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하우스푸어 리포트]<下> 하우스푸어서 렌트푸어로
[동아일보]
경기 용인시 상현동 D아파트는 2007년 분양 당시 경쟁률이 20.5 대 1까지 올라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이 아파트는 한때 은퇴자들의 유망한 노후단지로 꼽혔지만 지금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하우스푸어가 늘어나는 곳이 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서울 송파구 신천동 C아파트 인근 상가에서 분식집을 하는 김모 씨(64)의 소원은 돈을 벌어 C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다. 그는 84m²짜리 C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만 인근 풍납동에 있는 20년도 더 된 60m²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2008년 9월 C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3억5000만 원을 주택담보대출로 마련했지만 그래도 돈이 모자랐다. 결국 2억2000만 원에 C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자신은 1억5000만 원에 풍납동 아파트로 전세를 들어가야 했다.
김 씨는 2년 뒤 전세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C아파트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역시 형편이 안 됐다. 그가 돌려받을 아파트 전세금과 내줘야 될 전세금 차액인 7000만 원을 구할 도리가 없었다. 김 씨는 "언제 돈을 벌어서 내 집에서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분석한 국내의 대표적인 '하우스푸어(House Poor)' 아파트 467채의 집주인 중 264명(56.5%)은 김 씨처럼 본인이 소유한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 아파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와 서초구 반포동 B아파트, 신천동 C아파트, 경기 용인 수지구 상현동 심곡마을 D아파트이다.
○ 어쩔 수 없는 '1가구 2주택자들'
A∼D아파트 소유주 중 69명은 별도로 소유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살지 않는 264명 중 주소가 확인된 220명이 현재 거주하는 집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한 결과이다. 본인 소유 아파트를 전(월)세로 임대한 사람 10명 중 3명 정도는 집을 2채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1가구 2주택자' 69명 중에는 D아파트 소유주가 42명(60%)으로 가장 많았고 이 중 26명은 용인에 별도의 아파트를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D아파트 주민인 김모 씨는 "원래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던 사람이 많았지만 용인지역 아파트 거래가 끊기고 가격이 급락하면서 원래 아파트를 팔지 못해 '비자발적 1가구 2주택자'가 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220명 중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는 세를 주고 다른 집을 임차해 살고 있는 151명의 주택 형태를 분석한 결과 아파트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단독주택에 11명, 다세대·다가구에 9명, 상가주택에 5명이 사는 등 비(非)아파트 거주자가 26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151명 중 57명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의 크기가 원래 소유한 집보다 작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전문가인 봉준호 닥스플랜 대표는 "전 재산을 털어서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샀지만 형편이 안 돼 들어가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다가구 등으로 옮겨 살거나 집 크기를 줄인 이들의 구체적인 현실이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 하우스푸어에서 '렌트푸어'로
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전세로 옮기는 사례도 확인됐다. 하우스푸어에서 '렌트푸어(Rent Poor)'로 주저앉는 이들이다.
C아파트 144m²에 살던 김모 씨(63)는 재건축 추가부담금을 내려고 6억여 원을 대출받았다. 김 씨는 한 달에 250만 원 이상 나가는 이자 때문에 올해 6월 이 아파트를 6억5000만 원에 전세를 주고 경기 하남시 빌라를 2억5000만 원에 전세로 얻었다. 남은 돈 4억 원으로 대출금을 갚았지만 아직도 2억 원이나 빚이 남아 한 달에 80여만 원을 이자로 내고 있다. 그는 "아예 집을 팔까도 생각했지만 한때 20억 원에도 거래됐던 것을 생각하면 억울해서 지금 시세로는 도저히 팔 수 없다"고 말했다. C아파트 144m²형은 최근 11억 원 선에서 거래된다.
C아파트 상가의 한 중개업자는 "소득이 없는 60대 이상 집주인 중에서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전세를 주고 인근 빌라나 작은 아파트로 전세를 가는 사람이 제법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집은 한 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데다 한창때에 비교하면 중형은 1억∼2억 원, 대형은 5억 원 이상 떨어져 '본전' 생각 때문인지 팔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무리해서 빚을 낸 소유주 중에서는 곧 렌트푸어 신세가 될 처지에 놓인 이들도 눈에 띄었다.
5급 공무원 출신인 박모 씨(64)는 평생 받은 월급을 모아 C아파트 84m²를 샀다. 새 아파트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지만 집을 살 때 보험사에서 대출받은 돈이 문제였다. 대출금 1억5400만 원에 대한 이자가 매달 70만 원 넘게 나와 김 씨는 3월부터 서울 강남의 한 빌딩에서 야간경비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박 씨는 C아파트를 전세 주고 좀 싼 곳으로 세 들어 갈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내가 "30대 초반인 아들과 딸이 결혼할 때까지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반대해 당장 이사하지 못할 뿐이다. 그는 "야간경비를 같이 서는 동료들한테 내가 공무원 출신이고 잠실에 84m² 아파트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믿지 않는다"며 "내가 돈 때문에 야간경비를 서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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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평화 인턴기자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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