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뿌리 깊은 거목' 90%가 쓰러졌다

#국내 건설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공사를 많이 맡았던 삼환기업이 23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1962년), 경부고속도로(1960년대), 국립극장(1973년) 등이 이 회사의 작품이다. 삼환기업은 1946년 설립돼 1960~70년대 10대 건설사에 속했고 1973년 사우디아리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해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중동에 진출했었다.
#1990년 11월 1만 가구가량의 일산·분당 신도시 첫 동시분양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주택건설업체 14곳이 참여했다. 공영토건·임광토건·대림산업·롯데건설·삼익건설·서안건설·성지건설·청구·금강종합건설·동신주택개발·라이프주택·우방주택·코오롱건설·선경건설이다. 이들 중 지금도 주택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업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당시 우방주택의 직원으로 동시분양에 참여했던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1990년대에 우방·청구 등의 인기는 요즘 대형 건설업체들의 브랜드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국내 건설업의 초석을 다졌던 '1세대 건설사'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한 업체가 많다. 특히 금융위기로 촉발된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업계 '거목'들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50년 전인 1962년 30대 건설사에 속했던 업체들 가운데 현대건설·대림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개는 사업을 접었고 3곳의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거나 법정관리를 받는 기업이 다섯 군데다. 건설면허 1~30호 업체 가운데 현대건설·롯데건설(옛 평화건업)·코오롱글로벌(옛 코오롱건설) 정도만 제대로 살아남았다. 건설면허 3호인 풍림건설 등 23곳이 사라졌고 4호인 신성건설 등 4곳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건설면허 1호로 1970년대 시공능력 3위까지 올랐던 삼부토건은 지난해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가 철회했지만 사업이 여의치 않다. 올해 1분기 영업활동으로 들어온 현금(140억원)을 대부분(138억원) 이자를 내는 데 썼다. 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담은 계속 커지고 사업은 위축되고 있다.
국내 건설면허 2호인 경남기업도 신통치 않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지난해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PF대출이 쉽지 않아 신규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공부문 매출도 정부 발주 감소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 5대 건설사에 포함됐던 극동건설은 경영악화로 2007년 웅진그룹에 인수됐으나 건설경기 침체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58년 창립된 벽산건설은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화되는 듯하다가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들이 흔들리는 데는 외환(外患)에 따른 건설환경 변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외환·금융 위기로 경제가 힘들어지자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큰 돈이 들어가는 건설·주택 사업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나빠져 매출 대비 수익을 나타내는 건설사 매출액영업이익률이 2010년 5.0%에서 지난해 4.1%로 낮아졌다. 이는 100억원 매출을 올렸다면 4억원 정도의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PF 대출로 1년에 수백억원씩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건설사들로선 유동성 위기가 거의 일상화된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최윤호 전무는 "건설 전문 중견기업은 대부분 매출액이 연 5000억원 미만으로 5000억원을 벌어봤자 수익이 200억원밖에 나지 않는다"며 "대부분 PF 등 대출이 많아 번 돈보다 많은 돈을 이자로 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사업구조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삼환기업·임광토건 등은 주로 정부 발주 공사만 바라보며 사업을 해왔는데 최근 정부 공사가 줄어들었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정부 발주 토목사업 비중이 전체 사업의 60% 이상이어서 공공 발주 물량 감소는 경영에 치명타가 됐다"고 전했다. 풍림산업·벽산건설 등은 전체 사업의 80% 이상을 주택에 '올인'했다.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 침체로 미분양이 늘면서 자연히 어려움을 겪게 됐다.
우방은 2005년 C & 그룹에 인수되면서 오너의 방만한 경영 때문에 무너진 케이스다. 아남건설과 남부정류장·C & 백화점 등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부실을 키우다 결국 법정관리까지 받았다.
한때 재계 서열 30위권에 올랐던 청구도 차입금에 기댄 무분별한 '선단식 경영'으로 쓰러졌다. 1973년 창업해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통해 1990년대까지 백화점·방송국 등 15개 계열사를 거느릴 정도로 사세를 확장했지만 1997년 자금난으로 무너졌다.
1950년대 창업해 1970년대 도급순위 10위권에 올라 전성기를 누린 남광토건과 진흥기업은 무분별한 인수합병과 경영전략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영사정은 악화됐고 2008년 1월과 2008년 3월 각각 대한전선과 효성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 인수돼 되살아날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 이렇다 할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남광토건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별다른 전략과 의지 없이 인수했다가 지원도 하지 않고 방치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고 부실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을 상대로 금융권이 기업의 잠재력을 보지 않고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려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벽산건설의 경우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모두 2300여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나 대부분 채권은행 PF상환에 쓰였다. 직원들이 6개월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하는 고통을 받으며 노력했지만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을 하기가 사실상 어려워 회사 정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세대 건설업체들의 몰락은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다. 주택협회 김동수 정책실장은 "오랫동안 명성을 쌓아온 건설업체들의 노하우는 우리 건설산업의 자산인데 잠재력이 있는 건설업체의 자금난에 대해 모든 책임을 건설사에 떠넘기는 건 잘못"이라며 "금융권과 정부가 실질적으로 기업을 살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론 건설사들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영덕 연구위원은 "건설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과거와 같이 빠른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어떤 건설사도 안전하지 못한 시대이므로 원가절감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장원·박일한 기자 < jumpcutjoongang.co.kr >
안장원.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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