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유다지파, 시대의 영적 전사여

2011. 10. 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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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영적인 싸움이요, 거룩한 전쟁이었다. 그들은 지파별로 땅을 나누고 정복전쟁을 펼쳤다. 그래서 어느 정도 터전을 잡고 살 만큼 땅을 정복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완전히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정도 살만하니까 정복전쟁을 중단해 버렸다. 사사기 1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유독 유다, 요셉 지파만을 칭찬하고 다른 지파들의 이야기는 거의 생략하거나 살짝 뒷덜미만 보여준다. 특별히 베냐민과 단 지파는 유다, 요셉 지파와 정반대 모습으로 비교된다.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을 칼날로 쳐서 불살랐으며 최선두에 서서 싸웠다(삿 1:8). 요셉 지파도 하나님께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삿 1:22∼26).

그런데 베냐민과 단 지파는 정반대였다. 베냐민 족속은 예루살렘, 여부스 사람들과 싸워 완전히 박살난 뒤 그들과 적절하게 타협하고 화친 조약을 맺으며 거짓 평화를 누리고 살았다(삿 1:21). 그러다가 나중에는 가나안 족속과는 싸우지도 못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지파 내에서 깡패 노릇을 하고 레위인의 첩을 건드려서 몰살의 위기에 놓인다(삿 19∼20장). 단 지파는 아예 싸움조차 못하고 완전히 적에게 포위되고 노예가 돼 버린다(삿 1:34). 심지어 나중에는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뺏는 전쟁을 한다(삿 18장). 언약 백성이 돼 가지고 어찌 우상을 뺏는 전쟁을 해야 한단 말인가. 가나안인들을 쫓아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다시 말하면 적의 대상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적과는 친구가 되고 형제가 적이 돼 버렸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거룩한 영적 전쟁을 중단하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적의 대상이 아군이 돼 버린다. 우리의 적은 하늘의 악한 영, 공중권세 잡은 자, 각종 이단들이며 보이지 않는 바벨론의 세력과 문화가 아닌가. 그런데 한국교회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부흥하니까 영적인 주적을 향한 싸움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 결과 형제가 적이 되고 아군이 적이 돼 내부의 소모전을 하게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소모전에 밀리게 되면 싸움의 내용을 언론에 제보하거나 사회적 논리로 법정까지 간다. 그렇게 하면 내 쪽에서 승리할 것 같지만 결국 공멸하고 만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의 베냐민 지파와 단 지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의 싸움 대상을 바로 알고 전쟁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다시 언약 백성과 언약의 군사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지금 하늘의 공중권세 잡은 자와 음녀의 영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얼마나 유혹하고 교란시키는가. 거기에 넘어가지 말자. 더 이상 베냐민과 단 지파가 되지 말자. 유다 지파로 일어서자. 형제와는 화해하고 아군끼리 뭉쳐 악한 영과 싸우자. 결코 형제와 아군은 우리의 싸움 대상이 아니다.

(용인 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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