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엔 박달과 금봉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제천∼충주 잇는 '울고 넘는 박달재'

2011. 6. 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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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를 넘어보지 않았더라도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해발 453m 높이의 박달재는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로 원래 이름은 이등령. 조선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과 이등령 아랫마을에 살던 금봉 낭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박달재로 불리게 되었다.

봉양읍 원박리의 박달재입구 사거리에서 박달재를 넘어 산길이 끝나는 백운면 평동리까지는 약 6㎞. 산짐승과 산도둑이 들끓었다던 아흔아홉 구비 옛길의 흔적은 사라지고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등고선을 그리며 고개를 오른다.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소나무 등 상록수가 울창한 고갯길은 이따금 박달과 금봉의 로맨스를 찾아 나선 관광버스와 승용차만 보일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38번 국도를 잇는 터널이 뚫리면서 고개를 넘는 아스팔트 도로조차 옛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제천과 충주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던 박달재는 드높은 산과 푸른 하늘이 맞닿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가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고갯마루에는 박달 선비와 금봉 낭자의 애절한 사랑을 형상화한 조각품과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울던' 금봉 낭자를 기리듯 도토리묵을 파는 음식점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박달재에서 한 굽이를 돌면 백운면 일대와 우뚝 솟은 주론산(903m)이 한눈에 들어온다. 박달재휴게소에서 주론산까지는 산길로 4.2㎞. 최근에는 박달재 고갯길이 끝나는 백운면 평동리에서 박달재자연휴양림과 경은사를 거쳐 주론산 8부 능선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뚫렸다. 주론산 600∼800m 고지에 별장형 리조트인 리솜포레스트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고급리조트처럼 리솜포레스트의 건물은 자연친화형이다. 소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빌라의 설계를 변경하고 흔한 바위조차 제자리에 뒀다. 카페는 바위가 돌출해 있어 더욱 멋스럽다. 리조트에서의 이동도 자동차 대신 걷거나 전동카트를 이용해야 할 정도다.

리솜포레스트에는 1.4㎞ 길이의 에코 힐링(Eco Healing) 코스가 눈길을 끈다. 숲해설 전문가인 힐리스트와 함께 리솜포레스트 단지 곳곳을 산책하며 산림욕을 즐기는 산책로로 화전민의 흔적이 남아있는 숲과 일제강점기 시절 송진을 채취한 상처가 역력한 소나무들, 그리고 드라마 '시크릿 가든' 촬영지를 쉬엄쉬엄 둘러볼 수 있다.

박달재자연휴양림에서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로 유명한 진소마을까지 제천천을 따라 달리는 12㎞길이의 시골길은 풍경화의 연속이다. 이른 아침 형형색색의 꽃이 핀 꽃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짙은 안개 속에서 지게를 지고 논둑을 걸어가는 농부와 제천천에서 날아오른 백로가 허수아비 주위를 맴도는 목가적인 풍경도 만난다.

진소마을의 들머리에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탁번 교수가 자신이 다녔던 백운면의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에 세운 원서문학관이 있다.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원서문학관 앞은 시멘트 도로지만 곧 덜컹거리는 비포장 흙길 1.6㎞가 제천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진소마을까지 이어진다. '박하사탕' 촬영지는 진소마을 남단에 위치한 충북선 철교.

공전역을 출발한 충북선 철로는 진소마을에 진입하기 직전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원서천을 가로지르는 유려한 곡선의 철교를 만난다. 제천천 지류인 원서천은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20년 전 순임과 함께 아유회를 가 사랑을 키웠던 곳으로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곳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철교 위에서 촬영됐다. 충주행 무궁화호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영호는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기적소리에 묻힌다.

제천천을 따라 내려온 충북선과 주론산에서 출발한 시골길이 박달재를 에둘러 만나는 애련리 진소마을의 철교가 가늘게 흐느낀다. 금봉을 애타게 찾는 박달의 절규와 첫사랑 순임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영호의 절규가 막 터널을 빠져나온 무궁화호 기적소리에 묻힌다.

제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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