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요금 내려간다'는 새빨간 거짓말

2012. 4. 20. 20: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분석]요금인상 없지만…손해는 안 보게 해주겠다고?

[미디어오늘 허완 기자]

국토해양부가 지난 19일 수서발 KTX 민영화를 위한 민간 제안요청서(RFP)를 발표했다. 당초 올해 상반기 중 사업자를 선정하려던 계획은 잠정 연기됐지만, 국토부는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당정 협의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설득하고 이해시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정부는 오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의 운영권을 15년간 민간 사업자에 장기임대할 계획이다. 이 같은 구상에 따르면 민간사업자는 정부가 건설한 선로에 대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열차 편성과 운영을 맡게 된다.

그러나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운임 인하' 효과를 내세워 왔지만, 이날 발표된 민간 제안요청서만 뜯어보더라도, 정부의 '꼼수' 뒤에 숨겨진 KTX 민영화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운임 20% 인하 가능할까?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이 '운임 인하'를 위한 것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이날 함께 발표된 보도자료에서 국토부는 "철도운임은 현 코레일 대비 초기년도에 15%를 인하하고, 이후에도 물가상승률보다 0.5% 낮게 하여 평균적으로 20% 수준으로 낮추도록 하였음"이라고 강조했다. 또 "장애인·노약자·국가유공자 등 공공약자에 대해서는 코레일 수준 이상의 공공할인을 시행하여 교통복지를 제고"한다는 대목도 있다.

▲ 동아일보 20일자 16면.

▶초기 15% 인하?=

그러나 우선 초기년도에 15%를 인하하겠다는 내용은 아직까지는 정부의 '희망'에 불과하다.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의무적 운임 할인 폭은 10%(6.3.4)에 그친다. 다만 민간사업자가 1% 추가 인하 계획을 밝힐 경우 1%당 10점의 가산점이 주어진다. 최대 50점까지 인정되는 가산점을 꽉 채운다면 5%의 추가 인하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지만, 어디까지나 강제조항은 아닌 셈이다. 전체 배점(1000점)의 1%에 불과한 10점을 획득하기 위해 예상 운임수입의 1%를 포기할 사업자가 얼마나 될지는 별도로 살펴야 하는 부분이다.

▶20% 인하 근거는?=

물가상승률보다 0.5% 낮게 운임을 유지하겠다는 대목은 어떨까. 제안요청서에는 "본 사업 시행자는 본 사업의 운송개시 이후 운임의 조정을 사업법 9조에 따라 주무관청에서 고시하는 운임의 상한(기본운임) 범위 내에서 조정하여야"(6.3.1)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기본운임을 "매년도 실제 소비자물가상승률에서 1년에 0.5% 포인트를 뺀 수치를 기준으로 2년 단위로 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6.3.2) 한다는 대목도 있다.

예를 들어 한해 물가상승률이 3.0%라면, 정부는 0.5%포인트를 뺀 2.5% 범위 내에서 인상폭을 결정해 기본운임을 정한다. 이를 2년 단위로 조정할 경우 인상률은 5%가 된다. 민간사업자는 이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요금을 인상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코레일의 연평균 운임 인상률이 3.55%에 이른다는 점을 근거로 코레일 독점체제 대비 2029년까지 평균 23%의 요금 인하 효과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물가상승률이 매년 3.0%로 동일하다는 점을 가정하고 산출된 수치다. 물가상승률이 이보다 높을 경우, 운임은 더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코레일 대비 20% 수준의 운임 인하 효과를 무조건 기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손해는 안 보게 해주겠다?=

더 큰 '허점'은 따로 있다. 운임 인상 요건을 까다롭게 한 대신,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놓은 것이다. 우선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현재 KTX보다 낮은 운임 수준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본 사업의 운임이 철도공사의 운임을 초과하는 경우 철도공사의 운임 이하 수준에서 본 사업의 기본운임을 조정"(6.3.3)한다는 대목에 근거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 경우 민간사업자는 정부와 선로사용료 조정을 협의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항은 해당시점에서 협약당사자가 협의하여 따로 정함"(6.3.10)이라고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민간사업자가 '손실 보전'을 이유로 선로사용료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내세웠던 주요 논리 중 하나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로임대료 40%를 하한선으로?=

정부는 민간 사업자에게 운송수입의 최소 40%를 선로임대료로 지불하게 할 방침이다. 현재 매년 운송수입의 31%를 선로임대료로 징수하는 코레일에 비해 더 많은 임대료를 거둬 부채 상환 시기를 앞당긴다는 계산이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제안요청서에는 "사업제안자는 선로사용료 요율을 40% 이상으로 제시하여야 함"(4.83)이라는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민간사업자가 더 높은 요율을 부담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사업자 선정 심사에서 가산점을 줄 방침이다.

그러나 역시 민간사업자가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본 사업시행자는 자신이 제안한 선로사용료 요율의 조정을 요구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세법 등 관계법령의 변경 또는 본 사업의 수익성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는 정부의 정책변경 등으로 인해 본 사업시행자의 수익성에 중대한 증감이 있는 경우 주무관청과 협의하여 선로사용료를 조정할 수 있"(4.8.4)다는 규정이 포함된 것이다.

겉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지만, 결국 따져보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업자는 무조건 40% 이상의 선로사용료를 정부에 제시해야 하지만, 향후 정부와 협의해 이를 재조정할 수 있다. 재조정에도 불구하고 사업자가 40%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지 여부는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 이를 명시적으로 보완하는 규정이 없는 한, 사업자가 '수익성의 중대한 증감'을 주장하며 40% 이하로 재조정을 요청할 가능성도 열려있는 셈이다.

▲ 지난 1월18일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이 'KTX 민영화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하며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철도노조

▶초과이익 환수?=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이 과도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매년도 운송수입의 110%가 초과하는 운송수입에 대해서는 제시한 선로임대료 요율에서 1.3배를 적용하여 추가 환수"한다고 홍보했다. (관련 조항 4.13.1) 과연 그럴까.

여기에서 '과도한 이익'의 기준은 사업자가 제출하는 예상운송수입이다. 사업자의 예측보다 실제 운송수입이 많을 경우, 그 초과분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자가 예상운송수입을 '뻥튀기' 해놓으면 그만이다. 이 경우 당연히 '초과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된다.

▶코레일 수준 이상의 공공할인?=

공공성 약화 논란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는 "코레일 수준 이상의 공공할인을 시행하여 교통복지를 제고"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명목상으로 장애인 및 노약자, 군인, 어린이,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할인은 '의무'가 아니다. 사업자 선정 기준에서 총 50점의 배점이 주어졌을 뿐이다. 전체 배점(1000점) 대비 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강제사항이 아닌 규정을 평가 기준에 넣어놓고 "교통복지 제고"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독식 막겠다?

정부는 또한 △공개경쟁을 통해 신규사업자를 선정하고 △51% 지분을 일반 국민공모, 중소기업, 공기업에 할당하고 △입찰참여 컨소시엄 지분 중 30%를 일반공모로 확보하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대기업의 '독식'을 막아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지하철9호선과는 달리 '운영수입보장'이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 독식 억제?=

정부는 51%에 해당하는 지분을 일반 국민공모와 중소기업, 공기업(11% 한도 내)에 할당한다는 방침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대기업이나 컨소시엄의 지분을 49%로 제한해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논리다. 입찰참여 컨소시엄의 지분 중 30%도 일반공모로 확보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공모 시행 결과가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민간사업자(대기업 및 컨소시엄)가 해당 비율만큼의 지분에 대해 인수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럴 경우 정부가 강조한 '49% 대 51%'이라는 비율은 무너지게 된다. (협정문 4.3.9: "실제 공모 시행 결과 당초 계획하였던 공모주의 출자지분율에 미달하는 경우 사업제안자의 기존 출자자들이 그 지분을 인수하여야 하며")

▲ 지난 2월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KTX 민영화 저지 및 철도공공성 강화 철도노동자 1차 총력 결의대회'에서 철도노조의 한 조합원이 KTX민영화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철도노조

▶운영수입보장 없다?=

또한 운영수입보장을 구체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대신, 정부는 '부속사업'을 "자율적으로" 시행할 권리를 부여한다.(4.6.3) 정부가 제시한 부속사업에는 철도차량이나 차량기지를 이용한 광고사업, 판매사업, 화물 운송사업, 렌터카 사업 등이 꼽힌다. 시행 가능한 부속사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민간사업자는 철도공단이나 철도운영자, 철도사업자, 철도공사,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자기관, 기타 타인이 위탁하는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4.6.4) 이에 따르면 제안요청서에 언급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수익사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승인을 꺼릴 가능성은 낮다. "부속사업으로 인한 수익을 선로사용료 형태로 주무관청과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4.8.3.1)하고, 예상 부속사업 수익을 선로이용료 요율에 반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민간사업자가 다양한 부속사업을 추진할수록 정부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