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하시게요? 저처럼은 되지 마세요
[오마이뉴스 이종락 기자]
봄을 알리는 농촌 들녘에 처음으로 들리는 소리는 무엇일까? 겨우내 얼었던 얼음물이 녹아 흐르는 소리, 산새들의 지저귐. 그보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경운기 '탈탈'거리는 소리다. 호미나 괭이로만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 농촌 현실. 겨우내 창고 속에 갇혀 있던 농기계들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주인은 선뜻 다가가기를 주저한다.
귀농 선물로 받은 중고 농기계, 시동부터 속 썩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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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귀농 6년 차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농기계에 대해서는 스스로 기계치임을 인정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처음엔 귀농 준비한다고 텃밭만 열심히 갈았다. 농기계는커녕 집에서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우는 일도 시원찮았던 인생이었다. 아파트에 지내다 보니 무슨 일이든 관리소에서 전부 처리해주었다. 공구를 들고 해야 하는 일, 소위 남자가 할 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일 등은 특별히 없었다. 자동차는 카센터에 가면 알아서 다 고쳐주니, 도시에 살았던 내가 특별히 기계에 대해 관심 가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안 그래도 머리 쓸 일이 태산인데….
2007년 의지와 열정으로만 똘똘 뭉쳐 결행한 귀농, 그때는 몰랐다. 농기계와의 전쟁을 치르리라는 것을…. 그저 호미를 들고 '흙에 살리라'를 흥얼거리던 초보 농부의 일상을 상상했었다.
귀농한 첫해에 가볍게(?) 시작한 농사가 밭농사 천 평이었다. 제초제를 거부한 농부에게 풀은 무섭게 다가왔고, 호미와 낫으로 무장한 초보 농부는 '테니스 엘보'라는 팔꿈치 병을 얻었다. 마침 친척 동생이 중고 엔진톱과 예초기를 귀농 선물로 주었는데, 이때부터 시작된 농기계와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농기계는 엔진, 캬부레타, 4싸이클, CC오일, 배합율 등등 단어도 생소했지만, 살벌한 칼날 돌아가는 소리와 엔진의 소음, 매연 또한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귀농 선물로 받은 중고 예초기와 엔진톱은 시동부터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손으로 직접 당기는 시동은 어찌나 힘이 드는 지, 더운 여름에 열댓 번 정도 시동 손잡이를 당기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예초기나 엔진톱은 사용할 때, 안전 장비 미비 또는 부주의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농기계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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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과 매연을 참아가며 긴장된 마음으로 예초기를 돌렸다. 한 시간정도 작업을 했을까? 작은 돌 하나가 '팍'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로 튀어 날아왔다. 따끔한 느낌이 불길했다. 시동을 끄고 얼굴을 살펴보니, 다행히 살짝 생채기만 난 정도였다. '휴'하는 한숨이 나왔다. 원래 안면 보호대를 쓰고 작업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결과였다.
예초기, 메뚜기 마빡 깎듯이 밀어야 한다는데
처음 만지는 예초기. 한 두 시간 정도 작업하고 나면, 손잡이를 잡았던 왼손이 후들후들 떨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가만히 있어도 팔이 덜덜 떨리는 것 아닌가? 주민에게 물어보니 "누구나 처음 하면 다 그런다"며 "한 일 년쯤 하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게 덜덜 떨어가며 작업을 해도 시골 주민이 작업한 것과 비교해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시골 사람들은 농담 삼아 "메뚜기 마빡 깎듯이 밀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작업한 결과를 보면 그야말로 예술이다. 짧게 잘도 깎아 놨다. 나 역시 일 년 정도 예초기를 잡으니 팔 떨리는 증상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메뚜기 마빡'처럼 깎지는 못하고 있다.
그 다음해인 2008년, 상주시에서 행사하는 귀농자 보조 사업을 지원받아 관리기를 한 대 장만했다. 경운기는 당시만 해도 너무 부담이 갔다. 관리기 하나만 잘 운전해도 밭 갈고, 골 타는 작업에는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관리기는 신형이라 시동도 잘 걸렸고, 엔진 소리도 부드러웠다. "역시 돈이 좋구나" 하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농협에서 운전 요령을 설명해줬지만, 기계치에게 쏙쏙 들어올 리 만무했다.
집에까지 겨우 끌고 왔지만, 문제는 첫 작업을 나가는 날이었다. 관리기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상했다. 특히 언덕길에서는 끙끙거리며 힘을 내밀어야만 겨우 나갈 정도였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밭 일하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진 것 같았다.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관리기와 한바탕 설전을 펼치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주민이 관리기를 들여다보더니 하시는 말씀.
"바퀴를 거꾸로 달았잖아!"
"네?? 헉!"
관리기는 바퀴가 앞으로 나가는 표시가 있었다. 별생각 없이 반대로 장착했던 것이다. 그러니 바퀴가 제대로 앞으로 나갈 리 없었고, 혼자서 생 땀만 흘린 것이다. 기가 찼고, 머쓱해졌다. '기계 바보'가 따로 없었다. 이제 관리기는 제대로 작동됐지만, 문제는 관리기를 다루는 기술이었다. 익숙한 마을 주민에게 관리기는 힘도 들이지 않고 반듯하게 골을 타는 애완용(?) 농기계 수준이지만, 기계치 초보 농부에게 관리기는 결코 손쉬운 농기계가 아니었다.
관리기, 바퀴 거꾸로 장착... 넘어가면 붙잡아 낑낑대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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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사진 밭고랑을 돌 때 120킬로그램의 관리기가 넘어갔다. 아내와 둘이서 관리기를 붙잡고 낑낑대던 기억은 지금도 안쓰럽게 남아있다. 이제는 예초기나 관리기를 다루는 기술이 그때보다 상당한 부분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내게는 차가운 금속성의 쇠붙이 같은 이질감이 여전하다. 석유에너지에 대한 거부감과 시동 걸 때마다 또 어디서 고장이 날까 하는 불안감에 지금도 가능하면 농기계보다는 삽, 괭이를 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관리기조차 버거워하는 내게 경운기는 한동안 먼 나라 농기계였다. 기계 덩치도 훨씬 더 컸고, 무엇보다 경운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주변 주민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경운기를 잘못 몰다가 죽은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고, 내리막길 방향키가 틀려 매우 위험하다는 등 안 그래도 불안한 심리에 부채질을 해대니, 더욱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괭이로 흙살 파헤치는 낭만적인 농사...경운기가 장난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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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5년 차에 운 좋게 물물교환으로 갖게 된 경운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동네 한 바퀴 몰고 돌아올 수 있었다. 경운기를 '탈탈' 몰고 갈 때, 농부로서 자세가 나오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은 있었지만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불안감에 지금도 가슴은 쿵쿵 뛰고 있다. 한 번은 경운기에 조금 자신이 붙자, 굽은 길에서 속도를 내다가 핸들 손잡이에 가슴팍을 친 경험이 지금도 아찔하다.
농기계의 힘은 대단하다. 사람의 힘에서 황소, 관리기, 경운기, 트랙터로 변천되는 농기계의 역사 속에 농사는 속도와 효율로 압축되고 있다. 삽과 괭이로 흙살을 파헤치며, 천천히 농사짓고 싶은 마음은 버티기 어려운 낭만이다. 텃밭이 아닌 생계형 농사를 지으면서 농기계는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아직도 내가 관리기로 작업한 밭을 보면 아내는 꼭 한마디를 던진다.
" 남들은 한 번에 끝내던데…."
"……."
지금 이 순간에도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한마디만 하고 싶다. 시골은 머리보다는 몸을, 특히 남자에게 만능을 요구하는 곳이다. 농기계부터 시작해 전기, 모터, 엔진, 보일러 등등 무시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제라도 기계에 관심을 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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