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게장에 간장 게장까지 무한리필이라고?

2012. 4. 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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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여수행 기차를 탄 건 순전히 동백꽃이 보고 싶어서였다. 겨울 동장군이 좀처럼 봄을 풀어주지 않아 스산하기만 했던 서울의 사월. 꽃 소식을 기다리다 지친 내게 퍼뜩 붉디붉은 동백꽃의 자태가 손짓하듯 떠올랐다.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에 입김을 불어야할 정도의 봄 날씨라면 동백꽃은 절정을 달리고 있을 것 같았다.

총선 투표 결과에 대한 열망이 허무한 실망으로 바뀌었던 지난 수요일(11일), 심야의 어둠속을 달려가는 용산발 여수행 야간열차에 올라탔다. 기차가 서서히 출발하는 사이 습관적으로 좌석의 안전벨트를 찾다가 몸을 꽉 조이는 벨트가 필요 없음을 깨닫고 의자를 편안하게 뒤로 제친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던 FM 라디오 음악소리가 점점 소음 속으로 사라지고, 이를 닦고 이불 속에 들던 익숙한 자정의 풍경이 낯설게 바뀌었다. 이제야 멀리 떠남을 실감하게 된다.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깨닫게 해준 오동도의 동백꽃

ⓒ 김종성

처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오동도의 동백꽃

여수는 오월부터 시작하는 세계 박람회 엑스포 행사로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여수역 이름을 여수 엑스포역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박람회 관련 시설물이 세워지고 있지만 내 눈길을 끈 건 역 마당에 있는 무인자전거대여소. 가까운 오동도나 고소동 벽화골목이 있는 해양공원에도 똑같은 시설이 있어서 자유롭게 대여, 반납하며 자전거 타고 시티투어하기 좋겠다. 대여비는 시간당 천원이란다.

2년 만에 만나는 붉디붉은 동백꽃이 어서 보고 싶어 애마 자전거의 페달을 부지런히 밟는다. 오동도 입구 매표소 앞 아저씨는 '쬐깐한' 자전거가 잘도 달린다며 내가 탄 자전거를 쳐다만 볼 뿐 그냥 통과하게 해준다. 눈 시원한 하늘빛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관광객들이 탄 미니 동백열차와 나란히 방파제를 건넜다.

동백나무 숲 사이 소박한 찻집에서 동백꽃으로 차를 만들고 있다, 동백차는 어떤 향과 맛이 날까?

ⓒ 김종성

관리사무소에 들어가 자전거를 잠시 맡기고 언덕 산책로에 들어서자마자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동백꽃들이 빨갛게 고개를 내밀어 여행자와 눈을 맞춘다. 노랑 꽃술에 빨간 꽃잎이 어찌 그리 강렬한지 추운 겨울에 굳굳하게 피어날만하다. 동백꽃의 꿀을 얻어먹고 꽃 수정을 시켜준다는 동박새 등 많은 새들의 다양한 지저귐 소리가 화사한 꽃들과 함께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저 앞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남해바다의 호쾌한 파도소리가 손짓을 하는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 느낄 거리가 많은 곳이다.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보다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더하다.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일반적인 꽃들과 달리 꽃송이채로 툭툭 소리를 내며 낙하하는 이채로운 동백꽃. 여러 가지 아름다움 가운데 처연한 아름다움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꽃이다. 겨울에 피어나고 봄에 지는 꽃이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우주와 자연은 무슨 조화로 동백나무에게 이런 숙명을 지어줬는지.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유명한 시구는 동백꽃에게도 잘 어울리지 싶다.

재미있는 강아지들 그림 덕분에 힘든줄 모르고 언덕동네를 올랐다.

ⓒ 김종성

바닷가의 언덕동네 고소동 벽화골목

여수에 그것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동네에 벽화골목이 있다는 걸 여수역 직원에게서 받은 여행 지도를 보고 알게 되었다. 고소동 바닷가에 주민들이 나들이나 산책을 하러 오는 해양공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고개를 살짝 위로 들면 언덕 위 집들에 그려진 재미있는 벽화들이 보인다.

보이는 아무 골목길을 따라 언덕동네로 올랐다. 여행자를 반기는 귀여운 강아지 그림, 수많은 조개들로 수를 놓은 갈매기 벽화, 빨간색 하멜 등대, 벽을 헤엄치는 물고기들... 벽화 구경하느라 오르막 골목길이 힘들기는커녕 구불구불 골목마다 또 어떤 그림들이 펼쳐질까 흥미롭기만 하다.

남해안의 언덕동네답게 물고기, 갈매기, 등대 그림이 눈에 띈다.

ⓒ 김종성

평범하고 조금은 쓸쓸했을 바닷가 언덕동네엔 여러 외지인들이 찾아와 요즘 유행하는 뿌잉뿌잉 포즈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며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작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가꾸는 동네 아주머니는 그런 모습이 영 싫지는 않으신지 길을 물어보는 내게 웃으며 잘 알려주신다. 지자체에서 만든 관광용 벽화들이지만 골목 어디에서도 여수의 바닷가와 항구가 보여 충분히 매력적인 동네다.

알음알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긴 하는지 외지인을 보고 짖어대는 어느 집 개의 목소리가 다 쉬었다. 목소리가 생각대로 안 나오는 대도 열심히 집을 지키려는 견공의 충성심이 안쓰럽다. 벽화골목 꼭대기에는 언덕동네를 내려다보려는 듯 아파트들이 높이 치솟아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다니, 나처럼 자전거 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기 힘들겠다.

여수에는 매일이 오일장터같은 시장들이 많아서 좋다.

ⓒ 김종성

양념 게장에 간장 게장까지 무한리필

바닷가 항구도시 여수엔 수산시장 말고도 중앙시장, 서시장, 교동시장이 연달아 자리하고 있어 여행자를 더욱 즐겁게 한다. 매 4일과 9일 날 오일장이 선다지만 오일장이 필요 없을정도로 장터가 크고 길고 상인들과 손님들로 북적인다. 대형마트와 SSM에 밀려 점점 작아지고 있는 우리 동네 시장이 떠올라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고소한 냄새가 나오는 방앗간에서 맛난 떡들도 사먹으며 미로 같은 시장 통을 돌아다녔다. 흙이 좋은 고장 고창에서 만들었다는 옹기를 파는 아저씨의 얼굴선이 어찌나 항아리를 그대로 닮았는지 얘기를 나누며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디에서 저녁밥을 먹을까 여쭤본 내게 아저씨가 알려준 곳은 '봉산동 게장골목'이다.

여러가지 반찬들과 양념게장에 간장게장까지 무한 리필해 주는 여수의 인심이 느껴지는 밥상

ⓒ 김종성

봉산동에 가니 정말 동네 골목골목에 게장식당들이 번성 중이다. 식사시간을 피해서 갔는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줄을 서서 겨우 내 차례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게장백반은 2인상이 기본이란다. 혼자 여행을 할땐 종종 겪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나오는 내 뒷모습이 안 돼 보였을까, 카운터에 있던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하신다. 아마도 곁에 있던 애마 자전거 덕분인 듯싶다.

한상에 8천 원인 게장백반은 서시장 옹기장수 아저씨의 호언대로였다. 갓김치 같은 여수의 특산물이 반찬으로 나오고 양념게장, 간장게장이 같이 등장하는데 더군다나 무한리필이다. 끼니 때가 아닌데도 식당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가 있었다. 인심 좋고 푸짐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게장백반을 먹고 나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예 포장된 게장박스를 사들고서야 식당을 나선다.

돌산대교 앞 전망좋은 정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엽고 반갑다.

ⓒ 김종성

게장으로 볼록해진 배의 소화도 시킬 겸 전망 좋다는 돌산공원을 향해 달려갔다. 돌산공원으로 건너가는 돌산대교 앞의 큰 정자에서 잠깐 쉬는데 초딩 5학년이라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정자 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다. 아이들이 이렇게 모여서 원초적인 놀이를 하는 풍경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도 그만 끼어들고 말았다. 다 큰 어른이 초딩들과 정자에서 몸싸움을 하는 풍경을 지나가는 버스에 탄 사람들이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다.

오는 5월부터 8월까지 열리는 여수 엑스포 세계 박람회로 지금 이 도시는 곳곳이 분주하다. 박람회 행사가 무사히 성황리에 진행되어서 이름답게 더욱 아름다운 도시 여수(麗水)로 번성하고, 여행하기 좋은 인심 좋은 동네로 남아주길 바란다.

여수 엑스포 역에서 내려 - 오동도 - 고소동 벽화골목 - 서시장, 교동시장, 수산시장 - 봉산동 게장거리 - 돌산공원 까지의 여수 자전거 시티투어

ⓒ NHN

< 덧붙이는 글 >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은 꽃샘추위 덕에 다음 주말까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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