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 밑창 교체,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2012. 7. 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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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윤기 기자]

지난 주말(14일) 아이들과 경남 창원 무학산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과 등산을 다니고 있는데, 잔뜩 흐린 날씨에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정상에 오르지 않고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마산여중 입구에서 출발하여 서원곡-완월폭포-만날재를 거쳐 밤밭고개까지 10km를 좀 넘게 걸었는데, 오랜만에 걸은 탓인지, 무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전에 없이 힘든 걸음이었습니다.

둘레길 걷기를 마치고 함께 일하는 후배들과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곁에 있는 동료 한 명이 "부장님 등산화 밑창이 떨어졌다"며 알려주는 겁니다. 발을 들어 확인해보니 등산화 밑창이 터져버렸더군요. 육안으로 보기에 그냥 밑창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터져버렸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작은 폭발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밑창이 '팍' 터졌더라구요.

등산화도 피로파괴?

천안함 사고 후에 많이 들었던 '피로파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등산화가 오래 되어 밑창 고무가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터져버렸는데, 천안함도 오래된 배가 어느 날 갑자기 폭삭 내려앉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10년 넘게 신은 등산화도 피로가 누적되어 한 번에 팍 터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대략 따져봐도 10년은 훨씬 더 신은 등산화이니 밑창이 망가질 때도 되긴 하였습니다만, 가죽이 워낙 멀쩡해서 앞으로도 몇 년은 끄떡없이 신을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지리산 같은 높은 산을 오르다 신발 밑창이 터져버렸다면 굉장히 난감했을 텐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지난가을에 아들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가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중간에 돌아내려온 일이 있었지요).

밑창 터진 등산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여러 '페친'들이 신발 한 켤레 바꾸라고 핀잔을 주더군요. 저 같은 사람 때문에 불황이 오고 경기가 안 좋다고 놀리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새로 등산화 한 켤레 사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 등산화를 고르기 위하여 최근 한국판 컨슈머리포트에서 발표한 등산화 품질평가 자료를 찾아보았지요(한국판 컨슈머리포터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평가가 있는데 오늘은 그냥 넘어가구요).

품질 평가 자료를 찾아 읽다보니 맨 끝에 등산화 밑창 교체 비용도 나와있더군요. 제가 신던 등산화는 2만5000원~3만5000원이면 밑창 교체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는 겁니다.

밑창이 터져버린 등산화

ⓒ 이윤기

등산화 밑창 교체,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지요. 가죽이 너무 멀쩡하니 일단 밑창을 교환해서 신을 수 있으면 그냥 몇 년 더 신는 것으로. 사실 새 신을 사고 싶은 마음과 밑창을 바꿔서 더 신자는 마음이 갈등을 많이 했답니다.

이튿날 집 근처 백화점에 있는 등산화 매장에 갔습니다. 일하시는 분에게 밑창을 교환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더군요.

"고객님 등산화 밑창 교환 비용은 4만 원입니다. 카드는 안 됩니다."

헉! 생각보다 교체비용이 비쌉니다, 컨슈머리포트에는 2만5000원~3만5000원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매장 가격표에는 3가지 밑창 종류 모두 4만 원이었습니다.

"고객님 등산화는 밑창을 교환하면 바닥을 다 뜯어내기 때문에 방수가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밑창을 교환하게 되면 새로 본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가죽 부분에 흔적이 좀 남을 수도 있습니다. 새 것일 때와는 좀 다릅니다."

아, 순간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4만 원 주고 밑창을 바꾸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방수가 안 된다는 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본드 자국 좀 나는 것도 어차피 흙먼지 묻으면 그만이다 싶었는데, 방수가 안 된다는 것은 딱 마음에 걸리더군요.

마음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때 일하시는 분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고객님 수선 맡기시면 공장까지 갔다 와야 되기 때문에 2~3주 정도 걸립니다."

세상에 이월상품으로 비슷한 품질의 새 신발 사면 13~14만 원이면 살 수 있는데, 밑창 4만 원, 방수도 안 되고, 본드 자국도 남고 거기다 2~3주나 기다려야 하고. 제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매장 직원분이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고객님 일단 4만원 내고 수선하셔서 당분간 근교 산행에 신으시고 나중에 이월상품 나오면 저렴한 가격으로 새 것 하나 구입하시는 쪽으로 권해드립니다."

어라, 이건 꿩도 팔고 알도 팔겠다는 상술? 이건 등산화 밑창을 갈아넣으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짧은 순간 고민하다가 현금으로 4만 원 결제하고 일단 수선을 맡겼습니다.

"새 것 하나 구입하시는 쪽으로 권해드립니다"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하여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여러 사람이 '그럼 수리하지 말고 새 걸로 사라'고 권하더군요. 수리를 맡겨놓고 후회하던 저의 고민을 정리해주더군요. 백화점 매장에 전화해서 수선을 취소하라고 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월상품을 골라 새 신을 샀습니다.

가죽이 너무 멀쩡해서 고쳐서 신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10년 넘게 신었으니 새 신발을 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수선비 4만 원에, 방수도 안 되고, 본드 자국도 남고, 2~3주가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새로 샀지 뭡니까.

이런 걸 보면 사람이 물질에 대한 욕망을 참 끊기가 어렵습니다. 4만 원 주고 고치느니 13~14만 원 주고 새 것 사는 것이 낫겠다 하는 계산을 하니 말입니다. 그냥 단순 계산으로는 14만 원 주고 새것 사는 것보다 4만 원 주고 고치는 것이 10만 원 이득인데도, 4만 원 주고 고치느니 14만 원 주고 새 것으로 사는 것이 이득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어쩐답니까?

컨슈머리포트에 등산화 밑창을 교환 비용만 나오고 밑창을 교환하면 방수 안 되고, 본드 자국도 남고, 고치는 데 2~3주씩 걸린다는 정보는 없었던 것은 큰 아쉬움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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