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추진할 사람이 없다
[오마이뉴스 백남주 기자]
▲ 지난 3월 11일 오후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
ⓒ 청와대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개월을 넘어섰다. 하지만 주요부처 인선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는 등 국민의 기대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정권을 떠나고 있다. 출범한 지 한 달 만에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40% 대로 무너져 내렸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지지율 수준이다.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점차 외면당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경제민주화로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꿔내고 성장일변도의 정책이 아니라 복지를 확대할 것이라는 정책 방향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정권이 출범한 지금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라져버린 '경제민주화'
현재 한국경제의 핵심 화두는 한미 FTA 협정 등으로 훼손된 우리의 경제 주권을 회복하는 문제와 더불어 '경제민주화'를 들 수 있다. 한미 FTA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오히려 미국의 통상압력에 더 많은 것을 내 줄 수 있을 것)이라 차치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새로운 한국경제 구상을 위해 줄곧 강조해왔던 내용이다.
경제민주화가 제기되는 이유는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등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체제의 불안요소로 등장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고, 아무리 성장해도 재벌 대기업의 과실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명박 정권 시기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재벌의 막대한 권력을 견제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한 주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대선 시기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선거 이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는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2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국정 비전으로 하는 5대 국정 목표, 20대 국정 전략, 140개 국정 과제를 발표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공언해온 경제민주화는 5대 국정목표에서 배제되었다. 당시 인수위는 내용적으로는 충분히 반영했다고 하지만 경제 분야(6개 전략 41개 과제)의 대부분이 성장 중심의 내용이었고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은 6개 과제에 불과했다. 인수위는 경제민주화위원회(재벌개혁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이나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자는 제안 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미를 왜곡·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200쪽이 넘는 국정목표와 국정과제 해설서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가 대체하였다. 결국,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시장경제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추진될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시장질서'에 국한되는 협소한 범위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법 조항 자체를 보면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온전한 경제민주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단순히 시장질서에 국한시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애당초 할 생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자 박근혜 정부는 다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의미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이러한 기조는 박근혜 정부가 3월 28일 발표한 '2013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정부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쓰며 4대 과제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4대 과제로 경제민주화를 명시한 것과는 다르게 참고자료로 배포한 보고서에는 박근혜 정부의 54가지 과제 중 경제민주화는 44번째에 하나의 항목으로만 들어가 있을 뿐이다.
경제민주화를 이끌 주체가 없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자료사진) |
ⓒ 남소연 |
더군다나 경제부처 장관들로 기용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국민이 기대했던 경제민주화는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나마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수장이라 할 수 있는 현오석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이명박 정부의 성장주의 경제정책의 강력한 옹호자로 평가받아 온 인물이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등에 대해서는 비전을 보여준 적이 없다. 재벌들의 반발을 이겨내며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소신과 국정 철학이 필요한 데 이를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또한, 그동안 현 부총리는 민영화,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경제민주화와는 상충되는 정책들을 펴왔다. 현 부총리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정부의 한미FTA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고,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부터 그해 12월까지 '민영화의 첨병'으로 불렸던 공공기관경영평가단장을 역임하며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한 핵심 인물이다. 또한, 2009년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직을 맡으며 '영리병원 확대론'을 주장해 왔다.
청와대 내에서 경제정책을 보좌할 책임을 지고 있는 조원동 경제수석은 전형적인 관료 출신으로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에 제시했던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운다)'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매일경제, 2013.02.01). 전체 청와대 수석급 12명과 비서관 37명 가운데에도 경제민주화를 주도적으로 고민해온 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질적으로 경제민주화 정책들을 일선에서 집행할 공정거래위원회나 중소기업청장 인선 역시 마찬가지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사퇴)는 공정거래 분야가 아닌 조세법 전문가로 '김앤장' 등 대형 법무법인에 23년간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과거 이건희 회장이 세금 없이 재산을 자녀들에게 상속하기 위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신주를 인수할 권리가 부여된 채권 BW)를 헐값으로 발행한 것에 국세청이 증여세를 부과한 사건과 관련해 한 후보자는 삼성을 변호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모은 재산이 110억 원대(장관급 후보자로는 역대 최대 수준)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며 경제적 강자에 맞서 서민·중소기업 등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자리인데, 재벌들의 세금을 깎고 과징금을 줄이는 일을 하며 고액의 자산을 모아온 인물이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한만수 후보는 사퇴하긴 했지만, 이러한 인물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내세웠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의 경우는 '주식 백지신탁' 문제로 결국 사퇴하였다. 주식 백지신탁제도는 고위 공무원이 기업주식을 3000만 원 이상 보유한 경우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전권을 타인에게 위임하도록 한 제도다. 이는 기업인 출신을 고위 공직자로 영입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점검했어야 할 항목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중소기업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기존 사안도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채 인선했고, 결국 황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전체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우선시하며 신중히 인선했다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실질적으로 지운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경제민주화가 지워지면서 그 자리를 '창조경제'로 메우고 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처음에는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더니 슬며시 경제민주화와 성장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전환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월 국정목표를 발표할 당시 경제민주화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의 하위 분야로 전락해 있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구실로 경제민주화를 폐기하고 다시 기존 재벌 중심의 성장정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제위기 상황에서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한국경제의 성장과 서민들의 체감 경기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서민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한국경제 성장률 수치가 낮게 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관성이 크게 떨어져 있고, 재벌 대기업의 독점적 권력으로 인해 경제의 주축이 되어야 할 중소기업 등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도 요구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창조경제'
박근혜 정부가 내놓고 있는 것은 '창조경제'이다. '창조경제'라는 단어만을 놓고 보면 상당히 화려해 보이지만, 지금껏 창조경제는 구체적인 내용과 실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창조경제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정보통신 기술을 전 산업에 적용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창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도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과거 정권과 차별성을 보이기 어렵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역시 기존의 산업자원부를 골간으로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조직 일부를 더해 '지식경제부'라는 이름의 부처를 만들었다. '지식경제'를 강조하며 한국경제를 지식기반, 기술혁신형 경제로 바꾸어 내겠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줄곧 청년들의 창업을 강조해 오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이명박 정부 초기의 지식경제와 무엇이 다른지 명확히 하기 어렵다.
3월 28일 정부가 발표한 '2013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더라도 창조경제를 국가가 투자부담을 덜어주며 창업을 지원하는 것, 창조형 서비스 산업(소프트웨어, 영화, 게임 등) 육성을 위해 지원을 늘리는 것 정도로만 구체화 되어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구현되면 한국경제에 장밋빛 전망이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해 왔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추상적이거나 이전 정권과 큰 차별성을 보이고 있지 못해 보인다.
나아가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창조경제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창의성' 등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재정을 지원해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교육을 잘 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제구조다. 전체 경제에서 공공부문이 취약하고, 대-중소기업·자영업간의 양극화가 심각하고,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실험들이 나오기 어렵다.
한 번의 실패로 사회적 계층이 갈려버리고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현재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장하는 것은 청년층을 영세 자영업자 대열에 몰아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재정지원으로 실패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하지만,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한계가 크다. 현 한국경제 구조상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링에서 떨어질 것을 대비해 링 주변에 매트도 깔아주고 다시 링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따라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과 사회 구조를 바꾸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단지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첨단산업 부문 하나 더 찾아내겠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창조경제는 요원한 일이다. 정권 초창기 지식경제를 강조했음에도 결국은 4대강 사업, 부동산 부양론, 고환율 정책 등으로 뒷걸음질친 이명박 정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단기적인 성장과 성장동력 찾기에만 급급한 결과였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명박 정부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또 다시 꿈틀대는 부동산 부양론
경제민주화는 폐기하고 성장전략으로 내세운 '창조경제'는 아직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없다 보니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부동산 부양정책이다.
이전 인수위는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국토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에 요구한 바 있고, 부동산 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 처리를 강하게 추진하기도 했다.
▲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자료사진) |
ⓒ 유성호 |
3월 28일 발표한 '2013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 방안으로 공공부문 주택공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규제완화, 취득세·양도세 등 세부담 완화와 실수요자 주택자금 지원 확대 등의 정책을 펼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앞으로 100일간 주요추진 과제 중 부동산 종합대책을 가정 먼저 시행할 계획이다. 결국, 규제완화를 통해 부동산 거품부양을 추진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토부 장관인 서승환 교수는 주택문제를 정부개입 없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참여정부 당시 과열된 부동산시장은 투기수요가 아닌 주택의 공급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반대 등 규제 완화를 강조해 왔고 분양가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제도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기존 전망치는 3.0%)로 제시하는 등 정부의 경기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향후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들과 부양책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라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며 출범했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과 부동산 부유층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점, 박근혜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이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 등 기존의 낡은 국정철학에서 탈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 등으로 인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는 거의 폐기된 듯 보이고, '창조경제'는 구체적인 상이 없이 표류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부동산 부양책이고, 이전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사회 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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