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조심해, 자전거에 똥 쌀라"

2012. 6. 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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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성규 기자]

5월 21일 월

goddard school in neshanic hillsborough - princeton Junction Amtrak station

17.9 mile ≒ 28.8 km.

필라델피아 근처 레빗 타운(revitt town)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힐스보로우 타운십(hillsborough township)에 도착한 어제. 집조차 드문드문한 시골엔 모텔조차 없었다. 불 켜진 집 한 채가 눈에 띈다. 널찍한 풀밭을 가진 2층짜리 목조 건물. 영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이 연상된다.

촛불을 밝히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즐기는 중이었다. 지친 방랑객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든다.

"Excuse me!"

대답이 없다. 뒤쪽 출입문으로 돌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내 또래의 청년이 나왔다. 자전거 여행자인데 앞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 얼마간의 정적 후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등장. 어머니들의 마음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다. 흔쾌히 수락하더니 아들을 시켜 아스파라거스, 버섯, 치킨이 담긴 쟁반을 내온다.

무한정이다 싶을 정도로 풀밭이 그득한 시골에서 굳이 가정집 근처로 캠핑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의지할 데 없는 여행자 입장에서 가정집을 끼고 위치 선정을 해야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틀째 야외 취침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전날 부러졌던 폴대를 고민하다 호신용으로 준비한 쌍절곤이 떠올랐다. 체인과 쌍절곤을 잇는 철심을 한쪽 절에서 분리한다. 쌍절곤 속 원통형 구멍은 폴대의 직경보다 약간 넓었다. 부러진 부분을 쌍절곤 중간쯤 오도록 밀어넣고 텐트를 일으켜 세워보았다. 원통 안에서 서로 접착된 효과를 가져와 급조한 아이디어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

후두둑 비가 온다. 새벽 5시쯤. 소나기인줄 알았던 비는 갈수록 거세진다. 미 동부 연안에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소식.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워싱턴, 리치몬드의 기상 상황.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뇌우'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다. 리치몬드 서쪽 지역 찰스톤은 수요일부터 '흐림'으로 돌아서며 렉싱턴은 '구름 조금'으로 바뀐다.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 비 내리는 도로에서 라이딩은 무리다. 풀라스키 스카이웨이(Pulaski skyway)를 건넌 나에게 용기와 만용은 다르다며 따끔한 일침을 줬던 미국인 아저씨의 말을 상기한다. 'silly thing(멍청한 짓)'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근처 식당에서 일하는 메라 스피넬리(mara spinelli) 아주머니가 적절한 조언을 준다. 가까운 프린스턴 정션 역(princeton junction station)에서 기차를 타라. 암트락(Amtrak; 미국 철도)을 타고 버지니아 리치몬드 역까지 갈 수 있다. 여기서 역까지는 18마일. 저녁 전에 충분히 도착할 거리.

여전히 현실과 이론은 다르다. 10마일마다 A4 용지를 한 장씩 할애해가며 작성한 지도.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로는 혼란스럽다. 공사 중이라 차단된 길이 나온다. 밀스톤 강변을 따라 남하하다가 북으로 되돌아가는 고생도 더해진다.

하나의 그림에 불과한 지도가 이래저래 사람을 잡는다. 물어 물어 프린스턴 정션 역에 도착하니 암트랙엔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는 소식. 로컬 트래인을 이용할 수 밖에. 여기서 트렌톤(Trenton)까지. 트렌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는 셉타(Septa)로 환승.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를 마감하기로 한다. 근처 하야트 호텔은 자그마치 209달러의 객실료를 요구. 따뜻한 목욕은 간절하지만 3일째 노숙을 강행했다. 프린스톤은 인정이 약한지 가정집마다 냉담한 거절만 날아든다. 인가에서 멀지 않은 공터. 빗방울이 내려와 몽글몽글 맺힌 풀밭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젖은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와 춥다. 기대했던 논스톱 기차는 수포로 돌아가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다. 미국에 온 이래 가장 힘든 날이다.

2012.5.22 화

Princeton Junction Amtrak station - Richmond staples Mill rd station.

291 mile ≒ 468 km

말 그대로 축축한 습지에서 긴 밤을 보냈다. 감기에 걸릴 듯 몸이 오슬오슬하다. 급하게 목에다 스카프를 갖다 댄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출발이 가장 빠르다.

▲ 프린스턴 정션 스테이션(princeton junction station)

출근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

ⓒ 최성규

프린스턴 정션 역에서 필라델피아까지 가는 기차는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 해밀턴(Hamilton)역을 지나 트렌톤(Trenton)에 도착하면 SEPTA 열차로 갈아타고 필라델피아까지 간다. 지나가는 바이크 라이더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자전거를 어떻게 운반할지가 주 관심사였던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리치몬드까지 이동방법을 물었다. 필라델피아에서 20마일 떨어진 통근열차 스테이션을 이용하면 워싱턴 DC까지 갈 수 있다는 대답. 서울과 수도권을 이어주는 광역전철 같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용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는 답변.

"결론은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거지."

제길. 괜히 물어봤네. 리치몬드까지 한 번에 가지 못하면 일정이 틀어진다. 우선 기차에 오르고 본다. 좌우 페니어백을 모두 떼어내고 구석 자전거 칸으로 갔다. 한 할머니가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은퇴하고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앞으로 자전거를 갖고 다니겠다는 거다. 승무원은 붐비지 않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자전거 탑승이 가능하고 퇴근시간이 끝나는 오후 7시부터 다시 가능해진다는 친절한 조언을 해준다.

필라델피아에 도착이다. 3개의 역 중 암트락(Amtrak)이 운행되는 '30th street station'. 매표소 근처에서 짐 카운터를 볼 수 있다. 'checked baggage'라고 해서 짐을 따로 실어주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역이기 때문. 조심스레 자전거에 대해 물었다.

"자전거는 박스에 넣어서 보내면 돼요. 핸들은 옆으로 젖히고 페달은 빼고. 알아들었죠?"

다행이다. 그렇게라도 가는 게 어딘지. 구입한 자전거 박스가 예상 외로 크다. 집 근처 자전거 숍에서 봤던 상자는 가로 20 세로 72 너비 134의 크기로 앞바퀴와 페달, 안장을 떼고 핸들바를 옆으로 젖혀야 했다. 게다가 페니어 백을 부착하는 프론트 랙과 리어 랙까지 떼려면 이만저만한 수고가 아니다. 여기 상자는 핸들바만 옆으로 돌리고 페달만 떼면 쏙 들어간다. 예상보다 시간이 단축되었다.

▲ 자전거 박스

생각보다 자전거 박스가 커서 포장이 수월하였다.

ⓒ 최성규

필라델피아에서 리치몬드까지 가는 노선은 애틀란틱 코스트 서비스(Atlantic coast service)로 뉴욕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까지 미 동부 대서양 연안을 쭉 훑는다. 뉴욕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실버스타 호는 다음날 오후 6시 5분에 마이애미로 승객들을 실어 나른다. 이걸 보면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보다 짧다는 뉴저지주-플로리다 노선도 짧은 거리는 아니다.

피드몬트(Piedmont) 열차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비포장 자전거를 적재할 수 있는 바이크 랙을 갖춘 유일한 열차지만 아쉽게도 노스캐롤라이나 롤리(raleigh)에서 샬로트(charlotte)까지만 운행한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고요히 달리는 열차. 옆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을 바라보니 묘하다. 자전거를 주눅들게 만들던 거리의 무법자들. 잔뜩 움츠린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소음심경의 소부혈을 손가락으로 자극한다. 화(火)의 속성을 세 개나 가지고 있어 천부혈에 속하는 강력한 혈자리다. 도착까지는 앞으로 4시간 반. 스르르 잠이 쏟아진다.

2012. 5. 23

richmond staples mill station, VA - ashland hampton hotel, VA

12.3 mile ≒ 19.7 km

버지니아에서 본격적인 시작이다. 리치몬드 스테이플 밀 로드(Staples mill Road)에서 시작하여 애시랜드(Ashland)의 애시케이크 로드(Ashcake Road)로 가야 한다. 거기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코스와 만나게 된다. 화창한 날씨 덕에 젖었던 가방과 옷가지들이 서서히 말라간다.

▲ 리치몬드 스테이플스 밀 로드 스테이션

드디어 버지니아에 입성했다.

ⓒ 최성규

차량이 드문 한적한 도로에서 라이더들이 종종 눈에 띈다. 동지라는 암묵적인 유대감이 저절로 손을 치켜들게 만든다. 중간에 할아버지 라이더가 따라 붙는다. 5년 전부터 자전거를 탔다는 그의 이름은 돈 아일러(Don Eiler). 이름의 'E'는 묵음이라며 '돈 아일러'라 부르면 된단다. 독일식 이름이다. 올해 71살이라는 말에서 범상치 않은 노익장을 느꼈다.

"자네 자전거를 보고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네."

생초보가 미국 횡단을 하려드니 걱정되었는지 근처 자전거 숍으로 안내해준다. 최우선 과제는 백미러 설치. 단골인 할아버지의 부탁에 가게 매니저는 다른 부분도 손봐주기로 했다.

중국어 사용설명서를 몰라 처박아 두었던 속도계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동안의 의문이 풀린다. 여러 설정값 중 '2080'의 의미. 바퀴가 한번 구를 때 자전거가 가는 거리를 가리킨다. 매니저는 줄자를 바닥에 놓고 자전거를 직접 굴려보았다. 내게 맞는 정확한 계측값은 20.95. 뒷기어가 2단 이하로 내려갈 때 체인이 헛돌던 문제도 해결했다.

"자네는 이제 좀 더 안전해졌구만."

먼 나라 이방인을 이리 세심하게 살펴주는 사람을 만나다니. 한국을 아느냐 묻자 1963년 오키나와 미 공군 기지에 근무하면서 아시아를 알게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떠나기 전 하루치 음식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근처 편의점으로 안내해주는 수고까지. 보답하려는 마음에 음료수를 사겠다 하자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멀리 간다며 거절한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까마귀 조심해. 자전거에 똥 쌀라."

▲ 애쉬랜드(ashland)의 자전거 점포

자전거샵 주인과 '돈 아일러' 할아버지

ⓒ 최성규

5월 24일 목

Ashland, VA - Mineral, VA

41 mile ≒ 66 km

어제는 자전거 숍에서 정비 직후 갑작스런 폭우가 내렸다. 정신없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에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애시랜드(Ashland)를 4km 벗어난 직후 타이어가 펑크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2시간 동안 천둥 번개가 근처에 작렬했다.

거짓말처럼 화창해진 오늘. 길에서 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다람쥐 5마리, 너구리 2마리, 뱀 한 마리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 한시간 남짓 이동하는 동안 발생한 로드킬을 놓고 보면 미국 전역의 연방도로(Federal road), 주도로(State road)는 물론 자잘한 카운티 도로(County road)와 샛길에서 온 몸을 뒤틀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를 생명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다람쥐 한 마리는 나를 피해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갔다. 반대편 인도로 가려다 마주 오는 차에 정면으로 치이고 말았다. 몇 번 꿈틀거리더니 숨을 거둔 가련한 짐승. 검은 송충이는 차가 지나간 직후 중앙선을 건너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운명은 얄궂기만 하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풀라스키 스카이웨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차들의 통행이 적다. 그래도 조심은 필수. 코츠빌(Coatesville), 붐파스(Bumpass)를 지나 앞으로 나아간다. 618번 카운티 로드를 타다가 650으로 우회전. 길이 652번으로 바뀌고 다시 700으로 변했다가 618번으로 꺾어진다.

복잡해 보이던 지도지만 라이딩을 해보니 딱딱 맞아 떨어진다. 마음이 적잖이 놓인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경로가 확실하니 다리는 아파와도 마음이 편하다. 육체의 고통이 심적 괴로움에 못 미친다는 의견에 무조건 찬성이다.

▲ 미네랄로 가는 길

여행의 묘미는 중간 중간 보이는 시원한 경치.

ⓒ 최성규

미네랄에 도착했다. 오후 3시경. 조금 더 가볼까 망설여진다. 주춤거리며 거리를 헤매는 사이 펑크가 났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여기까지만 가라는 운명의 계시인 모양이다.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프라이드 피치 파이(Fried peach pie) 하나를 주문하고 시간을 때운다. 어디서 캠핑을 할 것인가?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는데 스스럼없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백인 남성. 가볍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자전거 라이더임을 알렸다.

"우리집 소파에서 잘래? 너만 괜찮다면 나도 괜찮은데."

"정말 그래도 돼? 방해될까봐 미안하긴 한데."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미키 무마우(Mickey moomau). 미국 나이로 28세의 청년이다. 젊은 나이에 상당히 다사다난한 인생을 겪었다. 전 부인과는 별거중인데 아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여자친구와 함께 보살핀다. 지금은 그녀가 일 끝나길 기다리는 중이라는데 이 곳 종업원이다.

갑자기 본인 차를 보여주더니 몇 년 식이며 엔진이 어떻다는 얘기를 계속 늘어놓았다. 'Wrecked Car'(사고로 부서진 차량)에서 쓸 만한 부품들을 수거해서 재활용하는 센터에서 근무중이다 보니 직접 차를 조립하기도 한다. 운전자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재미가 짭짤하단다. 그렇게 얻은 아이팟 나노(MP3)를 보여주었다.

"딴 녀석들은 돈이나 보석에 혈안이 돼있지. 난 전자제품이 땡기더라고."

이번에는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선물이란다. 선불제 핸드폰인데 자그마치 500분이나 통화가 가능하다.

"핸드폰까지 줘도 돼? 시간도 많이 남아 있잖아."

대답 대신 여러 대의 핸드폰을 보여주는 미키. 그와 여자친구 스테파니(Stephanie), 아들 로건(Logan), 회사 동료이자 룸메이트인 과테말라 청년으로 북적이는 작은 집에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미키의 아들 로건(Logan)

엑스맨의 등장인물 '울버린'의 극 중 이름을 따서 '로건'이라 지었다 한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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