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도 사람이었네.. '애플교 바이블'을 만나다

2011. 10. 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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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24일 낮 12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첫 판매를 시작한 스티브 잡스 전기. 민음사에서 만든 한글판과 함께 영어 원서(사진)도 판매됐다.

ⓒ 김시연

흰색 바탕에 회색빛 애플 마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지 디자인조차 애플 제품을 닮았다. 굳이 얼굴 사진이 없더라도 '스티브 잡스'란 책 제목이 모든 걸 설명한다.

24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는 그동안 그를 '애플교' 교주처럼 떠받들어온 이들에겐 '바이블'이다. 더는 키노트 '설교'를 들을 수 없겠지만 후세에 유서를 대신해 책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스티브 잡스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갔다.

인간으로 돌아간 애플교 교주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에요."

스티브 잡스 전기 첫 장을 펼치면 '양아버지' 폴 잡스에게 안긴 두 살배기 꼬마가 등장한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스티브 잡스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티뷰 주택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울타리를 만들 때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꼼꼼히 챙기는 양아버지 모습은 컴퓨터를 만들 때 케이스에 가려진 회로도의 미적 배치까지 신경 쓰는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 잡스는 어린 시절을 보낸 디아블로가 분양 주택의 깔끔한 디자인과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기능에 대한 호감 때문에 맥 컴퓨터와 아이팟을 만든 열정이 생겨났다고 고백한다(구글 지도에서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디아블로 286'을 검색하면 그 집과 울타리를 직접 볼 수 있다).

양아버지 폴 잡스에 안겨있는 두살배기 스티브 잡스

ⓒ 민음사 제공

잡스 전기, 잃어버린 반쪽을 채우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듯 저자 월터 아이작슨 손을 빌려 오늘날 자신의 열정과 창의성을 만든 원천을 전한다. 이 책이 제3자가 쓴 '전기(biograpy)'이면서도 많은 이들이 '자서전(autobiograpy)'처럼 받아들이는 이유다.

지금까지 스티브 잡스를 다룬 책들은 많았다. 서민 가정에 입양아로 들어가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2로 20대 갑부가 된 극적인 인생부터,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것도 모자라 픽사 애니메이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음악, 휴대폰, 태블릿 등 숱한 분야에서 업적으로 남긴 잡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누구나 탐내는 소재였다.

정작 잡스는 남들이 자기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주변인들만 취재한 반쪽 전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 맥월드 > 편집자 출신 제프리 영과 윌리엄 사이먼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 < 아이콘 > 도 훌륭했지만 역시 '반쪽짜리'였다. 아이팟 출시 시점인 2005년까지 다룬 탓에 픽사 성공에 큰 비중을 뒀을 뿐 아이폰 이후 애플에서 보여준 업적은 다룰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잡스의 창조성과 대비되는 '독불장군'식 경영 방식과 인색하고 괴팍한 성격을 신랄하게 꼬집으면서도 잡스 자신의 '반론'은 넣을 수 없었다.

죽음을 예감한 탓일까?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잡스는 벤자민 프랭클린과 아인슈타인 전기를 쓴 아이작슨을 찾아 자신의 전기를 의뢰했지만 5년 뒤에야 결실을 맺는다. 두 번째 병가로 사실상 '시한부' 삶을 살던 시점이었다. 앞서 마운틴뷰 인터뷰를 포함해 2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친 인터뷰는 잡스가 인생 막바지 자신의 전기에 얼마나 매달렸는지 보여준다.

혹 저자가 잡스의 '마법'에 걸려 편파 중계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노파심에 불과했다. 잡스는 2009년 집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내용을 미리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2년 뒤 잡스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내용도 많이 들어가 있겠죠"라고 묻는 게 전부였다. "좋아요. 그럼 사내 책자 같진 않겠군요. 당분간은 안 읽을 겁니다. 열 받고 싶지 않으니까. 1년쯤 후에나 읽어보지요.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24일 낮 12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첫 판매를 시작한 스티브 잡스 전기 취재 열기가 뜨겁다.

ⓒ 김시연

구글 안드로이드에 맞서 선전포고

한국 독자들은 실망스럽겠지만 이 책에서 한국은 물론 최근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패드를 만들 때 애초 잡스는 인텔 아톱 칩을 쓰려했지만 임원들의 반대로 A4라는 맞춤형 칩을 개발해 '한국의 삼성'에서 만들게 했다는 게 고작이었다.

다만 안드로이드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구글을 향한 '폭언'에서 최근 '특허 전쟁'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잡스는 2008년 구글 본사에서 안드로이드 개발 책임자인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과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잡스는 계속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고 아이폰의 멀티터치 기능을 도용하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HTC가 2010년 1월 아이폰 외관과 비슷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하자 애플은 자사 특허 20개를 침해했다며 고소했다. 당시 잡스는 "빌어먹을 구글, 당신들은 아이폰을 훔쳤어, 우리를 완전히 벗겨먹었다고"라며 힐난하고 "난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것이고 기꺼이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폭언도 참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세 번째 병가 중 구글 공동창업자이자 당시 막 CEO를 맡은 래리 페이지가 찾아오는 것까지 막지 않았다.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 않은 제품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구글 창업 당시 '멘토'였던 잡스의 '애증'과 함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주당 지지자'인 잡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0년 가을 실리콘 밸리를 찾은 오바마를 만났을 때는 "지금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공장 설립 규제 완화 등 기업 친화적 정책과 교육 개혁을 주문했다. 오바마가 잡스가 제안한 현장 엔지니어 3만 명 양성론을 받아들이자 2012년 대선 때 오바마 정치 광고 제작을 돕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2011년 8월 애플 CEO 사임을 앞둔 잡스는 "그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화를 내는 일을 주저해서 적절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오바마 리더십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난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성장한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서니베일 집. 이집 차고에서 애플이 탄생했다.

ⓒ 민음사 제공

애플도 HP 전철 밟을까 노심초사

이때쯤 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CEO직에서 퇴임한 날 휼렛패커드(HP)가 태블릿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승리감에 도취한 다른 임원과 달리 잡스는 슬퍼했다. 어린 시절부터 HP 창업자와 인연을 맺었던 잡스는 "휼렛과 패커드는 훌륭한 회사를 구축했고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HP는 분해되고 무너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는 듯한 그 다음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애플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가 그보다 좀 더 강력한 유산을 남긴 거라면 좋겠군요."

이 책은 잡스가 애플 CEO에서 물러난 시점에서 멈춘다. 잡스의 사후, 책을 마무리했음에도 그의 죽음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작가는 마지막 41장 '유산'에서 잡스가 남긴 글을 길게 인용하는 것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바로 이 글이 스티브 잡스가 후세에 남긴 유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잡스는 이 글에서조차 IBM이나 MS 같은 기업이 쇠퇴하는 이유가 제품의 질을 경시하고 세일즈 마케팅에 집중한 탓이라며 애플에서 자신을 쫓아낸 존 스컬리와 MS CEO인 스티브 발머를 비난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독설'을 아끼지 않는 그의 변함없는 면모가 드러난 대목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오늘날 자신을 이끈 원동력을 이전 시대 업적 덕으로 돌리며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역사 앞에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준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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