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사탕>, 누구에게나 털어내면 좋을 비밀이 있다

2012. 10. 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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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상훈 기자]

< 청포도 사탕 > 스틸.

ⓒ 인벤트스톤

< 청포도사탕: 17년 전의 약속 > (이하 < 청포도사탕 > )은 재밌는 영화다. 마치 청포도 사탕이 그렇듯이 너무 맛있지도, 너무 맛없지도 않다. 현실과 비현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잘 만들어졌다. 초반에는 < 폭풍의 언덕 > 같기도 했고, 극이 전개되면서 예전에 방영했던 TV 단막극 < 딸기 아이스크림 > 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 청포도사탕 > 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 청포도사탕 > 은 '비밀' '죄책감' '기억', 세 가지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세 여인이 나오는데, 모두 다 이 키워드에 사로잡힌다.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적 드라마답게 중반 이후에 실마리가 풀리는데, 새롭지는 않지만 그런 과정에서 몇 가지 장점이 있는 영화다.

선주(박진희 분)는 은행에 다니는 30대 초반 여성이다. 출판사에 다니는 애인 지훈(최원영 분)과 동거 중이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다가, 소설가이자 중학교 동창인 소라(박지윤 분)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삶은 비범하게 변해간다.

< 청포도사탕 > 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대사가 감성적이고 대부분 장면들이 이야기의 전개, 등장인물의 변화 과정과 잘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드라마 같은데도 계속해서 관객이 흥미를 갖게 한다.

영화에서 지훈의 회사 선배는 "여자는 알 수 없는 존재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취한 극적 재미와도 통하는 대사다. 여자를 뭔가 비밀스러운 존재로 둠으로써 관객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여자의 비밀스러움이 빛을 발한 '미스터리 스릴러적 드라마'

< 청포도 사탕 > 스틸.

ⓒ 인벤트스톤

< 청포도사탕 > 은 여자라는 존재의 속성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적 느낌을 낸 영화다. 그간 많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본 느낌이지만 깔끔한 각본과 연출, 적절하게 쓰인 음악과 배우의 명연기가 영화를 좋게 만들었다. 보고 나면 '괜찮다'는 느낌이 들게 말이다.

관객들도 대체로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보통 이런 드라마 같은 영화는 잘못 만들면 등장인물끼리만 공감하고 끝날 수 있다. 그러나 < 청포도사탕 > 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게 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일단 등장인물의 앙상블이 좋았기 때문이다. 박진희는 정말 연기를 잘했다. 평범한 30대 한국 여성이 어떻게 바뀌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김정난은 대단한 몰입을 보여주었고, 박지윤은 두 여배우 사이에서 자기 캐릭터를 추구하려 노력했다.

특히 두 장면이 눈여겨 볼 만하다. 정은(김정난 분)이 자신의 집에서 비밀을 꺼내놓는 장면과 정은의 집 앞에서 선주와 지훈이 다투는 장면이다. 관객은 이 두 장면에서 박진희와 김정난의 가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 청포도사탕 > 이 괜찮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여자의 비밀스러움'이라는 형이상학적 소재를 각본에 잘 녹여냈고, 연출로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희정 감독은 여성으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았고, 영화 전체를 무리 없이 이끌었다.

음악과 편집도 큰 역할을 했다. 음악은 크게 연주곡과 독창곡으로 나뉘었는데 초반 바닷가 절벽 장면에는 두 여주인공의 모습이 생소하거나 어색하지 않도록 절제된 연주곡이 쓰였다. 이 잔잔한 연주곡은 관객에 영화에 몰입하도록 도왔다. 어린 선주가 달리는 장면에 쓰인 독창곡 역시 훌륭했다. 편집도 깔끔했다. 최대한 영화의 스타일에 부합하는 편집이었기에 몇 번 지루하게 느껴져도 탈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여성 감독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해서 남성 관객이 공감 못 하는 영화는 아니다. 과거 < 여고괴담 > 이 그랬듯 < 청포도사탕 > 역시 여성 고유의 정서를 다루고 있으나, 과거 기억에 대한 죄책감이나 해결되지 않은 인간관계의 문제적 조각을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남성들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청포도 맛 알사탕처럼 볼 때도, 되새길 때도 재밌다.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비밀 정원'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 청포도사탕 > 을 보고 나서 오랫동안 털지 못한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 버린다면 삶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영화 속 세 여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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