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지정된 하남에선.."턱없는 보상가에 땅만 뺏길 판"
◆ 보금자리 포비아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에 창고 용지를 소유하고 있는 김영석 씨(가명). 김씨의 땅은 지난해 제3차 보금자리주택지구(하남 감일지구)로 지정됐다. 김씨는 이 땅의 보상가가 얼마로 결정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세를 현저히 밑도는 가격에 땅을 뺏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김씨는 "토지 보상이 진행 중인 인근 하남 미사지구 보상가격이 시세를 현저히 밑도는 수준에서 결정됐다"며 "이 일대 토지가격이 일제히 올라 싼 가격에 토지를 수용 당하면 비슷한 면적 땅을 사기 위해 광주, 여주까지 내려가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에 걸쳐 3곳(하남 미사ㆍ감일ㆍ감북)이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된 하남시 일대에는 거리마다 지구 지정의 부당함을 알리는 붉은 글씨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보금자리 지정 철회를 요청하는 시위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린다.
땅 주인들의 공포는 2009년 3월 보금자리 시범지구로 지정된 하남 미사지구 보상진행 과정에서 커지기 시작했다.
미사지구가 시범지구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반대 여론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보상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당초 미사지구 전체 보상금으로 5조1000억~5조3000억원을 약속했다. 시세를 소폭 밑도는 액수였지만 주민들을 설득할 만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LH 경영난이 가중되며 보상금이 줄어든다는 소문이 돌았고,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LH가 당초 보상가보다 약 20% 깎은 4조5000억여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토지주들은 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주민들은 "단체로 토지 보상에 합의하지 말자"고 결의했다. 보상이 늦어지면서 사업도 올스톱됐다. 지난해 6월로 계획된 토지 보상은 12월에야 시작됐고, 당초 오는 9월로 잡혔던 본청약 연기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덕진 하남 미사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LH 경영난을 핑계로 부담을 토지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현금 보상이 아닌 채권 보상을 내세우고 있어 주민들 거부감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하남 감일지구'가 보금자리 3차 지구로, 그해 11월 4차 지구로 '하남 감북지구'가 추가로 지정되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특히 서울 송파구ㆍ강동구와 경계를 맞댄 감북지구 땅 주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3.3㎡당 땅값이 대로변은 1500만~2200만원, 대지는 500만~1300만원, 개발제한구역은 200만~600만원 수준인 데다 땅값이 오르는 추세라 어지간한 보상금액에 만족할 수 없다는 땅 주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감북지구 지정 이후 주민 공람기간에 제출한 1120여 건의 주민의견 가운데 찬성 의견은 고작 4건이었다.
주민들의 반대 행동은 다양한 경로로 확대되고 있다.
청와대, 총리실, 국토해양부 등 관계부처에 민원을 넣고, 법적 소송도 불사하고 있다.
감북지구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 보금자리주택사업 지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박성용 전국개발제한구역연합회 하남시지회 사무국장은 "감북지구는 보금자리 지정이 철회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며 "적정한 보상을 해준다면 정부 방침을 수용하겠다는 감일지구도 인근 미사지구 보상금이 예상을 밑돌아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구지정 이후 주민 반발로 사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부동산시장도 가라앉았다.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거래는 완전히 끊겼고, 보상 절차 지연으로 다른 지역 토지(대토)를 알아보려는 움직임도 신통치 않다.
그 여파로 폐업하는 중개업소들이 속출하고 있다. 감북동에 위치한 중개업소 지택21의 이강훈 실장은 "거래가 없어 고전하던 이 일대 중개업소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며 "정부가 사업에 속도를 내거나 아니면 신속히 접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 반발 등으로 사업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소규모 사업 등으로 일부 정책을 전환했지만 보금자리지구 지정은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보상이 진행 중이거나 사전 예약을 마친 보금자리 사업은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LH 관계자는 "신규 사업은 자금 사정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추진할 예정이지만 이미 사전 예약을 받은 보금자리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하남 미사지구 보상이 진행 중이고, 올해 안에 부천옥길과 구리갈매지구 보상도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이미 사전 예약이 진행된 곳은 강남세곡ㆍ서초우면ㆍ고양원흥ㆍ하남미사ㆍ구리갈매ㆍ부천옥길ㆍ시흥은계ㆍ하남감일지구 등 8개 지구와 위례신도시다.
하지만 주민 반발과 LH 자금 사정을 감안하면 계획대로 보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LH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 총액이 125조원으로 하루 이자만 100억원에 달하지만, 부동산시장 침체로 택지 매각이나 주택 분양을 통한 자금 회수가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금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금자리 사업에 거액을 쏟아 붓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LH가 현재 보상을 끝낸 보금자리지구는 서울 강남세곡ㆍ서초우면, 고양원흥 등 3곳에 불과하다. 보상에 투입한 자금은 총 1조5521억원이다. 하지만 하남 미사지구 등에서 보듯 공급 규모가 큰 보금자리지구에서는 한 곳에서만 수조 원의 토지보상금이 필요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LH가 보금자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빚은 7조6000억원이나 된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정책은 한 번 실패하면 그 대가를 수십 년에 걸쳐 치러야 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은아 기자 / 하남 = 홍장원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화보] 검색대 `알몸 투시기`로 男女 신체 비춰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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