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LOUNGE]LG그룹 첫 고졸 신화 조성진 LG전자 사장..36년 세탁기 외길, 세계 1위 주역

2012. 12. 10. 1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승진한 것보다 세탁기 부문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게 더 기쁩니다. 다른 부서로 발령 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LG전자 인사에서 상무를 단 지 2년 만인 2006년에 다시 부사장으로 승진한 조성진 씨(56)가 내놓은 소회였다. 당시 고속 승진 자체보다 조 사장의 말이 사내 안팎에서 화제를 모을 만큼 그의 세탁기 사랑은 주목받았다.

그가 올해 인사에선 HA(Home Appli ance)사업본부장(사장)이 됐다. LG전자 임원 인사의 단연 하이라이트다. 현재 LG전자의 세탁기는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초대용량 고효율 세탁기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대 가전 시장인 미국에서 5년 연속 드럼세탁기 시장 1위를 달성한 만큼, 성과에 따른 당연한 승진이지만 유독 조 사장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조 사장은 LG전자 창업 이후 54년 만의 첫 고졸 출신 사장이다.

1976년 서울 용산공업고를 졸업한 그는 첫 직장으로 LG전자(당시 금성사)를 택했다. 부서는 세탁기설계실. 당시만 해도 국내 세탁기 보급률은 1%에 미치지 못했다. 이름만 설계 업무였지 실상은 일본 세탁기를 베끼는 게 전부였다.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 자체 기술도 없었기 때문. 같은 이유로 세탁기 설계 쪽 업무를 맡게 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고졸 사원들은 아예 진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 사장은 다른 선택을 했다. 세탁기 분야에서 기술 독립을 이뤄보겠다고 결심한 것.

그는 "오기가 났다. 세탁기에 승부를 걸어서 일본을 꼭 앞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후 36년간 세탁기 한 우물만 팠다.

국내 최초 대용량 드럼세탁기 개발

이후 조 사장은 단 한 번의 외도도 없이 세탁기에 빠져 살았다. 1995년 세탁기설계실장에 오른 조 사장은 그동안 꿈꾸던 기술 독립에 나섰다. 공장에서 살다시피 연구에 매달려 드디어 1998년 세탁조에 직접 연결된 모터로 작동되는 '다이렉트드라이브(DD)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세계 1위 LG전자 세탁기의 초석이 이때 다져졌다는 평가다.

이전까지는 세탁통과 모터를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해 사용하다 보니 가격이 비싸고 세탁기의 진동과 소음도 심했다. 하지만 DD 모터가 도입되면서 원가가 60% 이상 절감됐고 진동과 소음도 획기적으로 개선돼 세탁기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조 사장이 얻은 별명은 '일 중독자'다.

숱한 일화도 만들었다.

평일은 물론 휴일에도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기술 개발과 생산공정 개선 연구에 몰두해 온 일은 지금도 사내에서 회자된다. 공장 2층에 침대를 놓고 주방을 만들어, 직원들과 합숙에 들어간 일도 유명하다.

일본을 앞서기 위한 조 사장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을 150여차례 방문하며 앞선 기술과 노하우를 배워올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어를 독학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표준어가 아니라, 전자회사가 몰려 있던 오사카 지역의 사투리를 익혔다. 덕분에 친하게 지내던 일본 회사 관계자와의 친분을 업고 업체가 공식적으로는 공개하지 않던 생산라인을 몰래 살펴볼 수 있었다.

획기적인 모터를 개발한 이후 조 사장의 눈길은 미국, 유럽 등에서 사용하던 드럼세탁기로 옮겨 갔다.

조 사장은 "세탁기 시장이 드럼세탁기로 갈 것으로 예상했다. 드럼형의 약점이던 작은 크기를 극복하는 데 DD 모터가 필수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IMF 경제위기 시절이라 비싼 드럼형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지만, 팀원들과 몰래 숨어서 연구를 했다. 결국 조 부사장팀은 10㎏ 이상의 고용량 세탁기를 기존의 7~8㎏대의 크기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2002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용량 드럼세탁기를 만들었다. 이는 지금의 '트롬 신화'로 이어졌다.

트롬,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켜

2005년에는 세계 최초로 듀얼분사 스팀드럼세탁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트롬 드럼세탁기는 북미를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히트하며 LG 가전사업의 중추로 떠올랐다. 덕분에 2006년 부사장으로 올라섰다. 승진 인사가 있은 뒤 곧바로 대한민국 10대 기술상을, 이듬해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현재 LG 트롬 세탁기는 미국 주요 유통업체 드럼세탁기 분야 시장점유율에서 20%가 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가 고졸 신입사원 시절 마음먹었던 '탈(脫)일본'을 넘어 더 큰 꿈을 이룬 셈이다.

2001년 LG전자 최초의 고졸 상무로 승진했을 당시, 조 사장은 " '이 직책이 회사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세탁기 시장 1위 달성에 큰 책임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상무에서 부사장을 거쳐 이제 LG전자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HA사업본부 사장이 됐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백색가전 상품 위주인 LG전자의 HA사업본부는 글로벌 가전업체들이 적자를 기록하는 등 불황 여파에도 5%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세탁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뿐이다"라고 강조하던 조 사장이 그동안의 뚝심을 바탕으로 고졸 사장의 새로운 신화를 써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LG그룹 인사 들여다보니

홍보라인 약진 눈에 띄네

LG그룹의 올해 정기 임원인사 키워드는 '성과주의'였다.

처음으로 고졸 출신 사업본부장(사장)을 배출했는가 하면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중국법인장을 약 1년 5개월 만에 교체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동안 엄격한 성과주의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구본무 LG 회장의 의중이 그대로 드러났다.

실제 LG전자의 경우 실적이 좋은 가전사업부 인사들이 줄줄이 승진했다. HA사업본부를 이끌었던 신문범 부사장은 사장으로, 조성진 세탁기사업부장은 HA사업본부장(사장), 박영일 냉장고사업부장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LG디스플레이 사장으로 승진한 한상범 부사장은 3D FPR(필름타입 패턴 편광) 기술로 세계 시장점유율 1등을 달성하고 3분기에 세계 경기 침체에도 흑자 전환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LG생활건강은 LG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사업본부장인 이정애 생활용품사업본부장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이정애 전무는 여성 특유의 통찰력과 감각으로 섬유유연제 시장 1등을 확보하고 친환경 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전무로 발탁됐다.

LG화학에선 30대 젊은 임원이 탄생했다. 김성현 LG화학 부장은 편광판 세계 1등 달성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신임 상무로 발탁됐다.

세대교체 또한 LG그룹 인사의 특징.

구본무 회장 최측근이었던 강유식 ㈜LG 부회장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강 부회장의 빈자리는 젊은 인사인 조준호 LG 사장이 맡게 됐다. 김반석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기존 대표이사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박진수 LG화학 사장이 법인 CEO를 겸하게 됐다.

홍보라인 약진도 눈에 띈다. 유원 ㈜LG 상무, 전명우 LG전자 상무, 조갑호 LG화학 상무 등 홍보 3인방이 나란히 전무로 승진했다. 평소 '소통'을 강조한 구본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유원 전무는 1987년 럭키 기조실로 입사, 2006년 LG경영개발원 홍보담당 상무로 승진한 이후 LG텔레콤 홍보담당 상무와 ㈜LG 홍보담당 상무를 오가며 LG의 '입'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전명우 전무는 20여년간 LG전자의 '소통창구' 역할을 해온 인물. 조갑호 전무는 1984년 럭키에 입사, 지난 2005년부터 LG화학 홍보·업무담당 상무로 승진한 뒤 이번에 대외협력담당 전무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로 LG그룹 홍보라인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6호(12.12.12~12.18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