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으로 재미보려는 언론.. 허스트 능가하겠네

2013. 5. 1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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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은균 기자]

< 타블로이드 전쟁 > 책표지.

ⓒ 양철북

연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걸려들고 있다. 포스코의 '라면 상무'와 프라임베이커리의 '장지갑 회장님'이 강한 출발 신호를 알렸다. 곧이어 '욕설 남양유업'의 적나라한 민낯이 공개되더니, 화려한 대미는 이 나라 최고의 권부 대변인이었던 윤창중씨가 장식했다. 요란한 이들 사건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아아, 어떤 것부터 어떻게 먹어야 해?!"

이 책의 저자에 따른다면, 이들 사건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따라 그 신문(언론)의 건강 상태가 가늠될 수 있을 듯하다. 저자의 기준은 단순해 보인다. 선정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 거창함만큼이나 정체가 대단히 모호하다. 아니, 복잡하면서도 다채롭다고 해야 하나. 픽션이면서 논픽션이고, 잔혹 스릴러인 동시에 멜로드라마다. 냉소적 문체 속에 뜨거운 열정의 어조가 담겨 있다.

400쪽에 가까운 본문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대화는 모두 논픽션이다. 저자 스스로 책 머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인용부호 안의 대화는 모두 이들 기록(열 개가 넘는 신문사에서 취재해 쓴 기사들과 관련자들의 사후 수기-기자 주)에 나와 있는 그대로"(7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문에는 저자의 판단이 들어가 있다. 상상을 통한 재구성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픽션이기도 하다.

1897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얼굴 없는 토막 시체' 사건 이야기

이 책의 주요 얼개는 1897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얼굴 없는 토막 시체 사건 이야기로 짜여 있다. 이 사건에는 외과의사들이 뼈를 자를 때 쓰는 45cm의 톱이 등장한다. 이 톱은 굴든수프의 몸을 절단하는 데 쓰인다. 목에서 분리해 낸 굴든수프의 머리를 석회로 굳히는 사후 처리 방법도 나온다.

물론 잔혹 스릴러에 걸맞게 그 머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는다. 세기의 재판 끝에 나온 결론은 주범이 아닌 종범의 사형이다. 사건 후에도 제2, 제3의 굴든수프 사건이 연이어 터져, "범죄를 자극하는 최면적 현상이 만연"(366쪽)하다는 의학 학술지의 지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만하면 잔혹 스릴러의 요건은 꽤 갖춘 셈이 아닌가.

하지만 이 놀라운 사건은 칙칙하면서도 삿된 관심을 끌 만한 멜로 드라마의 요소도 듬뿍 담고 있다. 독일 출신의 유부녀 조산사인 오거스터 낵은 남편인 허먼 낵과의 불화 끝에 두 명의 정부(情夫)를 사귄다. 목 없는 주인으로 생을 마감한 마사지사 굴든수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전기의자에서 '게거품을 물고(사형 집행이 끝난 뒤에도 게거품을 흘리며 숨을 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죽어간 이발사 마틴 손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저자가 의뭉스럽게 묘사하는 이들은 자주 낭만적이고 감성적이어서 적당한 때에 적절한 곳에서 서로를 향한 애틋한 대사와 행동을 보여 준다.

이들 간의 애틋한 삼각(상당히 비중 있게 그려지는, 오거스터 낵의 남편 허먼 낵까지를 포함하면 사각 관계다) 관계와 더불어 우리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부분이 저자의 냉소적 문체와 열정의 어조다. 그리고 그것이 향하는 대상은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 곧 19세기 말의 세기말적인 혼돈 속에서 배태된 황색 언론과 당시의 시대상이다.

'황색 언론'이라는 말의 주인공을 아는가.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모든 언론인의 사표처럼 추앙받는 조지프 퓰리처(1847~1911)다. 돈을 벌기 위해 남북 전쟁에 기병대로 참전하기까지 한 퓰리처는 1883년에 < 뉴욕 월드 > 라는 신문사를 사들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신문은 "2만 부 정도를 관절염으로 고생하듯 끙끙거리며 배포했고 그러느라 돈"(34쪽)이 줄줄 새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퓰리처의 손에 넘어간 이 신문은 순식간에 판매 부수가 열다섯 배나 뛰어 세계 최대의 일간지 하나로 부상했다. 여기서 그의 사업 수완을 보자.

퓰리처는 사원들을 해고했고, 맹렬한 속도를 자랑하는 신제품 호(Hoe) 윤전기를 사들였고, 최고의 기자와 편집자들을 용병으로 끌어모아, 단조롭고 특징 없는 지면을 대담한 헤드라인과 선정적인 목판 삽화를 곁들인 지면으로 재탄생시키라고 사정없이 압박을 가했다. (34쪽)

이때 < 뉴욕 월드 > 는 세계 최초로 컬러 만화를 신문에 실었다. 귀가 주전자 손잡이처럼 생긴, 공동주택에 사는 익살꾼 민머리 꼬마가 주인공이었던 이 만화의 제목은 < 옐로 키드 > 였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의 < 뉴욕 월드 > 를 경쟁 신문사가 만화 저널리즘이라고 비웃었는데, 여기서 "옐로 저널리즘(황색 언론)"이라는 말이 생겨난다.

굴든 수프 사건... 경쟁사 선정 보도 위해 주요 용의자들을 한 명씩 꿰차

퓰리처에게는 막강한 '적'이 있었다. 그의 '업계 제자'로 출발했지만, 결국 그를 능가한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가 그 주인공이다. 허스트는 '업계 스승' 퓰리처를 모방하는 동시에, 탁월한 솜씨와 용기로 그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허스트가 모방한 것은 < 뉴욕 월드 > 의 '선정성'이었고, 극복한 것은 퓰리처의 소심한 '도덕성(1911년 사망한 퓰리처는 황색 언론 전쟁의 주인공이 아니라, 컬럼비아 대학에 거액의 재산을 기부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1917년에 제정된 퓰리처 상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이었다. 예컨대 굴든수프 사건이 터지자, 퓰리처는 500달러 포상금을 내건다. 그러자 허스트는 그 금액을 천 달러로 올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선정성과 부수 확장을 향한 허스트의 게걸스러운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는 퓰리처의 < 뉴욕 월드 > 보도국에 스파이들을 심어 놓았다. 자신의 경쟁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미리 알고 선수를 치거나 뒤통수를 때리기 위해서였다. 허스트의 또 다른 소유인 < 이브닝 저널 > 에는 "자전거 사고 전담 변호사"(52쪽)를 특별히 따로 둘 정도로, 폭주족 같은 허스트 자전거 기자단을 만들어 시내를 활보하게 하기도 했다.

퓰리처와 허스트의 선정 보도 경로는 후대의 황색 언론들이 교과서적인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이들은 단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에 불과할 뻔했던 굴든수프 사건을 신화화하는 데 톡톡한 구실을 하였다. 부수를 올리기 위해 서로를 비방하는 이전투구가 필수적이다. 한쪽에서 용의자가 밝혀질 것처럼 보도하면, 반대쪽에서는 "신원 확인이 뒤집히다"(111쪽) 식으로 찬물을 끼얹는 식이었다.

유령의 레플리프 W. 더누즈(Reflipe W. Thenuz) 대령에 관한 사망 기사를 허스트의 < 이브닝 저널 > 이 싣자, 이와 비슷한 군인에 관한 부고 기사가 < 뉴욕 월드 > 에도 실린 일이 있었다. 쉽게 말해 < 뉴욕 월드 > 가 < 이브닝 저널 > 의 기사를 훔친 셈이다. 그런데 < 이브닝 저널 > 에 실린 최초의 기사는 허스트가 퓰리처의 < 뉴욕 월드 > 를 '엿 먹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더누즈 대령은 실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령의 이름(Reflipe)과 가운데 이름 머리글자(W)를 뒤집어 읽으면 허스트가 퓰리처의 < 뉴욕 월드 > 기사 도둑질을 조롱하기 위해 숨겨 놓은 메시지, 곧 "We Pilfer the News(우리는 뉴스를 훔쳐요)"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선정 보도를 위해서는 주요 용의자들을 한 명씩 꿰차는 것도 중요하다. 퓰리처의 < 뉴욕 월드 > 는 오거스터 낵 부인을, 허스트의 < 뉴욕 저널 > 은 마틴 손을 움켜 잡았다. 부수를 늘리기 위한 이와 같은 이전투구는 점점 더욱 확대되었다. 결국 "처음에는 장난으로 치부되었던 굴든수프 사건이 이제 살인, 시체 절단, 불륜, 청부살인, 신분 위장, 시신 거래, 도박, 불법 낙태, 의료 사고까지 버무려진 시궁창이 되었다"(192쪽)고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내용들이, 선정적인 언론을 향한 날카로운 냉소와 그런 언론과 당대의 시대상을 향한 열정적인 분노가 뒤섞인 저자의 문체와 어조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서술되고 있다.

윤창중 기사 적나라한 단어들 무시로 등장... 인턴 부친에 관한 기사까지

이쯤에서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다른 무엇보다도 윤창중 사건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성추문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도 그 여파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언론사들 사이에서 선정적인 성추문 보도의 경로인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엉덩이', '노팬티', '알몸' 등의 적나라한 단어들이 무시로 등장하고, 사건을 최초로 신고한 인턴 직원의 부친에 관한 기사까지 나오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는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사건의 당사자가 대통령의 대변인이라는 중대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건 자체는 지금 '의혹'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의혹 사건에 관한 진실 규명은 믿음을 주기에는 많이 주저되지만, 두 나라의 사법당국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언론이 나서서 왈가왈부하며 사건을 부풀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또 다른 제2, 제3의 '인턴 직원'이 추악하고 선정적이며 게걸스러운 언론의 표적에 걸리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가 알랴. 이들 중 어느 누군가가 언론의 '밥'이 되어 최초의 신고 내용이나 진술과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될지를….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일부 언론은 분명히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내고, '없는' 일도 불러올 수 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모욕"(360쪽)으로 전쟁 분위기를 잡고,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361쪽)로 직접 전쟁을 선언하여 실제로 대통령의 선전포고를 이끈 다음, " < 저널 > 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361쪽)로 자신이 가져온 전쟁을 자랑하기까지 한 허스트보다야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니, 허스트를 능가할지도 모를까.

덧붙이는 글 |

< 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사건 >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 4. 19. | 404쪽 | 1만 4천 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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