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삼국지] 공손찬, 농성 전술에만 의지한 리더의 최후

2013. 1. 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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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공손찬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지나치게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을 뿐더러 세상 일이 다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이런 병이 생긴 것은 그가 키가 크고 인물이 매우 잘 생겼을 뿐더러 목소리도 우렁차고 미성이어서 보는 사람마다 흠모의 감정을 갖게 했기 때문이었다. 공손찬은 대단한 미남자여서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까지도 그에게 반하곤 했다. 유비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유비는 노식의 수하에서 동문수학할 때 공손찬을 만난 후 그를 추종했다.

공손찬이 출세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그의 잘난 용모 덕분이었다. 공손찬은 출신성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요서군 영지현에서 제일 가는 부호였지만, 어머니가 기생 출신의 천첩이었다. 당시 자식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되어 있었으므로 공손찬은 정상적으로는 출세할 길이 없었다. 태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나서야 겨우 군의 하급관리가 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손찬은 요서태수의 눈에 들어 그의 사위가 되었다. 문벌이 지배하는 사회 풍조로 볼 때 거의 파격적인 일이었다. 아마도 태수의 딸이 그에게 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태수는 공손찬을 키워주기 위해 노식 문하에 유학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고대에도 현대나 마찬가지로 인물이 출세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자기가 잘나서 사람들이 무조건 따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난 인물에 능력까지 뒷받침해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공손찬은 능력이 부족했다. 공손찬은 제 생각대로만 일을 처리했으며, 과거 자신의 성공경험에만 의지했다.

공손찬이 *요동속국의 *장사가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공손찬이 수십 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요새 밖을 순찰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나타난 선비족 기병 수백 명에게 포위를 당했다. 버려진 관사에 의지해 버티던 공손찬은 사졸들을 모아놓고 결의를 다졌다.

"오늘 중으로 이 포위망을 뚫지 못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다. 내가 앞장서서 돌파를 시도할 테니 귀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와 함께 싸우겠는가?"

병사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맹세했다. 결사적으로 싸워 포위를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공손찬이 이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자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공손찬은 변방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탁현 현령으로 승진했다.

공손찬의 이 경험은 후일 몇 번의 싸움을 통해 더욱 강화됐다. 유우가 십만의 대병으로 역경을 포위했을 때, 공손찬은 유우군의 방심한 틈을 노려 반격을 가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때부터 고립된 성에서 농성하다가 적이 해이해진 틈을 타 반격을 가하는 전술이 그의 주특기가 되었다. 공손찬은 창의력이 부족했으므로 늘 이 전술을 들고 나왔다. 이 전술은 그 후에도 몇 번 더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은 이 답답한 전술 때문에 패망하고 만다. 유주의 반군과 국의가 이끄는 원소군이 역경에서 공손찬을 포위했을 때에도 공손찬은 농성 전술을 다시 들고 나와 승리를 거두었다. 농성전이 해를 넘기자 군량이 떨어진 원소군과 유주반란군의 연합군 병사들이 흩어져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원소가 대대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공격에 나서자 공손찬은 다시 역경에 틀어박혔다. 공손찬은 끝까지 농성했으나 원소는 단단히 준비를 마친 후였다. 해를 넘겨가며 공격을 계속해 결국 열겹의 성으로 이루어진 역경을 함락시켰다. 최후의 순간에 공손찬은 처자식들을 다 목매어 죽인 후 누각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비참한 최후였다.

[미화된 영웅] 공손찬, 과대망상에 가까운 의심증 시달려

공손찬은 원소와의 싸움에서 연전연패한 후 역경이라는 거대한 성채를 수축하고 그곳에 틀어박혔다. 역경이 소재한 역현은 역하를 통해 발해와 연결돼 각종 물자의 수송과 운반이 용이했다.

그런데 이 역경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열겹의 성채와 열겹의 참호로 이루어졌다. 각 성채 위에는 누각과 누대를 세웠는데, 그 높이가 5~6장이나 되었다. 한 가운데에 있는 높은 누각은 높이가 열 장이나 되었다. 당시의 도량형을 기준으로 볼 때, 중앙의 누각 높이는 약 22.3m에 달하는 셈이었다. 공손찬은 이 성 안에 삼백만 석의 곡식을 쌓아 놓았다.

공손찬은 휘하의 여러 장수들에게 성벽과 누각을 구역별로 할당해 주고,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 거주하면서 각자 책임 하에 성을 방어하게 했다. 이러한 누각과 누대의 수가 천개나 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성곽과 누각을 축조하고 삼백만 석의 곡식을 쌓아놓기 위해 엄청난 물자와 인력이 동원됐다. 공손찬이 유주 백성들을 무한대로 수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술상의 이점만 생각했지 백성들의 삶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이 공손찬의 특성이었다. 역성 수축이 완료된 후 공손찬은 큰소리 쳤다.

"예전에 나는 손가락을 한 번 휘저으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소. 지금 보니 그것은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소. 힘써 농사를 지으면서 양곡을 축적하고 병사를 휴식하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소. 병법에 의하면 누각이 백 개면 공격이 불가능하다 했소. 지금 우리는 누각과 망루가 천개나 되오. 이 곡식들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천하의 대사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 거대한 성곽도 공손찬의 패망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원소군이 진격해 역경을 포위하자 공손찬의 별장들이 그를 배반하고 속속들이 원소군에 항복했기 때문이다. 공손찬은 처첩들 이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공손찬은 자신이 거주하는 중앙의 높은 누각에 철문을 만들어 달아 안팎의 출입을 차단하고, 그 안에는 가족 이외에는 비첩과 여종들만 거주하게 했다. 밖에서 보고할 일이 있으면 성문 밖에 달아놓은 바구니에 문서를 가져다 놓게 한 후, 성중의 비첩들이 물 길듯이 끌어올렸다. 공손찬은 또 처첩과 여종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법을 연습시키고는 지시할 일이 있으면 이들에게 고함을 질러 명을 전달하게 했는데, 그 소리가 수백 보까지 들렸다 한다.

[거짓말 벗겨보기] 조자룡, 공손찬 구해준 적 없다

공손찬이 계교싸움에서 원소군의 선봉장 국의에게 대패했을 때, 조자룡이 나타나 그를 구해준다. 이 싸움에서 국의는 조자룡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의는 원소군의 맹장으로 원소의 하북 제패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자신의 공적을 과시해 교만하게 행동했으므로 원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풀이]

*요동속국=한나라는 군국제가 기본 행정단위다. 속국은 변방 이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단위.

*장사=군 태수급의 고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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