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Vehicle]'사장님 차' 그랜저 이젠 '사장님 아들 차'도..

2012. 3. 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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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박영국 기자]그랜저. 이름만으로도 참 ´자세´ 나오는 차입니다. 온통 직각으로 뒤덮은 디자인 덕에 일명 ´깍두기 그랜저´라는 별명이 붙었던 80년대부터, ´사장님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켰죠.

앞에 운전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비스듬히 앉은 ´사장님´의 모습은 참 ´포스´가 제대로였습니다.

사장님 뿐이 아니었죠. 조폭 영화 보면, 조직 회동 때마다 뒷좌석에 ´형님´들을 태운 검은색 ´깍두기 그랜저´들의 행렬이 장관을 연출하곤 했습니다.

◇ 그랜저 세대별 디자인. 위부터 1세대(L), 2세대(LX), 3세대(XG), 4세대(TG), 5세대(HG).

지금도 그랜저의 브랜드 파워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현대차가 30년 가까이 ´그랜저´라는 이름을 버리지 못하겠습니까.

잘 팔리는 것도 여전합니다. 작년만 해도 10만대 이상 팔리며 현대차 내에서 아반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렸습니다.

하지만, ´사장님 차´로서의 그랜저의 위상은 예전만 못한 게 확실합니다.

시발점은 90년대 중반 ´다이너스티´의 등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랜저 2세대(LX) 모델에 '눈깔'(원형 헤드램프)을 하나씩 더 박은 일종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불과했지만, 다이너스티가 등장하면서 기존 2세대 그랜저의 최상위 트림인 V6 3500cc가 단종돼 그랜저보다 상위 차급에 위치함을 알렸습니다.

현대차의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타이틀이 그랜저에서 다이너스티로 넘어가게 된 거죠.

90년대 후반에는 아예 그랜저의 ´형님뻘´임이 분명한 ´에쿠스´가 등장하며 그랜저에 ´사장님 차´ 행세를 그만둘 것을 강요했습니다.

설자리를 잃은 그랜저는 90년대 말 3세대 풀체인지 과정에서 큰 변화를 감행합니다. 중후함을 벗어버리고 보다 스포티한 디자인의 그랜저XG가 탄생한 거죠.

이 때부터의 그랜저는, ´사장님 차´가 아닌 오너드라이버용 차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디자인이나 차체크기, 다른 모델들과의 차급관계 등으로 볼 때 이미 뒷좌석에 앉으면 ´폼´이 나는 게 아니라 ´뻘쭘´한 차가 돼 버린 거죠.

실제, 3세대 풀체인지 이후의 그랜저는 주인이 직접 몰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그랜저의 위상을 더욱 떨어트리는 모델이 등장합니다. 2008년 1월 출시된 제네시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가격이나 배기량, 차체 크기 면에서 그랜저보다 상위인 이 모델은 현대차의 세단 라인업에서 에쿠스와 그랜저 사이에 자리하면서 그랜저를 한 단계 아래로 밀어냈습니다.

2012년 현재. 우리는 그랜저의 차급 순위를 또 다시 아래로 밀어낼 신모델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 K9의 출시입니다. 그랜저와 같은 현대차는 아니지만, 상당부분의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회사 기아자동차의 모델인 K9은 에쿠스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고 엔진은 제네시스와 동일한 3.3ℓ와 3.8ℓ 두 종류를 얹습니다.

현대·기아차 내에서의 차급 구분은 에쿠스와 제네시스 사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불쌍한 그랜저는 4위로 밀려난 거죠.

◇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K9. 현대차 에쿠스와 제네시스의 중간급이다.

재밌는 것은 에쿠스와 동일한 전폭과 전고, 축거를 가진 K9도 ´사장님 차´로 보기엔 애매한 디자인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같은 세단이라도 디자인에 따라 수요층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특히, 전체적인 외관 콘셉트도 중요하지만, 시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엔진룸과 트렁크 부분의 길이입니다.

흔히 ´스포츠카´로 불리는 ´쿠페´형 모델들은 전체 길이 배분에 있어 엔진룸쪽 비중이 확연히 큰 게 보통입니다. 앞쪽이 길고 꽁무니가 짧을수록 좀 더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거죠.

세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적으로 앞뒤 배분이 균형이 잡힐수록 중후한 느낌이 나지만, 트렁크가 엔진룸에 비해 짧을수록 스포티한 모습을 연출합니다.

K9은 스포티한 디자인의 전형입니다. 트렁크 길이가 엔진룸 대비 확연히 짧은데다, 루프도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뒤로 길게 뻗어있어 트렁크 위쪽으로는 평면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지금 공개된 디자인에 문짝만 두 개 떼어내고 쿠페라고 해도 무리 없을 만한 디자인입니다.

물론, 중후함과 스포티함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스포티한 디자인이면 사장님이 뒤에 타고 가기엔 썩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오너가 직접 몰고 다니는 차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그랜저는 이제 ´사장님 아들 차´ 하기도 힘들게 생겼군요.

그랜저가 한참 ´사장님 차´로 이름을 떨치던 당시 1세대 모델의 배기량은 2천cc였습니다. 그때는 2천cc만 해도 큰 차였죠.

지금은 최저 트림이 2400cc, 최고 트림은 3300cc로 나오고 있지만, 지금의 그랜저는 ´사장님 차´가 아닌 ´월급쟁이들도 타고 다닐 수 있는 차´에 속합니다(아, 물론 월급은 좀 많아야겠죠).

그 사이 더 크고 비싼 차들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생활수준이 더 나아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랜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썩 나쁜 일은 아닌 듯합니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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