심이영 분)와 재결합을 했으며, 백설주(차화연 분)와 양춘희(전인화 분)는 화해를 했다.

그것뿐인가? 온갖 악행의 대명사였던 방영자(박원숙 분)는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급기야 민채원에게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신세가 되고 나서야 역지사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이세윤은 마지막 회가 되어서야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깨어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로 50회가 되어서야 겨우 깨어난 것이다.

해피엔딩을 위해 달려온 50회, 결론을 위한 과정은 허술

"니들이 국수 맛을 알아?" 드라마의 마지막은 비록 목소리뿐이었지만 죽은 엄팽달(신구 분)이 장식했다. 구구절절했던 이야기의 결론은 '다들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였다. < 백년의 유산 > 은 그 해피엔딩을 위해 장장 50회를 달려왔다. 시청률 30%를 훌쩍 넘겼으니 긴 여정의 보상은 받은 셈이다.

기억력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50회라는 긴 시간을 탓해야 할까?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분명 좋았을 초반을 지나 굽이굽이 이야기들이 꼬이고 꼬인 다음,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엄청난 일들이 마구잡이로 터지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힘겹게 모든 것이 봉합되곤 하는 것은 이제 우리 드라마들의 큰 특징이 되었다.

그 기승전결의 과정은 대개 이렇다. 뭔가 재밌을 법한 이야기는 중반을 향해가며 슬슬 변질되기 시작되는데, 무리수가 하나둘씩 끼어들고 급기야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질 정도의 상황이 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마지막 회에는 모든 것이 술술 풀리며 두루뭉수리하면서도 행복한 결론을 맞이한다.

구렁이 담 넘듯하는 결론에 어리둥절하긴 하지만, 등장인물들 모두가 웃으니 나쁠 건 없지 않냐는 식이다. 이쯤 되면 우리 드라마들의 마무리 봉합기술은 전대미문의 것으로 찬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마지막 회를 위해 시청자들이 온갖 무리수를 감내해야만 하는가? 훌륭한 결론만큼이나 과정도 좋은 드라마를 바라는 것은 아직은 무리일까?

너무 긴 드라마, 무리수는 그것에서 시작되는 걸까?

▲ '백년의 유산'

방영자 가족의 만행(?)은 이 드라마에 큰 재미를 불어넣었다.

ⓒ MBC

< 백년의 유산 > 의 흥행요인은 사실 단순했다. 큰 국수공장을 후대에 물려주려는 엄팽달, 식품회사 사장 방영자, 그리고 이세윤의 어머니 백설주, 이렇게 세 집안이 큰 틀. 여기에 악질 시어머니였지만 왠지 만만했던 방영자 가족의 막장코믹(?), 민채원 가족의 속물적이면서도 훈훈한 가족애, 양춘희와 백설주를 둘러싼 미스터리, 그리고 몇몇 로맨스 등의 요소들이 요절복통의 상황과 함께 진한 감동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이 드라마는 비록 명작은 될 수 없었을지라도 꽤 괜찮은 가족드라마로 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전통의 추구, 가족애, 인간애 등과 인간의 속물성, 이중성 등을 적나라하게 비꼬는 등의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후반 들어 출생의 비밀에 얽힌 지리멸렬한 전개, 일부 캐릭터들의 엽기적 변형 등으로 많은 점수를 잃고 말았다.

만일 이 드라마를 20회 내외의 분량으로 줄였으면 어땠을까? 여러 변수를 감안할 때 정확한 예측은 어렵겠지만,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라는 정도의 예상은 가능하다. 온갖 무리수 설정은 분명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로인한 캐릭터의 변질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보여주었던 미덕까지 모두 폄하된다면 아쉽지 않을까? 과정이 미흡했다 하여 애초에 < 백년의 유산 > 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들까지 모조리 훼손된 것은 아니다. 온갖 막장 논란에서도 이 드라마를 지탱하고 빛내주었던 것은 바로 그런 미덕들이었던 것이다.

전통방식을 이용한 '수제국수' 가업을 이으려했던 엄팽달의 고군분투, 마지못해 참여했지만 결국 그 뜻을 받들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는 마침내 결실을 이루었다. 또한 미숙한데다 한결같이 이기적이었던 많은 인물들이 가끔씩 탈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

무엇보다 민채원, 양춘희, 민효동(정보석 분) 등 몇몇 인물들은 드라마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초지일관의 캐릭터로 때로는 답답해 보일 정도였는데, 언제나 훈훈한 인간미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을만하다.

절대로 변하지 않아 좋았던 것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방영자의 변덕스럽고 극악무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행태다. 그의 민채원에 대한 포악함, 자식들에 대한 극한의 이기적 사랑, 마홍주에 대한 굴욕적 이중적 태도 등은 극의 전반을 지배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시청자들은 그의 등장을 반겼다. 그것에는 배우 박원숙의 힘도 있었지만, 방영자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 속물성 등을 가차 없이 풍자해낸 것도 큰 몫을 담당했다.

소란스럽고 파란만장했던 드라마 < 백년의 유산 > 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 이제 결국 종착역에 닿았다. 도는 김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돌뱅이 행세도 하고, 투전판에도 끼어들어 모든 것을 털리기도 하고, 때론 뜨내기들끼리 만나 사랑도 했던, 이 드라마의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모양새는 그렇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또 하나의 드라마가 끝났다. 이제 길을 가다 혹시라도 민채원의 국수집을 발견하면 국수 한 그릇 청하고 싶고, 방영자와 양춘희, 백설주 등을 만나게 되면 이제 좀 행복하냐고 묻고도 싶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 백년의 유산 > 의 등장인물들이 어디선가 살아 숨 쉬고 있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미우나 고우나 장장 50회의 긴 시간을 함께 달려온 탓일 게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인물들과 상황들이 펼쳐질 것이다. 보다 진화된 드라마의 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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