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풀어쓰는 동양학'] 덕은 무엇인가..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정제된 마음

2012. 1. 1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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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에 등장한 '덕(德)'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당시의 인간들이 얼마나 강한 의지로 신으로부터 독립해 인간의 길을 가려고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엄밀하게 말하면 덕이라는 특성을 갖게 되면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즉 인간이 신의 역할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됐으며 이와 동시에 인간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신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신으로부터 책임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키우면서 자존심이 강한 동물로 성장해간다. 이제는 인간이 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각을 통해서 자신의 움직임을 결정하고 거기에 스스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게 되는데, 그 과정의 전반적인 진행은 바로 덕을 근거로 해 이뤄진다. 결국 인간이 인간의 수준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행위를 하는 근거도 바로 덕이다. 그래서 동양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말하더라도 인간을 논할 때는 덕이라는 개념을 절대 뺄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이 '덕'은 사실 존재하는 어떤 것의 구성물이나 근거로서 있는 것이 아니다. 권위를 갖고 가만히 멈춰 있으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탱해주는 '무엇'이라기보다는 '활동'이자 '향기'이자 '동력'이다. '힘'인 것이다. 덕은 인간을 지탱하는 어떤 '무엇'이 아니라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활동'이자 '작용'이다.

이런 덕을 중국의 송나라 철학자 주희(朱熹)라는 사람이 어떤 '무엇'으로 규정하면서 명사화해버렸다. 그는 이 세계가 어디에 근거해 움직이는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원래는 도교나 불교에 있던 '원리(理)'라는 개념을 끌어와 유교적으로 정립한다. 이 세계는 일정하게 정해진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유교적 윤리 도덕의 정당성 문제와 관련됐다. 즉 주희는 인간이 개별적으로 하는 윤리 도덕적인 행위가 그냥 그 사람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 활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우주에 있는 불변의 어떤 정해진 원리를 실현하는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한다. 인간의 개인적 도덕 행위가 단순한 윤리 도덕 행위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보편적 원리와 연결됐다. 이렇게 됨으로써 인간은 우주의 보편성 자체를 책임지는 지위를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 하는 도덕적 행위를 대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실현하는 것으로 의미화했다.

그렇다면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수행할 수 있는 근거가 인간에게 있는가? 주희는 우주의 보편 원리가 인간 각자에게 '본성'의 형식으로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본성이 곧 원리(性卽理)'라는 명제다. 그는 '대학'이라는 책의 첫 구절에 나오는 '명덕(明德)'을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으로서 잡스럽지 않고 영묘하며 밝아서 여러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온갖 일에 다 대응한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해석한다. 고정되고 불변하는 '이치'를 인간이 안으로 담고 있는 것, 즉 이치의 '내적 구현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성 즉 덕은 활동력이 아니라 이치와 같은 본체적 특성을 갖게 됐다. 그래서 밖에 있으면 이치가 되고, 인간 안으로 들어오면 본성 즉 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그의 책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서 '하늘이 사람들을 낸 이래로 사람들에게는 이미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누구에게나 부여돼 있다(蓋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고 말하기에 이른다. 덕을 본성화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은 활동하는 동력으로서의 힘을 잃고 거기서 자연스럽고도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향기도 잃어버리게 된다. 그 대신 이제는 발굴해야 하는 어떤 것, 알아야 하는 어떤 것으로서 다뤄져 버린다.

다시 돌아가자. 덕의 원래 의미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내적인 마음의 상태였다. 그 마음의 상태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혹은 어떤 본체론적인 그림자도 갖지 않는, 활동하는 것으로서의 내적인 움직임이었다.

주나라 초기의 문화를 신봉했던 공자의 언설을 보면 당시 회자되던 덕의 진실한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 한 구절을 본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 덕이 그 자체로 본체적인 것으로서 활동성이 없다면 어떻게 이웃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덕 자체에서 감화력이라 부를 수 있는 향기가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어떤 결과도 야기할 수 없다.

'논어 학이(學而)편'에는 증자의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부모의 장례식을 정성껏 잘 치르고 성심성의껏 조상에 대한 제사를 잘 지내면 백성들의 덕이 아주 두터워진다(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부모 장례식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성으로 치르는 것이 백성들의 덕을 두텁게 한다는 주장은 정말 근거가 있는가? 근거를 논리적으로 밝히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부모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그 마음에서 나오는 향기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해 백성들의 덕을 두텁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주자의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주자가 '활동력으로서의 덕'을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덕의 원래 의미가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가장 순수하게 정제된 마음의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덕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향기와 힘을 발산하는 동력으로 회복돼야 한다. 이 '덕'이 있어야 인간은 지식의 저장고가 아니라 지혜의 운용자로, 도덕을 연구하는 자가 아니라 도덕 실천가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에서 일상적으로 민주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몇 사람이 모여 한담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거기서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모두 경험해 봤지만 하고 싶은 말을 참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혼자만 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 힘든 일을 해내면 훌륭한 인격자로 인정받지만 힘들다고 지키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나 가벼운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것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말을 참거나 말을 이리저리 옮기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힘이 바로 덕이다. 그래서 공자도 '길가에서 들은 소문들을 여기저기 옮기고 다니는 것은 덕이 없기 때문(道聽而塗說, 德之棄也, '논어 양화(陽貨)편')'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옮기느냐 옮기지 않느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까지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내적인 인격의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격적 깊이나 마음의 근본을 잃고 좁은 편견에 갇혀 악다구니하면서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 가게 될 것이다.

아주 좁은 범위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을 공자는 향원(鄕原)이라고 불렀다. 향원은 시골 사람 중에 근후한 자란 뜻인데, 자기가 활동하는 제한된 범위의 좁다란 곳에서만 근후하다고 일컬어지는 존재다. 이런 사람도 덕을 망치는 사람이다(鄕原, 德之賊也, '논어 양화편'). 좁다란 집단 내에서 형성된 단편적인 명성과 시각에 갇혀 자기를 끌고 가며, 원래의 마음을 갖고 자기를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덕은 항상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순간적이고 속세적인 명성이 중요하지 인격적 깊이 같은 것은 안중에 없다. 향원으로 사는 것도 덕의 상실 때문이다. 주나라 건국의 정당성을 '덕'에서 찾았다는 중국 고대인의 생각을 다시 기억하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39호(12.01.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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