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지진피해지역 이시노마키 봉사현장을 가다

2011. 4. 1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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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일본 동북부 대지진 한 달째인 12일,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430㎞ 떨어진 미야기현 이시노마끼시(市) 해안가 주변 마을은 여전히 초토화 상태였다. 차량 통행만 가능할 정도로 도로만 복구돼 있었고 도로 주위의 뒤엉킨 차량과 완파된 건물, 꺾인 전봇대와 쓰레기 더미, 상점 주차장에 널부러진 어선 등은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이 밀려올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이시노마끼시 하마소네야마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사립여자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2층까지 물이 차올라 각종 쓰레기와 이끼 등이 천정에 붙어있었고 유리창은 모두 박살나 있었다. 반파된 체육관 건물은 보기에도 흉물스러웠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자위대와 경찰이 아닌 민간인 봉사자들이었다. 노랑, 빨강 조끼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학교 내 쌓인 흙더미와 각종 쓰레기 등을 치웠다. 이들은 요한동경교회(김규동 목사) 소속 자원봉사자들로 조끼 뒷면엔 십자가 표시가 선명했고 '종교법인 요한교회연합'이라고 쓰여 있었다.

학교 영어교사인 후지스마(37·여)씨는 "그동안 교사 10여명이 학교를 치웠는데 며칠 전부터 이들이 와서 도와주고 있다"며 "너무 감사하다"며 90도 각도로 연신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현장에 나온 김규동(62) 목사도 봉사자들을 격려하며 자신도 흙더미 자루를 손수레에 실어 날랐다. 김 목사는 "요한동경교회 36개 지교회 성도들이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다"며 "봉사자들은 복구 작업과 음식 제공, 구호품 분배 등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된 교회의 구호 활동은 도쿄에 위치한 교회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70∼80명이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현장에 도착해 2박 3일 간의 구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1000여명의 성도들이 다녀갔고,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며칠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많다. 교회 내 일본인과 중국인 성도들도 참가해 국제적인 봉사대를 형성했다.

사립여자고교를 나와 찾아간 곳은 마을서 10㎞ 떨어진 유락관 건물. 사회 체육 시설이기도 한 이곳에는 쓰나미 경보를 듣고 몸만 빠져나온 주민들과 인근 노인병원에서 피신한 이재민 100여명의 피난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에도 '노랑 조끼' 봉사자들이 활약 중이었다. 이날 봉사자들은 한국서 도착한 점퍼를 나눠줬다. 기아대책이 제공한 것으로 유명 메이커 점퍼였다. 종류도 10여종이나 달했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한 피난 여성은 "휴대폰만 갖고 도망 나와 입을 옷도 없었다"며 "추운 밤에 입기에 안성맞춤"이라며 기뻐했다. 이 지역은 최고 기온이 7∼8도에 불과했고 한낮에도 바람이 거세 체감온도는 0도 미만이었다.

구호에 참가한 일본인 대학생 이시까와 도오미(21)씨는 "이재민들에게 다가가면 더 감동을 받는다"며 "기회가 되어 복음을 전했을 때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체육관 바닥에 누워있는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무릎을 꿇은 채 불편사항 등을 파악했고 때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3·11 지진 이후 여진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날 대피소 안에서도 지진이 감지됐다. 규모 4.0∼5.0의 지진이었고 10∼20초 동안 땅과 건물이 흔들렸다. 봉사자들의 스마트폰 지진 알람도 요란하게 울렸지만 이미 익숙한 듯 이재민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하마소네야마 마을 시립와따노하중학교 건물 3층은 오후 4시가 되자 활기가 돌았다. 교회가 제공하는 국을 배식하는 시간으로 이재민들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가족 단위로 피신한 60명의 이재민들은 봉사자들이 직접 끓인 국을 받아갔다. 메뉴는 양배추와 돼지고기, 버섯 당근 등으로 만든 '야채중화탕'이었다. 피난민들은 자위대가 하루 두 번 배식하는 주먹밥과 교회가 나누어주는 국으로 생활한다.

대만 출신으로 봉사에 참여한 황짜징(37·여·고리야마교회)씨는 "이재민들은 찬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따뜻한 국을 기다린다"며 "이들을 섬기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황씨와 여성 봉사자들은 이날 피난민을 위해 배식을 포함해 청소 작업, 마사지 봉사를 담당했다.

교회는 인근 가노마따소학교 3층의 과학실험실에 주방을 설치하고 이시노마끼 시내 10여곳의 대피소에 국과 밥을 주 5일, 하루 두 끼씩 800여명에게 제공하고 있다. 주방 상황판에는 쇠고기무우국, 오뎅국, 북어국, 잡채 덮밥, 카레 등 한국 음식 메뉴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센다이요한교회 한승희 선교사(40·여)는 "이재민들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월요일을 가장 기다리고 있다"며 "어떤 주민들은 우리를 '요한사마'라고 부르며 감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는 그동안 피해지역인 센다이에서 60㎞ 북부에 떨어진 이시노마끼, 시오가마, 나토리 등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피해 소외 지역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봉사해왔다. 3주 간 진행하려 했으나 주민들이 강력하게 원하고 있어 4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국내외 교회들도 헌금 지원에 나섰고 일부 단체들도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김규동 목사는 "일본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매일 보고 있다"며 "독도문제나 방사능 문제를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본인을 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시노마끼는 일제강점기 당시 인권 변호사로 한국인 약자를 위해 힘쓰다 2004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1880∼1953)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18세기 당시 기독교를 접한 주민 2명이 순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요한동경교회에 따르면 쓰나미 최대 피해지역인 미야기현의 경우 현재 이재민 15만명, 피난처 1400개가 설치돼있다. 교회는 지진 초기엔 자위대로부터 주먹밥을 받아 나눠주는 구호활동으로 시작했다가 3주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구호활동에 나섰다.

각종 구호품과 함께 'Power for Living'이란 복음 소개용 책자도 나눠주고 있다. 그동안 노랑, 빨강 조끼 착용 없이 봉사해오다 주민들이 이들의 존재를 궁금히 여겨 2주 전부터 조끼를 착용해 구호에 나서고 있다.

쓰나미 피해 지역엔 136개 일본 교회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호활동에 적극 나서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복음동맹(JEA) 등도 요한동경교회가 구호활동을 주도하고 추후 구호물자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규동 목사는 "자식이 쓰나미로 죽어도 울지 않던 사람들이 일주일만에 따뜻한 국과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며 "일본인이 경험하는 고통과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방사능 유출로 인한 일본 내 우려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만큼은 크지 않았다. 봉사활동 지역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과 160㎞ 떨어진 곳이었고 주민 대다수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하고 있었다. 마스크는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나 먼지 등을 차단하기 위해 착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시노마끼=글·사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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